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집회' 광주 금남로서 펼쳐진 ‘재밌는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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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尹 탄핵집회' 광주 금남로서 펼쳐진 ‘재밌는 시위’
거리에 울려퍼진 타이거즈 응원가
'순대통합위원회' 재치만점 피켓도
자발적 거리청소…'1등 시민 의식'
참여모습 달라도 "한마음 한뜻으로"
  • 입력 : 2024. 12.15(일) 18:48
  • 정상아·윤준명 기자
지난 14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6차 광주시민총궐기대회에서 강단비·양정민(광양광영고교 3년)양이 ‘윤 정권 찌르기’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들고 탄핵가결에 환호하고 있다. 윤준명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재표결이 가결된 지난 14일 6차 광주시민총궐기대회가 열린 광주 금남로에는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반짝이고, 타이거즈 응원가가 울려 퍼지는 등 과거 집회현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색풍경들이 펼쳐졌다. 각자 집회 참여모습은 달랐지만, 민주정의 회복에 대한 염원과 탄핵소추안 가결에 따른 성취감은 ‘한마음 한뜻’이었다.

●거리에 울려 퍼진 타이거즈 응원가…뜨거운 ‘광주의 함성’

‘제6차 광주시민 총궐기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지난 14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다양한 응원봉을 들고 탄핵을 외치고 있다. 김양배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을 30여분 앞두고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는 광주를 연고지로 둔 프로야구 KIA타이거즈의 응원가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3만여 시민의 힘찬 함성이 모인 한겨울의 금남로는 시즌 중 야구팬들의 열기를 보는듯 했다. 시민들은 타이거즈 선수단을 응원하는 ‘광주의 함성’과 특유의 박자감과 율동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소크라테스 선수의 응원가를 각자 탄핵 정국의 상황에 맞게 개사해 탄핵소추안 가결에 대한 염원을 표출했다. 머플러와 타이거즈 야구점퍼를 두르고 박자에 맞춰 노란 응원봉을 두드리는 많은 시민의 모습은 야구장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말 안 듣고 나온 아들딸 연맹’ 재치 있는 깃발, 다시 등장한 응원봉

지난 14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6차 광주시민총궐기대회에서 시민들이 다양한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윤준명 기자
이날 금남로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12·3비상계엄을 규탄하고, 지난 7일 탄핵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던 여당 국민의힘 의원들의 각성을 규탄하는 내용의 피켓과 깃발만큼이나, ‘MZ’세대의 개성이 돋보이는 피켓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들이 든 피켓과 깃발에는 ‘부모님 말 안 듣고 나온 아들딸 연맹’, ‘아니 근데라는 말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모임’ 등 재치있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국민순대소금초장간장쌈장 대통합위원회’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집회에 나온 최성광(27)씨는 “집회가 꼭 엄숙하고 진지하게 이뤄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위트있는 문구를 통해 평화적인 집회 분위기를 만들자는 취지로 깃발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책가방을 멘 채 고등과정 한국사 교과서를 들고 집회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김민교(광주여상 1년)·박서윤(송원여고 1년)양은 “학교 기말고사 한국사 과목 시험을 앞두고 공부하던 중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역사를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금남로를 찾았다”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격언을 상기하고자 한국사 교과서를 들고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6차 광주시민총궐기대회에서 김민교(광주여상 1년)·박서윤(송원여고 1년)양이 한국사 교과서를 들고 탄핵소추안 가결에 환호하고 있다. 윤준명 기자
책가방을 메고 ‘윤 정권 찌르기’라는 문구의 깃발을 든 강단비·양정민(광양광영고교 3년)양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산실인 광주에서 민주주의의 승리의 순간을 함께하고자 광양에서 아침버스를 타고 광주로 왔다”며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정권 찌르기’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 비상계엄으로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대통령을 언어유희를 통해 비판하고자 깃발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윤 대통령 탄핵집회 때마다 등장했던 형형색색의 아이돌 응원봉도 다시 금남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윤석열 OUT’, ‘국힘 즉각해체’ 등의 문구가 적힌 응원봉을 연신 흔들며, 새로운 집회 분위기를 주도했다.

직장인 김보경(28)씨는 “응원봉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평화시위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고 나왔다”며 “거리에 응원봉이 늘어나면서 시위의 거부감이 줄어들고 많은 시민들이 용기를 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6차 광주시민총궐기대회에서 정은재(19)·정세린(22)자매와 사촌동생 정모(11)양이 탄핵 문구가 적힌 응원봉을 들고 탄핵가결에 환호하고 있다. 정상아 기자
정은재(19)·정세린(22)자매는 “반드시 탄핵안이 가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응원봉에 문구를 적고 집회에 나왔다. 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함께 노래도 부르고 응원봉도 흔드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어 추운 데도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도 도울게요”…자발적 거리청소 ‘돋보인 시민의식’

지난 14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6차 광주시민총궐기대회가 마무리된 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정돈하고 있다. 정상아 기자
이번 6차 광주시민총궐기대회는 지난 2016년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이후 광주에서 8년여만에 열린 대규모 집회로 주최 측 추산 3만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시민들이 빠져나간 후 금남로는 집회가 열리기 전만큼이나 정돈된 모습을 보이는 등 지역민들의 발전된 시민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집회에서는 수많은 단체가 먹거리를 나누며 추운 날씨에도 거리로 모인 시민들의 힘을 북돋웠다. 이에 따라 음식물 쓰레기 등 폐기물 발생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시민들은 쓰레기를 각자 주머니와 가방에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집회 분위기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과 주최 측은 자발적으로 쓰레기봉투에 각종 폐기물을 모아 수거하고, 거리를 정돈했다.

지난 14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6차 광주시민총궐기대회가 마무리된 후 거리가 정돈된 모습. 윤준명 기자
이 덕에 먹거리 나눔이 진행됐던 5·18민주광장과 금남로 일대는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 하나 찾기 어려울 정도로 깔끔한 모습을 보였다.

이진호(26)씨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스포츠 경기장이나 축제장에서는 행사 뒤 쓰레기가 산더미를 이룰 정도로 쌓이는 경우가 태반이다”며 “이번 집회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인 환경정화를 펼쳐 쓰레기 없는 깨끗한 시민축제로 마무리된 것 같다. 지역민들의 선진 시민의식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정상아·윤준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