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46-1> 풍년의 역설…악순환에 울상짓는 농민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일주이슈
일주이슈46-1> 풍년의 역설…악순환에 울상짓는 농민들
쌀 수확량 늘었어도 가격폭락에 ||손에 쥐는 돈 별반 다르지 않아||'농민 없는' 정부 정책이 문제 ||다른 작물도 해마다 되풀이 돼 ||흉년만큼이나 풍년도 무서워
  • 입력 : 2021. 11.14(일) 17:39
  • 홍성장 기자
쌀값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농민들. 뉴시스
흉년이 와도 울상, 풍년이 와도 농민은 울상인 역설적인 상황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흉작이면 내다 팔 쌀이 부족하고, 풍년이면 쌀값 폭락으로 자식 같은 쌀을 헐값에 팔아야 하는 일이 매년 반복되고 있어서다. 그야말로 '풍년의 역설'이고, '농사를 짓는 일은 천하의 근본'이라는 말이 무색해진 농촌의 현실이다.

영광에서 6만6115㎡(2만평·100마지기) 벼농사를 짓는 이석하(53)씨. 올해 벼농사 손익계산서만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그는 올해 100마지기 논에서 40㎏들이 나락 1100가마를 수확했다. 사상 최악의 흉년이었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수확량은 대폭 늘었다. 지난해 같은 면적의 논에서 수확한 나락은 40㎏들이 825가마에 불과했다. 잦은 태풍과 역대 최장기간 장마 등의 영향 때문이었다.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난 수확량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지난해 40kg들이 나락 1가마의 가격은 7만1000원 정도였다. 생산한 나락을 모두 판매했다고 가정하면 그가 얻을 수 있는 조수입(필요한 경비를 빼지 아니한 수입)은 5859만5000원이다.

올해는 40kg들이 나락 1가마 가격이 내려갈 것이란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전해지는 가격은 6만4000원 정도다. 역시 모든 나락을 판매한다면 그가 얻을 수 있는 조수입은 7040만원이다.

단순 계산으로 지난해보다 그는 1100만원 정도의 조수입이 늘기는 했다. 하지만 현실은 서글프다. 그가 농사짓고 있는 2만㎡ 논 대부분은 임대한 논이다. 때문에 임대료에 종자값, 기계 삯, 농약값, 비료값 등을 제외하면 그의 순 수입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오른 비료값과 농자재 값 등을 고려하면 올해 수입 역시 지난해와 비교해 별반 다르지 않다. 늘어난 나락 수확량에 이씨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그는 "올해 벼 작황이 좋아서 지난해 손해를 좀 만회하려 했는데, 값이 떨어져 결국엔 지난해와 같은 처지"라고 한숨 지었다.

이씨는 정부의 정책이 문제라고 했다. 그는 "정부가 나서서 쌀값을 떨어뜨리려 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특히 올해는 농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쌀 목표가격'을 없앤 첫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쌀값을 떨어뜨리려 하는 행위는 결국 쌀농사마저 포기하란 말과 다름없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빚어지고 있는 요소수 대란과 본질이 닿아 있다고도 했다. 이씨는 "요소수 대란이 결국 생산 대비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다 수입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쌀 역시 비슷한 모양새"라고 했다.

또 "국민의 주식인데도 불구하고 경쟁력을 따져 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수입쌀을 먹으면 된다는 것이 정부의 현재 인식"이라며 "실제로 40만2000톤씩 매년 수입해 오고 있고, 풍년이 들어도 수입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이 문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단 이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풍년의 역설'은 쌀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작물에서 번번이 벌어지고 있다. 작물의 이름만 다를 뿐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다. 애써 키운 농작물을 폐기하는 일도 수년간 반복되면서 농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흉년만큼이나 풍년이 무서운 농민들이다.

홍성장 기자 seongjang.ho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