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제로 칼로리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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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제로 칼로리 쌀
송민섭 취재2부 기자
  • 입력 : 2024. 08.12(월) 18:10
송민섭 기자.
저녁 반찬 거리를 사러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갔다. 겸사겸사 간식거리도 골랐다. 과자, 음료수, 아이스크림 등 주전부리는 어느새 카트를 가득 채웠고, 본래 목적인 반찬은 카트 맨바닥에 찌부러져 보이지도 않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하지만 양심은 있었다.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에 물건을 올려놓는데, 죄다 제로 칼로리였다. 제로 음료, 제로 아이스크림, 저당 과자 등이었다. 몸매 관리 차원에서 평소 먹거리를 살 때면 성분표를 자주 보는데, 제로 문구가 적혀있으면 그런 귀찮음도 덜 수 있다. 살이 안찔거라는 믿음 덕이다.

카운터에 주전부리를 다 올려놓고 주식인 쌀과 닭가슴살을 올려놓았다.닭가슴살은 저칼로리이니 논외였다. 쌀만이 제로 칼로리 속 유일한 고칼로리 식품이었다. 보고 있자니 문득 ‘제로 칼로리 쌀이 있다면 쌀 소비 촉진 운동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겸사겸사 쌀을 왜 안먹을까도 생각해봤다. 당연히 ‘살이 찔까봐’다. 살이 안찐다면 파스타, 베이글과 같은 제품보다 많이 팔릴 것이다. 어느새 우리 사회에 ‘쌀은=탄수화물’ ‘탄수화물=살’이라는 공식이 자리잡힌 결과다.

실제 쌀 소비량은 많이 줄었다. 거의 반토막이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4㎏으로 30년 전인 1993년(110.2㎏)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올해 1분기 농협과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의 쌀 판매량은 전년보다 4만톤(-12.9%), 평년 대비 3만5000톤(-11.4%) 줄었다. 농협은 농가가 생산한 쌀을 수매해 임도정공장 등에 쌀을 판매한다. 농협과 RPC 판매량이 줄어든 만큼 전체 쌀 소비량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가파른 수요 감소세를 보여주는 단면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국 단위농협에선 매년 쌀 소비 촉진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침밥 먹기가 대표적이다.이마저도 살이 찐다는 인식 탓에 거르는 사람들이 많다.

반전은 없을까. 정부의 노력이 있다면 가능하다. 자연재해 급의 소비율 저하 상황에 농가들의 경영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쌀 농가의 소득·경영 안전망 구축은 필요하다. 다만 과잉공급이라는 원인을 그대로 두고 쌀 소비율이 떨어진다는 결과만 탓해선 안된다. 이에 앞서 재배면적을 줄이고 소비를 늘리는 정책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제로 칼로리 쌀이 있다면, 우리는 쌀 소비 촉진 운동을 고민할 필요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제로 칼로리 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쌀을 단순히 고칼로리 식품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 전통과 식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인식해야 한다. 쌀은 우리의 식탁에서 배제될 대상이 아니라, 다시금 재조명되고 소비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이다. 비록 ‘제로 칼로리’ 시대를 살고 있지만, 쌀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건강과 문화, 그리고 농업을 지키기 위해, 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