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뱅 쇼메 감독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정원’ 포스터. |
실뱅 쇼메 감독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정원’. |
영화 ‘마담 푸르스트의 비밀정원’은 2013년에 만들어진 영화다.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재개봉을 두어 차례 해온 명작이기도 하다. 며칠 전에도 재개봉이 되어 영화관을 찾았다. 타이틀을 보면, 소설가 프루스트의 이름이 연상된다. 그럴 뿐 아니라, 시나리오를 쓴 감독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대놓고 벤치마킹했다. 소설가 프루스트는 이 책을 통해 ‘무의식적 기억을 통한 회상’으로 과거 행복했던 시간을 현재에 불러일으키고자 했는데, 영화 역시 이를 그대로 대입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들렌. 영화에서도 마들렌과 홍차를 매개 수단으로 유년시절의 시간을 현재에 회귀시키는 방법을 차용했다. 다만, 시나리오를 쓴 감독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스토리는 좀 달랐다.
두 살에 부모를 모두 여읜 폴(배우 기욤 구익스)은 부모 잃은 사고현장에 함께 있었다. 그후로 말을 잃은 채 두 이모, 앤니(배우 베르나데트 라퐁)와 앤나(배우 헬렌 빙생)와 함께 산다.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이 폴의 일상이다. 그렇지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경연 준비중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모들의 목표이자 꿈이다. 내면에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는 그에게 유일한 낙은 슈케트를 사먹는 것뿐. 어느 날 우연히 이웃인 마담 프루스트(배우 안느 르 나이)의 집을 방문한 폴은 그녀가 아파트 안에서 식물을 키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마담 프루스트는 폴이 자신의 비밀정원을 알게 된 사실을 기억에서 지우게 하려고 그녀가 키우는 작물로 우려낸 차에 아스파라가스를 넣는다. 폴이 차와 마들렌을 먹자 순간 기면상태에 빠지고 그 시간 동안 잃어버린 과거의 시간을 다녀온다. 마담 프루스트는 폴의 집열쇠를 챙겼다가 몰래 폴의 집에 들어가 폴이 아빠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여운 생각이 든 마담 프루스트는 폴이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차와 마들렌을 대접한다.
영화는 마담 푸르스트의 차와 마들렌이 유발하는 과거 시간으로의 경험이 폴의 정신적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려 나가고 있다. 아빠가 엄마를 학대한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와 아빠와 엄마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의 현격한 차이는 상흔과 치유 만큼의 거리가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이 치유는 33세의 폴에게 콩쿠르에서 ‘청년독주자상’을 안겨줄 만큼 대단한 것이어서 내면의 무의식 속에 자리한 인간의 상처는 반드시 꺼내고 들여다봐야만 할 것 같다.
감독은 무의식의 세계를 어렵지 않게 그려냈다. 영화의 첫 신은 아기 폴의 시점에서 카메라 워킹이 시작된다. 폴의 아빠는 그랜드캐년 대형 광고판에 정신이 팔려 있다. 영화의 마지막 신은 폴의 아기의 시점이다. 폴과 아내 미셸(배우 키 카잉)이 그랜드 캐년을 바라보고 있다. 첫 신에서 엄마 아니타(배우 파니 투롱)가 아기 폴이 말하는 첫 단어 ‘파파’에 놀라운 기쁨의 탄성을 내지르듯, 마지막 신에서는 미셸이 아기가 말을 한다며 탄성을 내지른다. 첫 신과 마지막 신을 아기의 시선으로 연출한 것이 정리와 마무리를 잘한 것마냥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끌고 가는 음악이 매력적이었다. 피아노 연주곡이 폴의 무의식 세계 속에 등장하는 개구리 밴드와 믹스되는 신선한 조화 그리고 우쿠렐레 연주가 저렇게 따뜻하고 아름다웠나 싶게 밝은 에너지를 주는 등등 음악이 여운으로 강하게 남았다.
두 이모의 의상이 아니었더라면 코미디 장르임을 잊을 뻔했다. 그래도 구성을 되새겨보거나 곱씹어보면 코미디가 분명하기는 하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한 구절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일은 이렇듯 여러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영화에서처럼 상처였던 과거의 서사를 수정하고 치유받은 현재로, 행복을 향해 나아갈 미래를 찾아가는 일이 될 수 있다. 긍정적으로는 잠재의식 속에 갇혀 있던 이드와 에고를 통합, 슈퍼 에고를 지향해갈 전환점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남성의 무의식 인격의 여성적 측면 아니마와 여성의 무의식 인격의 남성적 측면 아니무스의 통합으로 향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마담 프루스트가 남긴 쪽지에는 ‘Vis ta vie (네 인생을 살아라)’라 적혀 있다. 나쁜 기억일랑 행복의 무게로 가라앉게 하고 한 번밖에 없는 나의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모두에게 필요하고 다 알고 있는 얘기지만 스토리가 있는 영화로 리마인딩 해 봄도 새로운 일이다.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