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인제군에 서식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452호 붉은박쥐. 뉴시스 |
지난달 21일 아침, 창문 위 모서리에 조그만 박쥐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매미보다 조금 큰 박쥐가 방충망에 걸려서 못 날아가는 것 같아 톡톡 털어줬으나 그대로 붙어 있었다. 하루 종일 내리쬐는 따가운 햇빛에 말라 떨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했으나 해 질 녘까지 잘 붙어 있었다. 밤사이에 날아가겠지 하고 잠이 들었으나 아침에도 여전히 붙어 있었다. 닷새가 지났다.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전화를 했다. 내일이면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니 구조해 달라고 간청했다. 오후 늦게 오셨다. 박쥐는 날개를 한 번 펴더니 순순히 잡혀 상자 안에 넣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야생동물이 갑자기 눈 앞에 나타나 당혹감을 느끼고 걱정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곳에 살아야 할 생명체들이 마주하게 되는 경우는 대부분이 자연에 기댄 동물들의 생태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광주시는 지난 6월 대·자·보 도시 전환을 선언하고 교통정책 방향을 기존의 승용차 중심에서 ‘대중교통·자전거·보행’ 중심으로 바꾸어 미래 세대를 위해 탄소중립을 실천하려 한다. 지금의 환경위기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는 이러한 정책 설정은 무척 긍정적이다. 그러나 친환경을 고려해 좋은 의도를 가지고 도시환경을 변형시키는 정책 자체도 일단 사람 중심인 것은 사실이다. 어떤 일을 시행할 때 환경에 대한 고려가 있을까? 환경이라 하면 그곳에 살고 있는 생물들의 생태환경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산이나 지역을 개발하기 전에는 환경평가를 하지만 그곳에 살고 있던 생물들을 위한 조치는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눈에 보이는 발전과 사람의 이해와 편리를 위해 이뤄지는 발전이라는 이름의 개발이 지금의 환경과 생태 위기를 몰고 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작은 생명들의 서식지 파괴나 변형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독립운동을 비밀리에 하다가 북경으로 잡혀가 좁고 어두운 지하 감옥에서 순국한 이육사는 ‘박쥐’를 소재로 한 ‘편복’이라는 시를 유고로 남겼다.
(전략)
가엾은 박쥐여! 멸망(滅亡)하는 겨레여!/
운명(運命)의 제단(祭壇)에 가늘게 타는 향(香)불마자 꺼젓거든/
그많은 새즘승에 빌붓칠 애교(愛嬌)라도 가젓단말가?/
상금조(相琴鳥)처럼 고흔 뺨을 채롱에 팔지도 못하는 너는/
한토막 꿈조차 못꾸고 다시 동굴(洞窟)로 도라가거니/
가엽슨 빡쥐여! 검은 화석(化石)의 요정(妖精)이여!/
일반적으로 “가엾은 박쥐여! 멸망(滅亡)하는 겨레여!” 라는 구절 때문에 박쥐를 당시의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가엾은 박쥐’와 ‘멸망하는 겨레’를 동격으로 반복하여 부른 것이 아니라 멸망하는 겨레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가엾은 박쥐의 절망감을 드러낸다. 즉, ‘가엾은 박쥐’는 이육사 자신을 의미한다. 시에 나타난 박쥐는 다른 새(두견새, 앵무, 딱따구리)들과 달리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운명을 가졌다. 시의 앞 부분에서 “서러운 주교(呪交)일사 못 외일 고민(苦悶)의 이빨을 갈며/종족(種族)과 홰를 잃어도 갈 곳조차 없는/가엾은 박쥐여! 영원(永遠)한 ‘보헤미안’의 넋이여!”라면서 그는 박쥐를 통해 어둠 속에서 쫓겨 다니는 자신의 운명을 말하고 있다.
동굴에 살아야 할 박쥐가 지금 아파트 창문에 붙어 있다. 앞으로의 세대들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이육사와 이 시를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박쥐는 더 이상 동굴이나 어두운 구멍 속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생태계가 바뀌면 우리가 알고 있던 인식 체계는 혼동에 빠진다. 졸시 ‘박쥐에 대하여’는 김포평야가 현재의 강서구 마곡 지구가 되면서 파괴된 논두렁 구멍에 살고 있던 박쥐를 마주했던 경험에서 썼는데 지금은 이들이 어디로 쫓겨갔는지 모르겠다.
“(전략)조금 있으면 박쥐가 온다네” 서두르시는 선생님을 따라 나선다, 아파트 뒤울에서 개발로 들쑤셔진 들판을 바라본다, 펄럭펄럭 무언가가 재빠르게 지나간다. 박쥐를 가까이 보기 위해 우린 담 밖으로 나와 섰다, 날아가던 박쥐가 되돌아와 선생님 손을 툭 치고 날아간다, 다시 돌아와서 머리 위를 빙글 돌고 간다.//이야기 책 속의 박쥐와 사람을 아는 척하는 박쥐 사이에서 내 머리도 빙글, 다시 한번 박쥐가 돌어오기를 기다리며 담과 논둑 사이를 서성인다, 담 안으로 훌쩍 들어가시는 선생님 “요즘은 농사도 짓지 않아 벌레도 없고 모기도 날파리도 없는데 기운 빠져서 안되네.” (손필영 ‘박쥐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