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용산 남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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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장흥 용산 남포마을
이돈삼의 마을이야기
  • 입력 : 2019. 01.15(화) 13:08
  • 편집에디터

소등섬.

소등섬.

소등섬.

소등섬 당할머니상.

일출.

축제촬영지와 정남진 표지석.

굴까는 작업.

남포마을풍경.

여행에도 음식처럼 제 철이 있다. 요즘 같은 겨울은 눈꽃이나 온천, 음식 여행이 제격이다. 겨울은 꼬막이나 매생이, 굴이 맛있을 때다. 겨울의 미각을 북돋아주고, 겨울바다의 낭만까지 더해주는 굴을 찾아간다. '석화'로 불리는 자연산 굴이 많이 나고, 작은 포구 풍경도 다소곳한 장흥 남포로 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굴구이를 생각하니, 군침이 먼저 넘어간다. 굴은 바다의 우유, 바다의 고기로 불린다. 미식가들은 이 계절에 꼭 먹어야 할 음식으로 주저하지 않고 굴을 꼽는다. 굴을, 우리 어머니들은 '꿀'이라 불렀다. 진짜 꿀처럼 달고 맛있다. 맛과 영양이 탁월하고, 우리 몸에 보약이 되는 굴이다. 단백질과 각종 비타민이 듬뿍 들어있다.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희대의 바람둥이로 소문 난 카사노바도 굴을 즐겨먹었다고 전해진다. 예부터 굴은 남성들한테 좋은 자연 강장제로, 스태미나 음식으로 사랑을 받았다. 여성들도 굴을 좋아한다. 우리 몸의 멜라닌 색소를 분해해 살결을 하얗게, 피부를 부드럽게 해준다. 미용에 좋다고, 자연 화장품으로 통한다. 배 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하얗다는 속담도 그래서 나왔다. 저칼로리여서 비만을 막아주는 건강 미용식품이기도 하다.

굴은 구워먹어야 제 맛이다. 숯불에 구워먹으면 정말 맛있다. 찜도 맛있고, 생굴로 먹어도 별미이다. 무쳐먹기도 한다. 국이나 떡국에 넣어 먹어도 맛있다. 운치는 구워먹는 게 으뜸이다. 그것도 바닷가에서. 한 손에 면장갑을 끼고, 숯불에 익어서 벌어진 굴을 하나씩 꺼내 먹으면 바다의 짭조름한 갯내음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겨울 바닷가의 정취도 무르익는다. 가족이나 연인·친구와 함께, 겨울날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낭만적인 여정이 된다.

남포마을은 장흥군 용산면 상발리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다. 옛날에 대나무가 많아서 '죽포(竹浦)'라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군사요지로 쓰면서 남포(南浦)로 바뀌었다. 장흥을 서울 광화문에서 정남쪽에 있다고 '정남진'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지도를 펴놓고 자를 반듯하게 대면, 정확히 이 마을이 정남쪽이다. 바닷가에 '대한민국 正南津'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용산면 소재지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60여 가구 110여 명이 살고 있다.

남포는 앞바다에 자연산 꿀이 지천인, '꿀밭'이 펼쳐지는 바닷가 마을이다. 오래 전부터 겨울이면 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찾았다. 1990년대 중반에 임권택 감독이 여기서 영화 '축제'를 촬영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안의 수려한 풍광에다 영화의 서정까지 버무려지면서 입소문을 탔다. 지금은 굴구이와 함께 손에 꼽히는 겨울철 여행지가 됐다.

영화 '축제'는 안성기·오정해 씨가 주연을 맡았다. 우리의 상장례(喪葬禮) 문화를 그리면서 스러져가는 효도문화를 조명했다. 장흥 출신 작가 고 이청준이 쓴 소설 〈축제〉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어 1996년에 개봉했다. 노모의 죽음 그리고 장례식을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을, 축제라는 제목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의 촬영무대가 남포마을이었다. 영화의 대부분을 이 마을에서 찍었다. 마을과 앞바다가 고스란히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영화 제작진도 여기서 묵었다. 마을 앞 해변에 '정남진' 표지석과 함께 영화 촬영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영화 속 배경무대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 앞에 떠 있는 작은 섬이 하나 떠 있다. 소등섬이다. 이 섬이 영화의 단골 배경으로 등장했다. 영화의 배경이 됐던 집도 옛 모습 그대로다. 주인공이 거닐었던 해변도 영화 속 풍경과 똑같다.

소등섬 너머로 떠오르는 일출 풍경도 황홀하다. 지난 1일 새해 첫날에도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득량만이 품은 남포마을은 지형이 바다로 튀어나와 있다. 바다 멀리 고흥 거금도와 소록도, 완도 금당도가 손에 잡힐 듯 아련하다. 이 섬들이 소등섬의 해돋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 소등섬에도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 하루 두 차례, 간조 때 마을에서 섬을 연결하는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

소등섬은 지형이 소의 등을 닮았다고 이름 붙었다. 한자로 작을 소(小), 등잔 등(燈)을 쓴다. 작은 등, 작은 불빛을 의미한다. 옛날에 어둠을 밝히던 남포의 의미도 있다. 먼 바다에 고기잡이 나간 가족을 위해 호롱불을 켜놓고, 그 불빛을 보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는 섬이다. 뱃사람들에게 등대와 같은 길잡이 역할을 했다.

500년 전부터 마을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긴 섬이다.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이면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당할머니 제사를 지냈다.

당할머니 제사는 전설과 엮인다. 마을주민의 꿈에 나타난 한 백발의 노파가 '소등섬에서 제사를 지내면 마을이 평안하고 고기잡이도 잘될 것'이라 했다. 그때부터 제사를 지냈다. 지금도 지내고 있다. 노파의 전설이 전해지는 마을에서 할머니의 장례를 소재로 한 영화가 촬영된 것도 묘한 인연이다.

5년 전에는 주민들이 소등섬에 당할머니 상을 세웠다. 옆에는 소등할머니 행운우체통을 설치했다. 엽서와 볼펜을 함께 두고 편지를 써서 부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년 뒤에 배달해주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느림우체통이다.

소등섬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등불과 희망·소원을 상징하는 천지인 조형물도 세워져 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