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그의 고뇌와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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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그의 고뇌와 의지
우민호 감독 ‘하얼빈’
  • 입력 : 2024. 12.30(월) 17:18
우민호 감독 ‘하얼빈’. CJ ENM 제공
우민호 감독 ‘하얼빈’. CJ ENM 제공
‘광화문 초대장’으로 일컬어지는, “이 시국의 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는 ‘하얼빈’이 개봉되었다. 우민호 감독은 전남 출신답게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를 중시 여기는 감독이라 전작인 ‘내부자들’(2015) ‘남산의 부장들’(2020)을 통해 권력과 부패, 인간의 욕망을 심도 있게 파고든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준 바 있다. 그의 여섯 번째 작품인 ‘하얼빈’은 이와 달리 역사극에 도전한 것이다. 한 시대를 집요하게 파고든 감독의 예리한 연출력은 도리어 우리가 처한 현실이 더 뚜렷하게 보이는 대작다운 면모가 있었다.

영화의 첫 신은 꽁꽁 얼어붙다 못해 균열로 갈라터진 두만강을 고뇌에 찬 한 사람이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 걷고 있다. 그 사람은 다름아닌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배우 현빈)이다. 그가 이끌었던 독립군은 구국의 일념으로 뭉친 기개가 대단해서 일본군과의 신아산(함경북도) 전투에서 승리하는 쾌거를 이룬다. 안중근은 사로잡은 일본군 포로를 만국공법을 지키기 위해 풀어주었건만, 풀려난 일본군 소좌 모리 다쓰오(배우 박훈)는 되레 급습하여 많은 독립군 동지들의 귀중한 목숨을 빼았는다. 고뇌와 슬픔, 자책으로 길을 잃고 안중근. 독립군 사이에는 안중근에 대한 의심과 질책이 따르게 마련인지라, 그는 자신의 약지를 잘라 을사늑약의 원흉인 총감 이토 히로부미(배우 릴리 프랭키)를 처단할 것을 맹세한다. 이듬해인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의 협상을 위해 하얼빈 행을 하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중근과 독립군 일단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한다. 이곳에서 만난 공부인(배우 전여빈)은 독립군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나 그녀 역시 신념 투철한 여성 독립투사로서 조력에 최선을 다한다. 그녀는 안중근과의 마지막 대화를 이렇게 나눈다. “먼저 가신 동지들이 지켜줄 겁니다.”

115년 전 당시 독립군들의 일념이자 소명은 ‘구국’이었으리라. 그렇다고 그들 간에 갈등과 고뇌가 없었을 리가 없다. 먼저 간 동지들의 삶을 대신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고난이자 책무이며, 내적 갈등이 읾에도 나아가야 하는 동력이자 신념이었을 것이다. 감독은 안중근을 새롭게 해석했다. 안중근 의거에 동참한 우덕순을 위시한 수많은 독립군들의 희생이 없고서야 안중근도 의거에 성공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과연 독립이 될까?”라는 의구심과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맞서야 했고, 이름 없이 잊히고 말 존재라는 사실도 인정해가며, 먼저 간 동지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온 몸을 바쳐 싸우는 불굴의 의지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자리했다.

영화 속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을 이렇게 평가한다. “500년을 이어온 조선은 무능한 왕과 어리석은 유생들이 이끌어왔지. 그렇지만 국민들은 달라. 조선인들은 국난을 당할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야. 300년 전 침공때에도 생각지도 않은 의병이 일어났어.” 가장 두려운 존재가 ‘민초’들이란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 모두가 아는 위인이다. 그가 갖는 역사적 아이덴터티에 감독은 인간적 면모를, 동지애를, 투철한 희생과 신념을 지극히 담백하게 조명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그 당시의 현실감이다. 영화는 이를 위해 라트비아와 몽고의 러시아 유적건물이 있는 거리를 로케이션 헌팅을 했다. 정평이 난 홍경표 촬영감독의 연출하에 ARRI ALEXA 65 카메라로 회화적 미장센을 구현했으며, OST며 BGM 또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로써 몰입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정성을 기울인 것은 의상과 소품도 예외가 아니었다. 관객을 당시로의 시간 이동에 용이하도록 한 여러 요소로 인해 영화 ‘하얼빈’은 큰 무리 없이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고 본다. 영화의 말미에 감독의 메시지가 집약돼 있다. “어두움이 있어도 횃불을 들고 나아가야 한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