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가결>“1980년 5월 광주가 2024년 우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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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탄핵안 가결>“1980년 5월 광주가 2024년 우리를 이끌었다”
尹 탄핵 제안서 ‘광주’ 장시간 언급
“죽음 각오하고 계엄군과 맞선 용기”
‘광주 희생’ 교훈 계엄 제압 큰 역할
“5월 정신 헌법전문 빨리 수록해주길”
  • 입력 : 2024. 12.15(일) 18:39
  • 노병하 기자 byeongha.no@jnilbo.com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졌습니다.” -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제안설명 중.

지난 14일 국회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번째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재적의원 300명 전원이 표결에 참여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가 나왔다.

탄핵안 가결이 발표되는 순간, 전국은 흔들렸다. 국회에선 투표에 참여한 범야권이 환호했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하던 20만명(경찰 추산)의 국민들 역시 크게 환영했다. 광주 금남로에 모인 시민들 역시 서로를 얼싸 안으며 ‘대한민국을 지켜낸 투표 결과’에 감격했다.

특히 광주는 투표 직전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의 제안설명서를 들을 때부터 이미 가슴이 벅차올랐다.

박 원내대표는 첫번째 제안설명 때와 달리 장시간에 걸쳐 ‘광주’를 언급했다.

그는 “이번 계엄은 지난 1980년 5월 17일 밤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10호와 쌍동이였다”면서 “당시 계엄군은 ‘계엄 포고령 위반’을 빌미로 수천 명의 광주 시민들을 체포하고 연행하고 구금했다. 심지어 학살도 자행했다. 그러나 계엄군의 통제하에 놓인 언론은 광주의 비극을 단 한 글자도 보도하지 못했다. 민주주의를 위해 저항하는 광주시민들은 불온한 폭도로 매도됐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어 “그러나 1980년 5월 광주는 2024년 12월의 우리를 이끌었다. 44년 전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계엄군과 맞섰던 광주시민들의 용기가, 그들이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가, 2024년 국민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다.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졌다”고 전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9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실제 이번 계엄은 불과 두시간만에 제압됐다. 여기에는 ‘광주의 희생’에서 얻은 교훈이 큰 역할을 했다. 먼저 국민들은 국회를 보호했다. 국회를 잃어버리면 계엄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국회의원들 역시 빠르게 움직였다. 시간을 끌수록 44년 전의 비극이 자행될 수 밖에 없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80년 5월 그 후, 책임자 처벌을 위해 끈질지게 싸웠던 광주는 계엄군들도 망설이게 했다. 광주는 내란에 참여한 수장들은 물론이고 명령을 받은 군인들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그 결과 내란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재판정에 세워진 이들은 모조리 실형을 선고 받았다. 2024년의 군인들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던 중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보고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한강 작가는 스스로 되뇌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이번 계엄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줬다. 44년전 광주에서 희생된 이들이 2024년 계엄으로 희생될 뻔한 이들을 구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2시간 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습니까”라며 계엄이 2시간 만에 끝났다는 걸 강조했지만, 그것은 윤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라 국민의 의지였고, 희생된 광주가 알려준 의지였으며,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의지였다.

1980년 시민군에 가담했던 송남주(67)씨는 “이번 계엄은 미숙한 부분도 있었지만, 광주의 희생이 학습된 많은 이들이 발빠르게 나서면서 빨리 종식된 것 같다”며 “정치인들이 광주의 희생에 감사를 느낀다면 광주 5월 정신을 헌법전문에 빨리 수록해 주길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노병하 기자 byeongha.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