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광주신창동 출토 현악기 |
조준석 국가지정 악기장, 신창동 현악기 복원, 마한금. |
일군의 아이들이 연주하는 악기 소리가 <남도소리울림터>에 나지막하게 울려 퍼졌다. 거문고 소리 같기도 하고 가야금 소리 같기도 하였다. 혹은 이 둘을 합쳐놓은 듯한 음색이랄까. 아직 숙달되지 않은 솜씨지만 한 줄 한 줄 뜯고 튕기는 소리를 따라가노라니 2천 년 전 마한의 어느 도읍에 도달한 듯하였다. 눈을 지그시 감으니 작은북과 토용들을 매단 대형 솟대가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역죄인들이 도망을 와도 잡아가지 못한다는 신성한 공간, 바로 소도(蘇塗)였다. 지금의 광주 신창동, 당시 영산 바다 갯가에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옻칠한 고급 그릇에 갖은 음식을 담아 하늘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원뿔형 타악기를 비롯한 크고 작은 소리 나는 악기들을 연주하였다. 어떤 이들은 사이즈가 작은 현악기를 무릎에 놓기도 하고 어깨에 걸기도 하며 하늘을 향해 떼창을 했다. 모두 일어나 앞사람을 따르며 발을 굴러 떼춤도 추었다. 이것을 보고 중국 사람들이 이르기를 탁무(鐸舞)와 같다 하였던가. 현악기와 타악기들의 합주, 사람들이 입을 모아 부르는 노래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로 퍼져나갔다. 저마다 구르는 발디딤의 진동은 알 수 없는 깊이로 스며들었다. 감았던 눈을 뜨니 마한사람들이 환생하셨을까, 고대의 옷으로 꾸민 아이들이 현악기 즉, 마한금 연주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렇다. 출토 악기에 수년 전에 내가 붙인 이름 마한금이었다. 2016년 10월 21일자 본지 칼럼에 소상하게 다루었으니 참고 바란다. 북으로는 병풍산, 삼각산, 동으로 무등산, 서쪽으로 어등산, 용진산, 남쪽으로 금당산이 옹위하는 극락강 하류 솟을터, 오월제와 시월제에서 마한금을 켜는 풍경을 묘사해본 글이다. 감사하게도 전남문화재단 남도문화연구소가 국가지정 악기장 조준석 명인에게 의뢰하여 다시 마한금을 복원하였다. 김대성 작곡가는 오랜 고민을 거듭하여 곡을 만들었다. 정선옥 선생은 전남도립 어린이국악단 아이들을 지도하여 연주하게 했다. 명실상부 2천년 전의 악기가 마한금이라는 이름을 받고 공식화되는 현장이었다.
광주 신창동 출토 악기의 복원
이 악기의 복원은, 마한금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 2005년 8월 18일 국립공주박물관에 의해 시도된 바 있고, 그에 앞서 2005년 5월 20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연주되기도 하였다. 1997년 광주 신창동에서 출토되었을 때, 전체 크기의 절반이 채 못 되는 바닥판만 발굴되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악기임을 알 수 있을 만큼 형태가 남아 있어 복원이 가능하였다. 물론 공명통이나 가야금 안족, 거문고 괘, 줄 등에 해당하는 유물은 발굴되지 않았다. 머리 부분에 네모난 모양의 결합용 촉구멍 2개가 복원을 용이하게 했다. 지금의 가야금 머리처럼 나무 기둥을 꽂아 줄을 걸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재질은 벚나무로 판정되었다. 옻칠 되어 윤택이 났다. A.D 1세기 출토 악기 중 경산 임당동 유적의 현악기와 비슷했다. 창원 다호리 유적에서도 칠 흔적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런 형태의 현악기가 한반도 남부 전역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진행한 제1회 고대 악기 복원 시연회에서는 신창동 출토 현악기를 이춘봉 광주시 무형유산 보유자가 하였고 조준석 명인은 월평동 유적 양이두와 하남 이성산성 유적 타악기를 복원하였다. 형식은 중국의 슬(瑟)과 축(筑)이라는 악기를 준용하였기에, 안족이 있는 가야금 형식과 괘가 있는 거문고 형식 2가지로 복원이 되었다. 현의 수는 여러 가지 분석을 통해 10현으로 결정되었다. 당시 작곡가로는 이상규, 정대석, 최재륜, 전인평이 참여하였다. 이후 연주가 얼마나 활발하게 진행되었는지 내가 들은 바 없다. 우리를 흥분하게 했던 출토와 복원치고는 유명무실한 흐름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번에 악기가 다시 복원되고 작곡되며 연주되었다는 사실이 어찌 고무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초의 마한금 연주에 참여한 어린이국악단 여러분에게 축복 있으리라. 2026년 내 칼럼의 일부를 다시 가져와 본다. “가야금은 가야국 우륵이 만들었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일본의 정창원이라는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것을 우리나라 최초의 가야금이라고들 한다. 거문고는 현학금(玄鶴琴)이라 해서 주로 고구려와 연관을 짓는다. 고구려 고분벽화 악기를 거문고의 원형으로 해석하는 사례들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백제의 현악기는 없었나? 없을 리가 있는가. 신창동의 현악기가 발굴되었으니 대강의 답은 나온 셈이다. 가야의 전신이 변한의 구야국(狗倻國)이고 백제의 전신이 마한의 백제국(伯濟國)이라고들 한다. 그래서다. 가야의 현악기가 가야금이고 고구려의 현악기가 거문고라면 마한의 현악기는 마땅히 마한금(馬韓琴 혹은 馬韓瑟)이라 불러야 되지 않을까? 이 이야기는 2천 년을 훌쩍 뛰어넘어 산조 양식을 창안한 영암사람 김창조로 이어진다.”
남도인문학팁
한반도 최고의 악기 마한금의 트라이앵글-조준석, 김대성, 정선옥
지금까지 출토된 우리나라 최고의 악기 중 복원된 것으로 하남 이성산성 요고, 대전 월평동 8현 가야금을 비롯해 광주 신창동 10현 현악기 마한금이 있다. 물론 다른 곳에서 새로운 악기들이 출토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출토된 악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B.C 1세기경의 마한금이다. 이번에 마한금을 복원한 조준석 명장에게 물었다. 거문고에 준하여 술대로 연주할 것인지, 가야금에 준해 손으로 뜯게 할 것인지, 아니면 비파처럼 어깨나 목에 걸고 칠 것인지 여러 가지 분석이 있었다. 이미 한국, 중국, 일본 전문가들에 의해 현악기라는 점이 고증된 바 있다. 10현으로 고증된 것도 치밀한 분석에 의한 결과다. 이번 전남도립어린이국악단에 의해 연주된 마한금 위촉곡은 ‘김창조 가락에 의한 영보정 풍류’다. 작곡가 김대성에게 물었다. 영암 출신이자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 명인의 가락을 바탕으로 작곡했다 한다. 마한금의 이야기가 2천 년을 훌쩍 뛰어넘어 산조 양식을 창안한 사람 김창조에 이른다고 했던 내 얘기와 맞아떨어진다. 어린이들을 가르쳐 무대에 올린 정선옥에게 물었다. 신창동 출토 악기를 어찌 마한금이라고 호명하게 되었나? 지난 내 칼럼의 제안을 받아 그리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명실상부 나의 작명을 조준석 명장과 김대성 작곡가, 정선옥 연주자가 받아들이고 공식화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분을 한반도 최고의 악기 마한금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실제 연주를 들어보니 가야금이나 거문고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어쩌면 고대 악기의 성음일지도 모를 그런 맛이 난다. 가야금의 절반 정도 크기이지만 결코 기왕의 현악기에 뒤지지 않는 웅숭깊은 소리라고나 할까. 조준석 명장의 노하우가 장착되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라는 명분도 있지 않은가? 마침 11월 9일 김창조의 고향 영암에서 다시 마한금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달人 그리고 in’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창작공연에서 김대성 작곡 ‘마한금 <세화자>’가 연주되고 정경진 작사 김현섭 작곡의 ‘마한琴 잇다, 있다 맥(脈)’이라는 음악극도 마련된다. 작곡가 김대성은 말한다. “‘세화자’는 영암의 토속민요를 바탕으로 2024년 새롭게 제작된 ‘마한금’을 위해 작곡했다. 10현의 줄에 마한 음악의 뿌리를 담고자 하였다. 이 곡은 영암 갈곡리 민요 중 물레소리, 물 품는 소리, 만드리 소리를 사용하였다.” 우연이 겹치는 것일까? 나는 지난 2011년 영산강 들녘을 지켜온 영암 갈곡리 들소리(민속원)이라는 책을 여러 연구자와 함께 펴낸 바 있다.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마한금을 공식화하였으니 이를 보급하여 장려하고 우선은 아마추어 연주팀 등 동호인들을 모아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공연은 11월 9일(토) 11:00, 16:00 두 차례, 영암군 한국트로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