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48> 북극, 세상의 온전함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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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전남일보]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48> 북극, 세상의 온전함을 전하다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국내 최초 캐나다 북극 킨가이트 교류
이누이트 대표 문화예술 기관과 연계
‘웨스트 바핀 에스키모 쿠퍼레이티브’
현지서 전통문화 교육 프로그램 진행
내년 이강하미술관 상반기 전시 선봬
  • 입력 : 2023. 12.10(일) 15:09
캐나다 북극 킨가이트의 해안가 풍경. 이선 제공
그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를 움직이는 예술가들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가슴에 오래 남는다. 그것은 예술이 오랜 시간 시대적 문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왔다는 역사적 증명이기도 했다. 어쩌면 예술가는 대중들에게 시대의 문제를 법, 제도, 정책보다도 더 나은 방향과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감각적으로 풀어나가는 시대의 행동가인지 모른다. 이제 예술의 주제와 영역은 미술관의 공간을 넘어서 자연과 기후, 지구의 문제까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졌다. 최근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많은 과학자와 현대 시각 예술가들이 앞 다투어 의견과 대안 그리고 기술과 예술의 새로운 협업의 시도들이 구현되고 있다. 탄소 중립, 지구 온난화 등의 환경 문제 그리고 기후위기 안에서도 북극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제 7의 대륙’으로 불리 우고 있다.

본 칼럼의 필자는 2023년 한국과 캐나다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진행되었던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캐나다 파빌리온 <신화, 현실이 되다> 전시를 성황리에 추진하고 이를 확장하는 프로젝트로 이누이트 예술과 예술가를 직접 만나 국제 문화교류 및 소수 민족의 문화 다양성의 이해를 높이자는 목적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 기획은 상반기 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 캐나다 국제예술공동기금사업의 일환으로 Canada West Baffin Eskimo Cooperative 협업프로젝트가 선정되었고, 지난 11월에 한국 최초로 캐나다 북극 킨가이트 국제교류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실제 캐나다 파빌리온 전시명처럼 ‘신화가 현실이 되는’ 가슴 벅찬 순간들이었다.) 우리의 출발은 광주 유스퀘어터미널에서 인천→ L.A→ 캐나다 토론토→ 오타와→ 이칼루이트를 걸쳐 최종 목적지 킨가이트로 가는 곳곳의 여정들은 살면서 단 한번도 북극을 상상해 본적이 없었던 나에게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이 Canada West Baffin Eskimo Cooperative(웨스트 바핀 에스키모 쿠퍼레이티브) 스튜디오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본인 제공
이 도전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캐나다 협력기관 <웨스트 바핀 에스키모 쿠퍼레이티브>는 케이프 돌세트로 알려진 캐나다 북부의 에스키모족 자치구인 누나부트 지역 킨가이트 섬에서 존경받는 이누이트 예술(Inuit Art) 예술을 60년 넘는 시간동안 발전시켜 온 대표 문화예술 기관이다. 캐나다 북극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킨가이트는 4대에 걸친 대표적인 이누이트 작가들의 본거지이다. 캐나다 연방정부 경제를 창출하기 위해 고안한 프로그램 웨스트 바핀 에스키모 쿠퍼레이티브는 캐나다에서 중요한 이누이트 현대미술 스튜디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공동 작업장이다. 캐나다 원주민으로 구성 된 이누이트 예술가들이 사는 본토 지역을 광주 기획자와 작가, 캐나다 기획자와 작가들이 함께 만나 조사 및 연구 작업을 진행하였다. 특히 북극은 한국과 다른 자연 환경과 사회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누이트 민족의 전통성과 민족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성과 포용성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누이트 예술의 대표 화가인 케노주악 아셰박(Kenojuak Asheva) 작 판화. 웨스트 바핀 에스키모 쿠퍼레이티브 소장
“예술에는 말이 필요 없고, 현실에서 비현실로 무언가를 옮기는 거예요. 저는 올빼미예요. 행복한 올빼미죠. 저는 사람과 모든 것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좋아요. 저는 행복의 빛이고 춤추는 올빼미예요.” 케노주악 아셰박(1927-2013).

어쩌면 세상의 끝, 북극은 모든 것이 불온전함 속에 존재한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 환경과 이누이트 민족들 그 사이를…. 낮은 온도, 강한 바람, 매서운 눈보라로 알려진 블리자드(blizzard) 강풍 속에서 온전한 것이 하나 없는 모든 것들이 흔들림의 연속이었다. 눈보라가 부는 눈 비탈길을 한걸음, 한걸음을 떼는 것조차 쉽지 않고, 모든 것들은 하얀 눈 속에 파묻혀 온 세상이 바닷물과 눈으로 둘러싸여 있어 살아있는 모든 것이 귀하게 느껴졌다. 자연 환경에서 생산되는 것이 없으니 상상 이상의 높은 물가에 재료를 구해서 요리를 해먹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생활이고, 모든 음식이 비행기나 배로 수입 된 냉동식품으로 대체되어있는 실정이었다. 또 모든 마을사람들은 가끔씩 얼지 않은 바닷물에 밀려온 고래와 물고기들을 날것으로 나누어먹는 전통도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킨가이트에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이누이트 민족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주민 커뮤니티 워크숍과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여 준비해 갔는데 그곳에 다양한 세대별 이누이트 민족들과 작가활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이 가진 4계절 자연모습과 이누이트어로 번역 된 소개글이 담긴 영상 및 전통놀이 제기차기, 연날리기, 공기놀이 등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쇼셜 미디어를 통해서 한국과 한류문화(오징어 게임, 블랙핑크, 방탄소년단)등을 알고 있던 몇몇 분들에게 한국말도 알려드리고 소통하게 할 수 있어 한국인으로써 뿌듯하고 기뻤다.

웨스트 바핀 에스키모 쿠퍼레이티브 스튜디오에 작업중인 ‘카버바우 메뉴미’ 작가와 만남. 이선 제공
올해 캐나다 파빌리온 <신화, 현실이 되다> 전시회에 참여했던 이누이트 작가들도 만나 상상과 현실이 함께 조화를 이룬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그들이 매일 마주하고 들으며 성장했던 신화, 설화의 이야기와 이누이트 민족의 전통적 삶과 작품 세계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이누이트 예술에 깊은 감동과 울림이 있었다. 킨가이트는 영어, 불어, 이누이트 언어가 섞여 있는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있는 가운데, 그들과 공감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중요한 지점은 우리가 어쩌면 한 핏줄의 민족이었을 수 있었거나, 예술의 공통점, 신화와 전통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과학적 또는 통계적으로 눈으로 확인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것들이 더 강력하게 우리를 끌어당겼을지 모른다) 어쩌면 떠나고, 흩어지는 것들에 익숙한 킨가이트 사람들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들어 돌아오는 마지막 날 영상편지를 남기고 우리의 만남을 기억하기로 했다. 우리는 북극에 머무르는 동안 불온전함 속에서 세상의 온전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 한국과 캐나다 리서치 프로젝트를 통해 두 나라의 예술 작품과 예술가들의 지속적인 조사 연구와 발전에 따른 성장을 이끌어내며, 국제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올해 진행되었던 ‘캐나다 국제예술공동기금사업’ 리서치 프로젝트의 결과는 내년 이강하미술관의 상반기 기획 전시회로 선 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