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스미스 작 자유낙하/에치젠 고조 키즈키 종이에 요판 인쇄, 포토그라비어, 에칭, 드라이포인트/ 84.5x106.7cm/1994. |
여성의 몸으로 시작해 종교, 신화, 우주로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예술가, 키키 스미스(KikiSmith, 독일 태생, 1954~)는 미국 페미니즘 대표 미술가이자 1960년대 미니멀 조각가였던 토니 스미스의 딸이기도 하다. 작가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터부(taboo: 금기)시 되었던 여성 신체의 사실성과 보이지 않는 체액의 분비나 배설의 측면을 집요하게 탐색의 대상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업의 주제로 삼았다. 최근 종료 된 서울시립미술관 ‘키키 스미스’의 대규모 아시아 첫 개인전 ‘자유낙하 Free Fall’는 생명의 취약함과 불완전함을 숙고하고 숭고하게 한다. 작가는 자신이 신체에 관심을 작업의 영감으로 두게 된 이유가 단순히 여성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부각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신체(身體) 야말로 “우리 모두가 세계와 공유하는 형태이자 각자의 경험을 담을 수 있는 그릇” 이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또한 인체 내 장기를 묘사한 작품이자 인물의 전신상을 제작하면서 분절되고 파편화된 인체 표현과 혐오의 예술적 미학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번 전시의 주제 ‘자유낙하’(自由落下(free fall), 뉴턴역학에서는 오직 중력만이 작용하는 물체의 운동을 일컬으며, 일반 상대론에서는 아무런 힘이 작용하지 않는 물체가 시공간의 지름길을 따라가는 운동을 일컫는다) 는 신체를 탐구하는 작가 작업 세계의 다양한 역동성과 의식(정신) 이상의 것이자 우리가 생을 체험하는 일차적인 수단으로 상징하는 키워드로 등장하며 무엇보다 키키 스미스 자신만의 언어와 문법, 표현과 매체, 주제와 도상을 달리하여 실험해 온 유연함이 큰 특징을 보여준다.
키키 스미스 작 황홀/청동/170.8×157.5×66.7cm/2001/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제공제공 |
작가는 연이은 아버지와 에이즈로 목숨을 잃은 언니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인간의 질병과 죽음의 이미지가 결부되어진 분절 된 신체 조각에 치중하게 되었다. 그는 기존의 신체를 심미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닌 해부학적 관점에서 접근했으며, 응급의학기술 훈련의 경험을 통해 얻은 의학지식으로 늑골, 자궁, 신경, 근육, 난자, 정자 같은 비가시적인 신체부위를 관찰하고 작품으로 재현하기도 하였다.
특히 1980년부터 1990년대 미술계의 주된 현대 미술의 담론으로 등장했던 섹슈얼리티(sexuality, 19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용어로 ‘성적인 것 전체’를 의미한다. 즉, 성적 욕망이나 심리, 이데올로기, 제도나 관습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인 요소까지 포함)와 동성애, 그리고 에이즈에 대한 공포심은 키키 스미스가 신체의 안과 밖을 집요하게 탐구하며 해부학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키키 스미스 작 무제Ⅲ: 구슬과 함께 있는 뒤집힌 몸/가변 설치/청동, 유리구슬, 철사/1993/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제공 |
작업에서 ‘여성의 몸’을 소재로 신체 분비물을 적나라하면서 그로테스크하게 다루며 인간 전체의 몸을 연약한 임상 표본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영혼을 담는 형태적 기관으로 보았다. 그의 관심은 점차 신화적이고 초월적 힘을 가진 여성상을 향하고 있었으며, 우주적 세계관에 대한 탐구로 그 의미 체계를 확장시키고 있다. 분절되고 파편화 된 인체의 표현과 더불어 신체 배설물까지 가감 없이 다루면서 신체의 비위계적 태도를 취하며 1990년대 미국 애브젝트 아트(abject art, 매혹과 반감이 공존하는 불쾌한 존재이자 모든 주체의 정체성과 통일성, 체계, 질서를 무시하고 위협하는 중간적인 것, 복합적인 것으로 주체가 주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억압하고 밀어내는 존재)를 대표하는 작가로도 인식되기도 하였다.
몸의 모든 구멍에서 일제히 토하듯 쏟아내는 신화적 모티브의 조각 작품들은 억압된 여성적 몸에 갇힌 내면의 폭발을 표현해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작품 안에서 신체를 표현함에 있어 종이나 왁스 같은 유연한 재료를 즐겨 사용하였고, 이러한 재료는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울 뿐만 아니라 사람의 피부와 체액과 가장 흡사한 질감을 나타내어 관객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는 현대예술의 여성 신체를 주제로 작업하는 많은 예술가들과 달리 자서전적인 작업 방식에서 탈피하고, 중세 기도서와 인디언의 전통문화, 고전의 신화 등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 신체로부터 나온 피와 눈물, 오줌과 젖 등을 무형의 종교적 신앙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2000년대 이후부터는 최근까지 동물, 자연, 우주 등 주제와 다양한 매체, 소재들을 점차 확장하여 작업의 경계 없이 비선형적 독자적인 서사를 구현해오고 있는 것이다.
키키 스미스 작 하늘/면 자카드 태피스트리/2001/페이스 갤러리관 전시 |
얼마 전 종료 된 서울시립미술관 키키 스미스의 개인전 1-2층 전시장에 입장하게 되면 작가가 자신 작업의 극적인 내러티브를 더 생동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조향사와 함께 만든 고유의 ‘Kiki Smith-Free Fall’‘ 블렌딩 된 향을 전시 관람 장치로 연출하기도 하며 관람의 후각적 경험까지 선사하여 현장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자신의 삶과 깊이 연결 된 조각, 사진, 회화, 설치, 판화 등 140여점의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서 크고 작은 생명들에 귀 기울이며 길 잃음-배회(wandering)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그는 “예술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과 작업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길을 잃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점점 더 명확한 답을 요구하는 지금의 현대 사회에 자유로운 예술가, 키키 스미스가 전하는 자유낙하의 본질적 질문이자 사유적 메시지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