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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불볕더위다. 거실엔 에어컨이 돌아가지만, 그래도 시원찮다는 생각에 반바지 하나만 걸친 채 TV 앞에 앉아 세상을 읽는다. 여기저기서 대규모의 산불에, 화산 폭발에 하루에도 수천 발의 폭탄과 미사일이 터져 불바다가 되고 있으니 지구가 달궈질 대로 달궈진 거다. 옆방에 있던 작은 아들놈이 나와 역시 같은 차림으로 곁에 앉는다. 말도 없고, 웃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어색하지도 않다. 언제부턴가 아들의 몸에 살이 붙더니 이제 제법 어른티가 난다. 엄마를 닮았다고 했는데, 앉아 있는 모습도, ...
한때의 기록을 남겼다.2025.07.17 17:18별다른 기대 없이 찾았다가 속이 꽉 찬 곳을 만날 때가 있다. 나주시 봉황면(鳳凰面) 철야(鐵冶)마을이 그런 곳이다. 지명부터 별나다. 상스러운 새 봉황이 그렇고, 산악지대도 아닌 데서 쇠를 다룬다는 것이 그렇다. 마을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마을숲이 남다르다. 산세와 어우러진 마을도 예사롭지 않다. 오감이 반긴다. 먼저 마을숲이 빼어나다. 마을 앞에 수백 살 된 느티나무와 젊은 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숲정이가 있다. 마을과 마을 밖 경계를 이루는 숲이다. 좋은 기운은 붙들고, 바깥의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 마을 울타리 같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5.07.17 17:10어찌 가을이 오겠는가/ 봄을 모두 잃었는데/ 차마 열매가 남겠는가/ 못다 핀 꽃이 다 졌는데 찢긴 달력처럼/ 돌아오지 못할/ 내 영혼의 시간은 쭉정이/그대 서투른 희망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뉴스가 세상을 덮고/ 천지는 기도로 가득하고 돈과 권력이야/ 그토록 난무했지만/다시 핀 꽃 한 송이/ 그대 아직 보았는가 눈물보다 하얀 진실을/ 그대 정말 보았는가 노화욱 극동대 석좌교수의 시편이다. 2014년에 지은 시로, ‘무유’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시작 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붙여뒀다. “봄을 잃었으므로 꽃을 보지 못했다....
2025.07.17 16:33현대 미술에서 정체성과 다문화의 요소에 대한 주제는 심심치 않게 떠오른다.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예술가들에게 자아의 정체성과 시대의 제도는 작업의 중요한 요소로 형성되었다. 오늘날 작업하는 가장 저명하고 찬사를 받는 아프리카계 미국 예술가 카라 워커(Kara Walker, 미국, 1969~)는 미국 역사 전반에 걸쳐 인종차별, 고정 관념, 남녀 성별과 정체성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그는 흑백의 목가적인 풍경 속에서 콜라주 한 실루엣의 대형 벽화, 회화 작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종종 잔인하고 참혹한 이미지로 가득 찬 남부 지방 ...
2025.07.13 16:17대동(大同)의 사전적 풀이는, 큰 세력이 합동함, 온 세상이 번영해 화평하게 됨, 조금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같음, 조선 세종 때의 ‘보태평지악’ 열한 곡 가운데 열째 곡 등이다. 보태평은 종묘제례에서 초헌을 올릴 때 연주하던 문덕(文德)의 찬양 노래로, 세종 말년에 창작돼 세조 때에 종묘제례악으로 채택됐다. 대동은 본디 ‘예기(禮記)’의 ‘예운편(禮運篇)’에 나오는 말이다. “대도가 행해지는 세상에서는 천하가 공공의 것이 된다(大道之行也, 天下爲公)”고 했다. 공공(公共)이란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되는 것, 낱개 주체...
2025.07.10 15:11오페라 는 , 와 더불어 도니제티의 여왕 3부작 시리즈 오페라 중 하나로 첫 번째 작품이다. ‘안나 볼레나’라는 제목은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이자, 엘리자베스 1세의 생모 앤 불린(Anne Boleyn)의 이탈리아어 표기로 내용은 시녀였던 앤 불린이 여왕이 된 후 죄를 뒤집어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는 비극적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훗날 호사가들에게 앤 불린의 드라마틱한 삶은 수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이 때문에 문학작품으로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소재이다. 특히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필리파 그레고리의 소설 ‘천일...
2025.07.10 10:18그러니까 소는 누가 키우냐고요? 배냇소 프로젝트와 청년예술인 생애주기 지원 정책에 대해 다루면서 내놓았던 카피가 ‘소는 누가 키우나’였다. 전통사회는 이 물음에 분명한 답을 갖고 있었다. 맥락을 좀 더 보완하기 위해 이 글을 준비한다. 두 가지 함의가 있다. 경제 문제는 즉자적 처방이 필요하다. 수술 처방 등의 대증요법과 같다. 문화 문제는 장기적 체질 개선을 요구한다. 한의학적 처방에 비유할 수 있다. 지속가능하게 다루는 관점이 요구된다. 이 저력이 K-컬처의 토대가 됐다. 그 중심에 BTS도 있고 영화나 드라마도 있다. ...
2025.07.03 17:23‘쫑포몬당마을’이다. 쫑포는 뭐고, 몬당은 뭐지? 마을과 이어진 비탈 텃밭에서 만난 어르신한테 물어봤다. “종포여, 종포마을. 발음을 씨게(세게) 해서 쫑포제. 몬당은 산동네를 말허고. 근디, 왜 물어보요?” “궁금해서요. 그냥 산동네라는 얘기네요.” “그 말인디, 쩌기 고소동에 비하믄 우리 동네는 산동네도 아녀. 작은 언덕이제.” 쫑포몬당마을은 전라남도 여수시 종화동에 속한다. 종화동으로 불리기 전에 ‘종포’로 불렸다. 오래 전, 배가 드나드는 바닷가 포구였다. 종고산(鐘鼓山) 아래 포구라고 ‘종포’ ‘종개’, 새벽이 일찍 ...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5.07.03 17:19자식, 며느리 왔다고 텃밭에서 일손을 멈추고 들어오신 어머님 흰 고무신 두 짝 문지방에 벗어 놓으셨다 고무신 안에는 흙들이 눌려 있어 아직도 따뜻하다 땀과 바람 하루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밴 채였다 그 흙은 단지 밭의 것이 아니다 굴곡진 삶과 말 없는 인내가 고스란히 밟히고 스며든 시간이다 흙 묻은 고무신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듯하지만 어머님의 하루는 쌓여온 삶을 두고
이제 멈춰 서 있다2025.07.03 17:20“엄마, 너무 행복했어, 감동이야!” 여섯 살 된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한 말이다. 어떤 맛있는 생일 음식이라도 먹은 것일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선물 받기라도 한 것일까? 지난달 광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어린이 음악극 ‘심심해 호랑이는 장가갈 수 있을까?’라는 공연 후 쏟아져 나온 인파들이 이구동성 칭찬하던 풍경의 하나다. 이 어린이 가족은 경상북도에서 두 시간 반을 달려왔다고 한다. 또 어떤 엄마들은 이렇게 말했다. “광양에서 이런 수준 높은 어린이 음악극을 볼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관객의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배...
2025.06.27 11:22벨칸토(Bel canto)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의미를 뜻한다. 18세기에 확립된 이탈리아의 가창 기법으로 19세기 전반 이탈리아 오페라에 쓰였던 기교적 창법이다. 벨칸토 창법을 극대화한 벨칸토 오페라들은 극적인 표현이나 낭만적인 서정보다도 아름다운 소리와 선율 중심으로 훌륭한 연주 효과를 도출해 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대표적인 이탈리아 벨칸토 작곡가로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 1797~1848), 로시니(Gioacchino R...
2025.06.26 09:30고샅길이 조붓하다. 산새 지저귀는 소리가 귓전을 간질인다. 담장 벽화도 정겹다. 농악놀이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 활기가 묻어난다. 나도 모르게 발끝에 힘이 실린다. 달 상징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월하(月下)마을이다. 입간판엔 ‘달 아래 첫 동네’라고 적혀 있다. 국립공원 월출산 자락이다. 나도 모르게 노래 한 소절이 흥얼거려진다. 하춘화가 불러 공전의 히트를 한 ‘영암아리랑’이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황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 보는 ...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2025.06.19 17:43소는 누가 키우나? 처음 들으면 그냥 웃자고 던지는 농담 같지만 곱씹을수록 이 말엔 우리 사회의 핵심 질문이 담겨 있다. 풍자와 자조가 섞인 유행어이기도 했다. 이상은 좋은데 현실은 누가 책임져? 기획은 좋은데 정작 실무는 누가 해? 다들 말은 잘하는데 도대체 소는 누가 키우냐고? 대개 이런 뉘앙스다. 이 말이 자조적으로 유포되면서 책임회피형 농담이나 허탈함을 표현하는 풍자어가 됐다.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이 말은 매우 구체적인 질문이었고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기본 시스템이기도 했다. 농사일에 절대적인 것이 소였다. 소를 사람과 다...
2025.06.19 17:41긴 터널이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몇 년 동안 나라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답답해했고 눈앞에서 무너지는 공동체의 가치에 속수무책으로 마음졸여야 했습니다 품격을 잃고 진실은 짓밟히며 외세에 기웃거리는 매국정치가 극보수의 이름 아래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나라가 망해가고 있었지요 힘든 싸움이었지만 우리는 새 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승리가 아니라 시작입니다 단죄하고 청산하고 포용하면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라 걱정에 잠 못 ...
감사의 꽃, 연대의 꽃, 희망의 꽃을.2025.06.19 17:41베르디는 오페라 이후 이탈리아의 영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온 유럽에 퍼져 섭외 1순위 작곡가로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특히 베르디는 뛰어난 문학작품을 골라 오페라화했는데 세익스피어의 문학작품 외에도 빅토르 위고, 알레상드르 뒤마, 당시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쌍벽을 이루던 프리드리히 쉴러(Fri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작품이 베르디의 손을 거쳐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 쉴러의 ‘군도’, ‘돈 카를로’, ‘간계와 사랑’은 베르디의 오페라로 승화된 주요 작품이며 이번에 ...
2025.06.12 1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