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호 무등초 교사 |
지난해 12월 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누리 교수는, 내란의 원흉인 윤석열 같은 이를 만든 것은 바로 ‘야만적 경쟁교육’이며, “우리가 12년 동안 학교 교육 공교육을 받으면서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학교 교사로서 억울했습니다. 김누리 교수의 말은 자신의 언행 속에서 반박됩니다. 김 교수도 12월 3일 이후, 탄핵 반대 집회를 참석하면서 매우 놀랐다고 했습니다. 일본, 대만 등의 친구들에게서 부럽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추운 날씨에 응원봉을 가지고 나와 탄핵 반대를 외친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놀랐다 합니다. 그들은 어떤 ‘학교’를 다녔나요? 한국 학교 아닌가요? 독일 교육을 받아서 ‘민주주의자’가 되었을까요? 그들은 왜 ‘야만의 경쟁’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광장에 나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창의적인 시위를 만들고,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주었을까요?
남태령에서 쌀값을 보장하라는 ‘전봉준 투쟁단’ 트랙터의 정당한 시위를 도운 ‘시민’들은 스웨덴 교육을 받았나요? 아니면 핀란드 교육을 받았나요? 젊은 시민들에게 전봉준 투쟁단의 구호들 중에는 의문이 들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농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꽁꽁 어는 듯 한 밤을 같이 샌 멋진 ‘시민’들은 도대체 어떤 교육을 받았나요? 김누리 교수를 비롯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일만 벌어지면 ‘교육’탓을 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어집니다.
지난해 12월 3일 국회에서 보여준 ‘특수부대’의 망설임을 저는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특수부대원 한 명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로 진입합니다. 깨진 유리 사이로 창문을 넘어 진입했습니다. 그런데 화분을 살며시 옆으로 놔둡니다. 그때는 비상상황입니다. 대통령 지시에 의해서 “총을 쏴서 문을 부수고 의원들을 끌고나와”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죠. 오직 명령에 의해 움직여야만 하는 특수부대원인 그는 화분에 담긴 생명체를 살포시 보호합니다. 의식적인 행동일까요? 아닙니다. 그의 행동은 ‘뇌’가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길러낸 ‘성숙’한 신체의 기억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산물입니다. 기본 생활 습관,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성 등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 공교육 학교에서 매일 강조하는 가치입니다. 특정한 ‘민주주의’수업이나 활동에서가 아니라, 모든 교과목, 그리고 교실생활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강조되는 가치입니다.
민주주의 제도는 오로지 나의 운명과 공동체의 운명을 같은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존재할 때 유지됩니다. 즉, 그 사회 구성원이 얼마나 성숙하느냐가 민주주의의 핵심이지요. 공교육이 바로 그 일을 담당합니다. 공교육의 원리란 “그것이 돈이 되느냐”는 가성비적 사고와는 근원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돈이 가치판단의 마지막 기준이 되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내란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헌법이란 규범이 주는 가치가 빛을 발합니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의 원리가 몸으로 체현되는 시기지요. 그래서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이 출현합니다. 모든 것을 돈으로 가치화할 수 없는 행동양식이 출현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공교육은 돈의 원리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가장 여리고 미약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그들의 성숙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교사들의 개인적인 성품이 착해서가 아니라, 제도적 원리가 그렇습니다. 늦게 배우고, 정서적으로 불완전하고, 신체적으로 힘든 ‘어린이’일수록 더 지원을 보장하는 제도를 우리 대한민국은 공교육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교사는 그들을 돌보며 그들을 ‘성숙’하게 도우는 존재며, 교육과정은 모두 그렇게 계획되어 있습니다. 무슨 특별한 민주시민 교육내용이나 방법이 필요 없는 이유는, 학교에서의 생활 자체가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은, 이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학교 현장을 모르는 지식인들은 이것을 경험할 수 없으니 현상을 뒤집어서 보는 것 같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같은 내란의 날들입니다. 어둠속 빛처럼 헌법이 이 무질서의 규범이 되듯, 공교육에 몸담는 교사들은 그저 묵묵히 우리 사회 자체의 ‘성숙’을 위해 하루하루 일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