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바람은 사막의 건조한 고기압에 의해 생성된 바람인 데다 산맥과 사막 지역을 거치며 더욱 건조해져 매년 겨울 캘리포니아의 골칫거리인 산불을 악화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꼽혀 왔다. 악명 높은 악마의 바람으로 인해 지난 7일 시작된 팰리세이즈 산불(96㎢)과 이튼 산불(57.1㎢)은 현재까지 도합 153.1㎢를 태웠다. 이는 서울시 면적(605.2㎢) 대비 4분의 1이 넘는 규모다. 당국은 이번 산불로 총 24명 사망, 실종 23건이 접수된 상태다. 화재로 소실된 건물은 1만2000여채로 추산된다. 피해규모만 200조원이 넘어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재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강 건너 불 구경’할 처지는 아니다. 국내에도 악마의 바람인 ‘양간지풍(襄杆之風)’이 존재한다. 매년 봄철만 되면 어김없이 강원특별자치도의 양양군과 고성군 간성읍 사이에서 태풍에 비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부는 건조한 바람을 일컫는다. 얼마나 악명이 높았으면 과거 문헌에도 기록될 정도다. 1633년 쓰인 이식의 ‘수성지’에 통천군과 고성군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양양군과 간성군 사이엔 바람이 세게 분다는 구절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순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순조 4년(1804년) 3월 3일 사나운 바람으로 산불이 크게 번졌는데 삼척과 강릉, 양양, 간성, 고성에서 통천에 이르는 여섯 고을에서 민가 2600여호가 불타고 숨진 사람이 61명에 달했다고 한다.
피해도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 2019년 동해안 동시다발 산불과 2022년 역대 최장 울진 산불도 양간지풍이 피해를 더욱 키웠다. 낙산사를 불태운 2005년 고성군 산불도 양간지풍이 원인이었다. 그만큼 봄철 산불을 키우는 원인이 되는 양간지풍은 동해안 지역 주민들에게 두려움의 존재다.
김성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