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이승현> 김호석을 보고 한강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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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열며·이승현> 김호석을 보고 한강을 읽는다
이승현 강진백운동전시관장
  • 입력 : 2024. 12.18(수) 17:46
이승현 강진백운동전시관장
김호석은 화가고 한강은 소설가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큰 산들이다. 두 사람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들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예술적 성향 일부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1월, <수묵화가 김호석>

토론회가 열린 광주시 동구 인문 학당에서- 이후 글에서는 작가라는 이름표를 뗀다.- 한강을 읽고 김호석을 보게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와 김호석의 ‘마지막 입술ㅡ먹다만 단팥빵‘이란 수묵화를 조우시킨 자리였다. 두 사람은 스스로 5.18이라는 압도적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산자와 죽은자, 신체와 정신,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부활시키는 작가들의 재능이 사람들을 몰입시키고 영원성을 지닌 명작으로 만들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광주 민주화운동 중에 계엄군에게 희생된 ‘문재학’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었으나 그 문재학이 김호석이 그린 그림 속에 학생과 동일인인지, 또는 한강의 작품을 읽고 나서 그린 것인지 등이 관심 있는 사람들의 입방아 였다. 그날 참석한 김호석은 “그림 속에 교련복을 입고 단팥빵을 반쯤 먹다 총격으로 쓰러진 ‘학생’은 5.18 기록사진 중에 실제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문재학을 포착해서 그린 것이다. 중요한 것은 광주가 흘린 피가 빛이 되지 못해 5.18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자신도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광주에 빚을 진 것도 없고 고향도 아니고 이미 예술적 성취를 이뤄 아쉬울 게 없는 김호석의 발언에 그가 높은 도의(道義)와 지조(志操)를 지닌 선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히고 감추고 싶은 역사 속의 망자(亡者)들을 호출하여 행장(죽은 사람의 인적 사항과 주요 행적을 기록하는 글)과 비문을 쓰고 현재의 사람들에게 회개와 각성을 불어 넣는 주술사인 이들의 작업은 외력, 이를테면 ‘계엄’이나 ‘블랙리스트’ 같은 야만적 압제에도 움츠리거나 몸을 사리지 않는다. 김호석과 한강은 예술, 예술가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준다. 아름다움과 재미라는 예술의 기능을 넘어 시대정신과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는 작업을 예술의 젖줄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았다.

5·18을 그만 우려먹으란 일부의 비아냥과 폄훼자 들은 이번 비상계엄을 겪으면서 김호석이나 한강이 왜 그렇게 집요하게 국가폭력에 저항하고 치유하는 작업을 해왔는지 그 선구적 통찰과 실천에 수긍하고 경의(敬意) 하게 되었을 것이다.

김호석은 2023년 김남주와 더불어 ‘함성지’ 주동자로 민주화운동의 핵심이었으면서도 공로를 내세우거나 어떤 과실도 챙기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아가는 이강 선생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전시회를 열고 이강과 김남주 수묵 인물화를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 기증했다. 2024년 10월 전남대 5.18 연구소가 주관한 김호석 개인전- ‘무등의 묵(墨): 검은 울음’ 전시회가 열렸는데 5·18 당시 행방불명된 무명인들의 위패를 그린 작품 ‘검은 눈물’ 등 국가폭력에 저항하다 희생된 사람들은 기리는 수십 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40년도 더 지난 ‘광주’의 먼지를 털고 끄집어 내서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사람들의 관심도 받지 못할 전시회를 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는 윤석열에 의한 또 하나의 5·18이 잉태되고 있는 것을 눈치라도 챈 것 아닌가 생각되었다.

한강 역시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국가와 가해자들이 그토록 밀폐시키고 밀봉하려던 역사적 진실과 트라우마를 담론화함으로써 노벨문학상 수상이란 개인을 넘어 국가적 결실을 맺었다. 노벨 주간인 지난 6일 오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시청 건물 외벽에 한강의 사진과 함께 “하얀 것은 본래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것 속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는 한글 문장이 떠올랐다. 한강 소설 ‘흰’에 등장하는 문구다.

대단히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이 ‘흰’을 김호석은 오래전부터 작품의 바탕으로 삼은 듯하다. 채색과 농담을 거의 생략한 채 군더더기는 다 걷어내고 점과 획, 백과 흑만 남긴 그의 그림은 담백하고 장중하다. 맑고 깨끗한 것만이 아닌 강하고 비장한 느낌의 색(色), ‘흰’에 한강과 김호석의 정신이 베어 있다.

한강은 노벨상 수상자 소장품 기증행사에서 작은 찻잔을 전달했는데 ‘거창한 것이 아닌 작은 찻잔 안에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 보는 일이 자기 생활의 중심이었고 작은 찻잔이 자신을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이었으며 ‘삶이 허락하는 한 계속 쓸 것’이라고도 했다. 평범한 시민들이 바라는 평화로운 일상이다.

김호석은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을 잇는 이 시대의 거장이지만 시골 전시관에도 애정을 쏟아 최근 백운동 전시관에 ‘소’와 ‘자이’라는 작품을 걸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다 보면 고난과 역경을 만나게 되지만 좌절하지 말고 소가 되어 묵묵히 현실의 비참과 고통을 쟁기질하다 보면 환희가 오리라는 것과 자신을 속박하고 구속하는 근원을 단절해 버리고 자이(自怡)-스스로 즐겁고 자유롭고 만족 -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담아 그렸다고 한다. 미치광이들이 벌인 내란에 사람들의 흥분이 최고조 상태다. 혼미한 정국에 정신 차리지 않으면 5·18을 다시 겪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온 국민이 자유와 민주, 삶의 쟁기질을 김호석이나 한강처럼 멈추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