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발효음식의 문화적 공간과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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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발효음식의 문화적 공간과 전통
417. 장광과 장독대
  • 입력 : 2024. 10.17(목) 17:52
제2회 장문화축제 포스터.
남도에서는 장독대를 ‘장광’이라고 한다. ‘장(醬)’을 보관하는 ‘광’이라는 뜻이다. ‘광’의 사전적 의미는 세간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두는 곳이다. 고(庫), 곳간, 곳집 등의 유의어가 있다. 한자말 광(廣)에서 온 말이라고 생각되는데, 사전적 풀이는 자세하지 않다. 대개는 이 한자말의 뜻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인다. 한자말 광은 너비, 넓이, 폭 등의 유의어가 있고 일정한 평면에 걸쳐 있는 공간이나 범위의 크기를 말한다. 광과 비슷한 말로 간(間)이 있으나 광(廣)과는 결이 좀 다르다. (間)에는 곡간(穀間), 곳간, 마룻간(大廳), 정지간(부엌), 헛간, 외양간, 칙간(廁間, 뒷간, 똥간, 거름간) 등의 용례가 있다. 집 몸채의 이쪽저쪽을 나누는 사이(間)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곳간은 고간(庫間)에서 온 말이지만 곡간과 같은 말이므로 곡식을 넣어두는 창고 혹은 곡식을 저장하는 어떤 공간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시간, 공간, 인간 등 간(間, 틈, 사이)이라는 용어의 쓰임새에는 한국인들의 관계론적 관념과 철학적 배경이 있다. 장광(醬廣)은 흔히 ‘장고방(醬庫房)’, ‘장꼬’라고도 한다. 장독, 장독대의 다른 이름이다. 남도 전역에서 장꼬방, 장끄방, 장꾸방 등으로 불리는 것은 모두 한자말 장고방(醬庫房)의 와음들이다. 우리말 갈래 사전에 의하면 장독간(醬독間)은 장독을 두는 ‘간’을 말하며, 장독대(醬독臺)는 장독을 놓아두는 높직한 대(臺)를 말한다. 모두 장(醬)+독+간(間), 대(臺), 방(房), 고(庫), 고방(庫房)의 합성어임을 알 수 있다. 곳간은 고, 광, 곳집, 경, 저장고, 창, 창고, 창름 등의 용례가 있다. 고방(庫房)은 살림살이를 넣어두는 방을 말한다. ‘고방’을 줄여서 ‘광’이라 한다. 장독대의 독은 한자로 치환이 안 되는데, 순우리말 ‘도가지’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는 ‘도가지’를 독의 방언이라 하고 경상, 전라, 제주, 중국 길림성 등의 방언이라 한다. 그래서 남도 지역에서는 ‘장독’을 ‘장도가지’라 한다.



남도지역 장광의 아우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펴낸 ‘한국의식주생활사전’에서도 이에 대한 설명을 해두었기에 여기 인용해둔다. 간장, 된장, 고추장 따위를 담은 독이나 항아리를 놓을 수 있도록 뜰 안의 일정한 곳에 마련한 축대가 장독대다. 북한에서는 장독걸이, 중부 및 경상도에서는 장독간, 전라도에서는 장광, 제주도에서는 장항굽이라고 부른다. 전라도의 장광은 주위에 담을 두르고 문까지 따로 달아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가 흔히 남도를 ‘맛의 고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와 연관이 깊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장독대의 위치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경상도 상류 가옥에서는 흔히 안마당에 차리며, 겨울철에 눈이 많이 쌓이는 울릉도에서는 부엌 부뚜막 건너편에 마련한다. ‘장독대’가 ‘장독’을 두기 위해 뜰 안에 좀 높직하게 만들어 놓은 곳이라는 장소적 뜻임에 비해 ‘장광’은 집의 몸채를 구분하여 부르는 방식과 중요한 물건을 간직하여 두는 곳으로서의 ‘광’의 호명 방식을 합친 의미로 이해된다. 장꼬방도 마찬가지로 ‘방’의 의미를 부여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장독을 놓는 장소라는 뜻을 넘어선다. 마치 ‘곳간’이 고간(庫間) 즉 곳집(창고)이고 이것이 식량을 저장해두는 곡간(穀間)인 것과 같다. 위 사전의 설명에서 전라도의 장광은 주위에 담을 두르고 문까지 따로 달아서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설명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안채, 사랑채, 행랑채 등 살림채와 대등한 위상으로 장독대를 인식하거나 혹은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공간이라는 뜻이다. 장광은 뒤꼍의 장독대를 포함해 흙돌담 아래의 양지바른 공간과 터줏가리를 세우거나 석단을 쌓아 당산을 만들고 성주신, 천륭신, 칠성신 등을 모시는 공간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한창의 ‘장보, 동아시아 장의 역사와 계보’에 의하면, 박정희 정권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생활개선 운동과 주택의 아파트화를 진행하면서 장애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장독대 없애기 운동을 펼쳤다. 이를 홍보하기 위해 계몽영화를 만들어 서울과 부산의 각 극장에서 상영토록 했으며, 1억 원의 자금을 정부가 지원해서 부평 효성동에 한식 간장 생산공장을 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국가정책에 대한 성찰을 도모하고 현대적으로 재구성된 장독대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옳다. “장맛이 좋아야 음식 맛이 좋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우환이 있다” 등의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전해오는 것은 우리에게 장이 단순히 기본양념의 개념을 넘어,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문헌에서는 장류를 ‘쟝’으로, 간장은 ‘쟝’, ‘지령’, ‘지렁’, ‘청장’이라고 하고, 담는 그릇을 ‘지렁 종지’라고 하였다. 서정범 국어어원사전에서 이를 ‘짜다’에서 변한 말로 설명하고 있다.

다행히 장광 문화의 전통과 비전에 눈을 뜬 이들이 보존과 전승, 나아가 여러 방면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어떻게 전통을 계승하고 확장해갈 것인지 매우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와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발효음식의 장소성을 장광으로 대변할 수 있다면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듯하다. 장광이 기본적으로 기다림의 철학과 미학이 공존하는 장소임에 틀림 없다. 지면상 여기서는 생략하였지만, 신성한 공간으로서의 의미들이 모두 기다림을 전제한 장치들이다. 정화수를 떠놓고 신의 응답을 기다리거나 멀리 떠난 자식들을 기다리는 따위가 그것이다. 장류와 젓갈류, 김치류 등의 발효음식을 저장해두고 그것이 익거나 적어도 감칠맛 나기를 기다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인문학적 상상력이 동원될 필요가 있다. 살림집이 하나의 음악이라면, 그래서 우리의 삶이 하나의 연주라고 한다면, 몸채와 사랑채와 안뜰과 뒤뜰과 외양간과 곳간과 그리고 장광이 연주하는 리듬과 장단과 혹은 색깔들이 오방색으로, 무지개색으로 혹은 더 많은 삶의 색깔들을 담아내는 그림이나 음악으로 표현될 것이다. 사실은 색깔로만 치자면 장광은 화려한 오방색보다는 담색(淡色)의 풍경에 훨씬 어울리긴 하지만 이 부분은 차후 기회가 있으면 풀어 설명하기로 한다.



남도인문학팁

간장포럼과 장문화축제

이즈음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중 ‘흑백요리사: 요리계급전쟁’이 장안의 화제다. 단순한 음식이나 셰프 팬덤이 아니라, 이 현상이 이끌고 있는 세계사적 조류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인류의 음식문화는 발효 분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세계 레스토랑 탑텐에 한국의 어느 레스토랑이 선정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나는 하고 있다. 물론 전제가 있다. 발효음식을 주전공으로 하는 레스토랑 말이다. 그 전통적이고 신성하며 오리지널한 장소성을 ‘장광’에서 찾아보자는 게 내 취지다. 이번 거창 수승대발효마을 동계종택에서 열리는 제2회 장문화축제는 10월 19일(토)부터 20일(일)까지 열린다. 우태영 간장포럼 대표의 ‘장독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기조 발제를 시작으로 내가 ‘장광의 아우라’에 대해, 김홍렬 교수가 ‘장독대의 문화 산업적 의미’를, 김소영 박사가 ‘항아리 전통장’에 대해 각각 발표한다. 이보배 기능장과 문성희 대표의 장음식전을 비롯하여, 예술원 회원으로 있는 신달자의 시낭송, 허튼가락 창시자 임동창의 달빛 장독대 콘서트도 열린다. 이외 장독굿을 비롯해 전국의 장 100선전, 다양한 체험프로그램까지 마련되어 있다. 이번 장문화축제를 통해 슬로푸드 및 슬로라이프 운동을 넘어서는 세계적 발효문화 운동이 일어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