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와 남진, 그리고 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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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수 칼럼
DJ와 남진, 그리고 선동열
  • 입력 : 2014. 10.23(목) 00:00
호남이 낳은 불세출의 영웅으로는 단연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정계에서 DJ가 우뚝 솟은 인물이라면 연예계에서는 남진, 스포츠계에서는 선동열을 호남 출신의 영웅 대열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세 사람은 동향 출신이라는 것 외에도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올라 한 시대를 풍미했다. 무엇보다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들이다. 호남 사람들은 암울했던 시절에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서 울고 웃었다. 이들이 있어서 호남 사람들은 행복했다.

호남 사람 울리고 웃긴 영웅들

목포 출신인 남진(본명 김남진)은 1964년 '서울 플레이보이'라는 노래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데뷔한다. 그를 가수로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1966년 발표한 '울려고 내가 왔나'라는 트로트곡이다. 그는 이듬해 박춘석이 작곡한 '가슴 아프게'를 부르면서 인기 가수로 발돋움한다. 그는 '가슴 아프게', '그리움은 가슴마다' 등 무려 62편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영화배우로도 이름을 날렸다. 1970년대는 그의 전성기였다. '님과 함께'(1972년), '그대여 변치 마오'(1973년) 등이 히트하면서 나훈아와 쌍벽을 이루는 톱 가수로 성장한다. 열 살 터울의 막내고모가 당시에 남진의 열렬한 팬이었다. 한때 공백기가 있었지만 고희에 가까운 지금도 그는 꾸준히 신곡을 발표하면서 '영원한 오빠'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올해로 가수 인생 50년을 맞았다. 대중가수가 50년 동안 인기를 유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남진의 인기 비결은 첫째 잘 생긴 그의 얼굴 때문이다.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광대라 하는 것이 제일은 인물치레, 둘째는 사설치레, 그 지차(之次) 득음이요, 그 지차 너름새라.…"라고 말해 인물을 판소리 광대의 최고 덕목으로 쳤다. 현대 가수도 거기서 비켜 갈 수 없다. 그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도 성공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인 DJ는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이 한계이기도 했지만, 거의 광적인 지지를 보낸 전라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남진도 충성도가 높은 전라도 출신 팬이 많은 것이 큰 버팀목이 됐을 것이다.

선동열(어법상으로는 '선동렬'이 맞지만)은 현역 시절 야구 대통령이었다. 광주일고와 고려대를 거치며 아마에서 명성을 떨친 그의 진가는 프로에 와서 더욱 빛이 났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그는 10년 동안 뛰면서 팀을 여섯 번이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최고구속 155km의 패스트볼과 130km 중반의 슬라이더를 던져 '무등산 폭격기'라는 별명을 얻으면서 다섯 시즌이나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정규시즌 MVP도 3회(1986ㆍ1989ㆍ1990) 차지했다. 1996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의 주니치 드래곤스에 입단해 국위를 선양하기도 했다. 앞으로 100년이 지나도 한국에서 선동열을 능가하는 투수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계에 뛰어난 선수는 좋은 감독이 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스스로 자만감에 빠져 선수들과 소통하면서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동열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그는 2012년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한 후 3년 동안 '5ㆍ8ㆍ8'로 역대 감독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는 팀의 리빌딩도 이루지 못하고 선수 관리, 용병술에서도 실패했다. 여기서 그쳤더라면 그는 비난을 덜 받았을 것이다. 프로 팀 감독은 성적으로 말한다. 성적이 나쁘면 잘못을 인정하고 자진 사퇴를 해야 한다. 선 감독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구단이 제시한 2년 재계약을 덥썩 받아들인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다. 당연히 교체될 걸로 알았던 타이거즈 팬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가 내년에 좋은 성적을 내 명예회복을 하면 되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아 팬들이 절망하고 있다.

더 이상 영웅이 아닌 그의 추락

DJ는 죽어서도 호남 사람들의 영원한 영웅이다. 한때 연예ㆍ스포츠계의 영웅이었던 남진과 선동열의 인기는 최근 들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남진은 데뷔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오는 25일 서울, 11월 1일에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각각 갖는다. 그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표 구하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반면에 선동열은 이제 호남 사람들에게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그가 차라리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하지 않고 '광주의 전설'로 남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과거에 좋아했던 사람이 초라하게 멀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가 스산한 가을이어서 그의 추락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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