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윤승태>해양학자의 환경일기 ‘서른두 번째 기록-CREAMS 3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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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유전자·윤승태>해양학자의 환경일기 ‘서른두 번째 기록-CREAMS 30주년’
윤승태 경북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부 해양학전공 조교수
  • 입력 : 2024. 08.13(화) 16:55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해양연구소와 한국해양학회는 7월31일 CREAMS 프로그램 3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행사를 개최했다. 서울대학교 제공
동해는 북태평양의 연해(緣海, Marginal Sea)로 대양에 비해 크기는 매우 작지만 ‘작은 대양’이라 언급될 정도로 해양학적 중요도가 매우 높은 바다다. 동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북한, 러시아, 일본, 그리고 멀게는 중국까지 5개국 사이에 위치해 군사적 긴장감이 매우 높은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국제 사회에 표면화되면서 한·미·일, 북·중·러가 거칠게 맞서는 양상이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로 여겨진다.

이처럼 나라 간의 이해관계가 매우 첨예하게 얽혀있는 동해에서 연구자들은 어떻게 동해의 해양학적 중요성을 밝혀 왔을까? 이 질문의 답은 바로 CREAMS라는 프로그램에서 찾을 수 있다. ‘CREAMS’는 ‘Circulation Research of East Asian Marginal Seas’의 약자로, CREAMS 프로그램은 동아시아 연해의 해양 순환을 연구하는 프로그램이다.

CREAMS 프로그램은 1993년 출범해, 초기에는 한-일-러 3국이 동해 전역을 대상으로 국제 공동조사를 수행하였고, 이후 중국 등 주변국들과 미국이 함께 참여해 동해, 동중국해를 포함한 동아시아 연해를 대상으로 다수의 국제 공동조사를 수행하였다. 2005년부터는 북태평양해양과학기구(PICES; The North Pacific Marine Science Organization)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이어져 현재까지 PICES 내 전문가 그룹을 통한 국제 협력이 지속되고 있다. 동해를 비롯한 우리나라 주변해에서 얻어진 수많은 과학적 발견은 CREAMS 프로그램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서울대학교에서는 CREAMS 프로그램의 3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학술행사가 개최되었다. 초기 CREAMS 프로그램을 이끌었던 한-일-러 원로 연구자들과 한반도 주변해를 연구하는 연구자들 그리고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CREAMS 프로그램에서 얻은 성과들을 재고하고, 현재 진행 중인 연구들과 미래 연구 방향에 관해 공유하고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필자도 학위 과정 시절 CREAMS 프로그램을 통해 관측한 자료로 동해 심층수의 형성이 다시금 시작되었음을 발견했는데 해당 연구가 30주년 행사에서 소개되고, 현재 진행 중인 연구들에서도 활발히 인용되는 것을 보니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학술행사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발표는 CREAMS 프로그램이 동아시아 해양학 역사에서 가지는 의미에 관해 설명한 김성은 박사(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의 발표였다. 발표에서는 CREAMS 프로그램 초기에 있었던 러시아 선박의 일본항 입항 거부 사건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비를 써야 했던 일본 원로 교수의 일화를 예로 들며 동아시아 해양학 역사를 매우 흥미롭게 풀어 내었고, CREAMS 프로그램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초국가적 협력 프로그램이라 평했다. 또한, 프로그램 초기 공동조사 때 찍은 사진들도 다수 공개해 원로 연구자들을 비롯 청중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과거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필자도 2012년과 2013년 러시아 관측선에 승선해 한러 공동 관측을 수행하고 러시아 태평양해양연구소에서 러시아 연구자들과 방문 연구를 수행했던 기억이 났다. 언어적 장벽은 있었지만 한국과 러시아 연구자들 모두 동해를 연구한다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동해 북부를 성공적으로 관측하고 연구 자료도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업무 이외 시간에는 친분을 쌓은 러시아 연구자들과 함께 해수욕도 하고 성게를 따먹기도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비롯해 이념, 종교, 사상 등의 대립으로 세계 곳곳은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올해가 CREAMS 프로그램 30주년이지만 안타깝게도 한반도 주변해 공동조사 횟수는 점점 더 줄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현 상황의 원인을 국제적 정세 때문만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한·러·일을 비롯한 주변국들이 과학적 성취만을 목적으로 순수하게 협력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해양학 후속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번 30주년 행사를 계기로 한·러·일 동해 공동조사가 다시금 부활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