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효경 완도중 前교장. |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내게 음악은 흥과 눈물의 원천이고 삶의 풍부한 해석이다. 내 상황에 맞추어 적절하게 듣는 음악은 하찮은 내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 마치 인생의 친구처럼. 시골길을 갈 때 완행버스에는 우리 가요나 트로트가 딱 어울린다. 시골 풍경은 영화 장면이 되고 나는 주인공이 된다. 퇴근길 자가용에서 듣는 올드 팝송도 꽤나 피곤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준다. 요즘 아침 첫 시간에 듣는 찬송가는 경건한 마음으로 하루를 감사하게 한다. 오전 독서 시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 선율에 의지하여 독서의 속도를 높인다. 입꼬리도 싹 올라간다. 뜨거운 커피 한 잔 내려 눈 내리는 거실 창밖을 내다보며, 피아노 협주곡을 듣는다. 일상의 잡다한 소음들이 사라지고 그 끄트머리에 걸려있던 걱정거리들도 잠잠해진다. 조성진이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어쩌면 저리도 부드럽고 절도 있는지. 한 음 한 음 모두 살려 내어, 중요하지 않은 음은 하나도 없다 아름답지 않은 음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 듯하다. 조화로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저 솜씨는 참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는 듯하다. 천상의 능력이다. 나는 최고의 호사를 누린다.
대학 시절에는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강의실은 복잡했고, 캠퍼스 곳곳은 어두침침하고 흉흉한 분위기가 지배했다.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몰랐고 따라잡기도 힘들어서 어정쩡하니 세월은 흘러가는 듯했다. 그 와중에 음악은 미지의 세계, 탐구의 세계로 날 인도해 주는 친구였다. 광주 시내 충장로에는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 있었다. 그곳에서 고전 음악을 듣고 곡명을 맞추는 선배들이 멋있어 보였다. 수준이 높아 보였고,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첫 월급을 받고 처음으로 한 일이 한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고가의 클래식 음악 한 세트를 10개월 할부로 구입한 것이었다. 나진만 바닷가 자취방에서 우아한 친구를 껴안고(?) 밤새 듣곤 했다.
섬마을 선생님은 시간이 참 많았다. 흩어져 버리는 까만 밤의 시간들을 음악으로 붙잡았다. 혼자 교무실에 나가 헤드셋을 끼고 컴퓨터 CD 플레이어를 통해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곤 했다. 익숙한 선율에서 내가 좋아하는 관악기 소리를 찾아내며 그의 음악적 정서를 받아들였다. 그 아름다운 음의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내는 걸까 고전 음악 작곡가들의 천재적 음악성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 아시아문화전당 아트홀의 브런치 콘서트를 멋진 친구랑 데이트하듯 들락거렸다. 어느 가을날 무대를 꾸민 소프라노 가수의 연기와 목소리에 반해 그녀의 뮤지컬을 다시 찾아보고 한참 신이 났었다. 지난해 겨울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광주 상무지구 아르떼 살롱에서 한 피아니스트의 격정적인 연주를 바로 눈앞에서 듣고, 그 공기의 떨림에 뜨거워지는 가슴으로 여기가 파리인가 하는 환각에 빠지기도 했다.
오늘 아침 어떤 가요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 유튜브 조회 수천만 회를 넘기며 요즘 뜨고 있는 무명 가수가 인생을 담아 부른 노래였다. 그 젊은 가수는 오랜 세월 동안 헤어진 어머니로부터 연락도 없으니 보고 싶어도 만날 길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무명가수 생활로 전전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접지 않은 것이 그 어머니 때문이었다. 기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TV에 나가서 노래를 부른다면, 유명 가수가 된다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하여 노래 경연대회에 나갔다. 하도 애타게 불러대니 허스키가 된 것은 아닐까 싶은 그의 목소리는 짙은 호소력을 지녔다. 마침내, 세상의 사람들이 그의 노래로 위로받기 시작했다. 온 인생을 걸고 ‘너 돌아오라고, 나를 찾아오라고’ 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가슴이 절절하게 아파오는 것을 나는 막지 못했다.
우리 동네 무등산 자락 산책길에 오동나무 한 그루가 있다. 산책길을 다닌 지 십년이 넘었지만, 처음에는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몰랐다. 최근 이파리가 무성해지더니 보라색 꽃을 피운다. 무등산 맑은 공기, 햇볕 그리고 계곡물에 기대어 잘 자랐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주변 산의 짙푸른 녹색에 대비되는 그 꽃은 쉽게 눈에 띄었다. 오고 가며 눈길을 주고 말을 건넨다. 너 참 아리땁고 장하다. 뜨거운 여름과 겨울의 비바람 폭풍우 속에도 홀로 창창하게 줄기를 알차게 키워나가다니 말이야. 여러 세월이 흐른 후 너는 너의 둥지를 내놓아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겠지. 어느 결에 다시 거문고로 돌아와 아름다운 곡조를 들려주면서. 천년을 늙어도 곡조를 잃지 않는 오동나무, 내 친구야, 너의 음악이 듣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