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4월 4일, 선천과 후천을 나누는 역사적 기점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4월 4일, 선천과 후천을 나누는 역사적 기점
441. 후천개벽
  • 입력 : 2025. 04.03(목) 16:22
광주 무등산 국립공원의 일출. 뉴시스
“공심은 저러시고/ 나무남산 본이로세/ 조선은 국이옵고/ 팔만은 사두세경/ 허궁천 비비천/ 삼화도리 열시왕/ 이덕 마련하옵실 때/ 경상도 칠십삼관/ 전라도 오십삼관~” 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도씻김굿 거리 중 ‘초가망석’의 내드름 부분이다. 지역이나 가창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긴 하지만 대개 수도 서울의 본디 내력을 줄거리 삼는다. 우리의 근본과 이 땅의 내력을 반복해 선포하는 셈이다. 바리데기, 당금애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무속 신화에 속하는 공심에 대해서는 2017년 6월 9일자 본 지면에 다뤘다. 곡성 옥과에 터를 마련한 공심 신화 논의였다. “아황(我皇) 임금아 공심(功心)은 절에 주고 남산(南山)은 본(本)이구나, 조선은 국이요 팔만은 사도세계(四道世界)요~” 이게 가장 대표적인 내드름이다. 태초의 시원을 읊는 것이기에 천지개벽에 빗대곤 한다. 후천개벽에 견주어 말한다면 선천개벽을 노래하는 풍경이랄까. 고 지춘상은 ‘초가망석’이 조상의 혼령을 부르는 것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조상을 넘어서는 개벽적 서사가 더 촘촘하다. 예컨대 제주도 무가 초감제(初監祭)도 개벽 신화부터 풀어나간다. 세상의 시작을 노래하는 서사무가가 어디 제주도뿐이겠는가. 성경의 창세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논의는 무속을 넘어 문학적인 감성으로, 다시 신흥종교로서의 사회적 변혁 담론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김지하가 말했던 음개벽(陰開闢) 같은 것이다. 순창 회문산을 양산(陽山) 삼고 전주 모악산을 음산(陰山) 삼는다던가, 정선의 아우라지를 자궁·우주 삼는 태도들 말이다. 후천불이자 미래불이라는 미륵 용화세계의 의미를 음개벽과 후천개벽으로 이어 생각하는 설정이 모두 그러하다. 이를 사변적이라거나 문학적이라거나 무속적이라거나 뜬구름 잡는 생각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한국문화 전반에 포획된 풍경들이 너무 광범위하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 개벽사상의 기획자들

문제 삼을 것은 근대기 신흥종교들에 편재돼 있던 개벽 담론을 무속 서사 속에서 길어 올리는 낯섦에 관한 것이다. 무속 서사의 개벽 담론이 더 오리지널할텐데 말이다. 너무 낯익어서 무디어졌을 뿐이리라. 차차 횟수를 더해 논의를 이어가겠지만, 도참설에서 뻥튀기된 개벽 논의가 근대기에 접어들면서 종교 혹은 철학 속에 고루 포획돼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주자 성리학 이후 북학으로부터 서학(기독교), 동학, 남학(이운규로부터 확산된 신흥종교), 궁극적으로는 중학(모델로서의 개념)까지 편재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후천개벽을 이렇게 설명한다. “개벽이란 천지가 처음으로 생김(天開地闢)과 어지러운 세상이 뒤집혀 다시 평화로워짐(治亂太平)의 의미로 동양 고대에서부터 사용되던 개념이다. 그런데 천지개벽을 분기점으로 그 이전을 선천, 그 이후를 후천이라 하여 개벽과 선후천이라는 개념이 한국민족종교 창시자들에 의해 또 다른 개념으로 사용됐다. 자기들이 살았던 시대를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을 선천, 그 이후를 후천으로 보고, 선천의 세상은 묵은 세상, 낡은 세상으로 불평등, 불합리, 부조리한 세상이었으나, 후천의 개벽된 세상은 그와 반대로 평등, 합리, 정의롭고 공명정대한 살기 좋은 낙원의 문명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민족종교 창시자 중에서 수운 최제우와 일부 김항, 강증산과 소태산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도올 김용옥에 의하면 수운 최재우는 이후 5만 년을 얘기했을 뿐, 선천개벽-후천개벽의 이원적 대비개념으로 개벽을 설정하진 않았다. 백낙청을 중심으로 토론 집필한 ‘개벽사상과 종교공부’에서는 다시 이렇게 말한다. “한반도 후천개벽운동의 출발점을 이룩한 수운 최제우 선생 자신은 ‘용담유사’에서 ‘다시개벽’이라는 표현을 한 차례 썼을 뿐 ‘후천개벽’을 언급한 바는 없다. 그러나 후천개벽을 명시적으로 내건 해월 최시형, 증산 강일순, 소태산 박중빈 등이 수운의 ‘다시개벽’ 구상을 (각기 조금씩 다르게) 이어간 것은 널리 인정되는 사실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인문개벽을 이르는 천도교(동학)의 말이 곧 후천개벽’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나 자신으로 돌아와 상고해 보면, 지금 이전의 시기는 선천이요 지금 이후의 시기를 후천으로 설정하는 것이 후천개벽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일 듯싶다. 지금 내가 후천개벽 담론을 꺼내든 까닭은 윤석열 정부의 이전과 이후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말로 다할 수 없는 황당무계한 일들을 선천의 일들로 떠나보내고 새로운 시대를 구상하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조선시대 말 진령군(眞靈君)의 황당무계한 기행(奇行)도 선후천으로 나눌 수 있는 기점이 된다. 명성황후의 비호를 받으며 왕실을 농락하다가 결국 이 나라를 망국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진령군을 현 정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바지를 거꾸로 뒤집어 입으며 명산대천에 큰 굿을 하는 등 저잣거리에 알려진 일탈만 해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문제는 이들 또한 후천개벽에 준하는 메시지를 목전에 내걸고 백성을 현혹해 왔다는 점이다. 정감록류의 예언서를 신봉해 남북통일 날짜를 예측한다던가 북한과의 전쟁을 비롯한 외환유치를 통해 장차 통일대통령으로 나선다는 등의 입소문이 파다하지 않았나. 매우 심각하고 병적인 도참(圖讖)의 오염이다. 예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우리네 후천개벽 기획자들이 구상한 세상은 그러하지 않았다. 진령군과 명성황후의 기행이 가져온 망국의 결과를 대입해 보면 보다 명백하다. 그래서 제안한다. 2025년 4월 4일을 현직 대통령 파면 정도가 아니라 선천과 후천을 나누는 역사적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



남도인문학팁

오염을 넘어, 후천개벽 다시 개벽으로

최길성은 ‘한국무속의 이해’(예전사, 1994)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벽이라는 말은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었다는 의미와 아울러 현세가 어떤 혁신에 의해 망하고 새로운 세상이 된다는 사회개혁의 의미도 있다. 이러한 개벽사상이 왕조나 사회가 극히 혼란되고 부조리한 때에 더욱 두드러진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된다. 실제로 신라 말이나 고려, 조선 말 그리고 일제 식민지 시대에 천지 개벽사상이 유행하였다.” 사회가 혼란해지면 천지개벽 사상뿐만 아니라 무속으로 치장한 사술(邪術)이 활개를 친다. 불안한 사회심리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상기할 것은 1세기 전에도 2세기 전에도 아니면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리던 선천의 시대에도 우리는 늘 개벽의 문 앞에 서 있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도참설이 유행하던 암흑기에도 그랬다. 지금을 어느 시기에 견주어 해석하는가는 시선의 깊이와 높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마치 꿈처럼 지나간 계엄과 내란의 끄트머리에서 합의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새 세상을 기획해야 한다는 점이지 않을까. 종교적 오염을 비롯해 기왕의 계급사회가 지녔던 패러다임을 전혀 극복하지 못한 사회 리더그룹들의 민낯을 이미 충분하게 확인하지 않았나. 오염된 것들을 깨끗이 씻어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사상과 철학, 종교 지도자로 나섰던 후천개벽의 기획자들이 생각했던 것은 명백하게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2025년 4월 4일 11시의 의미를 후손들이 내게 물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슨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근본을 따져 묻는 일과 내력을 살피는 일은 심각하게 오염된 것들을 씻고 후천개벽의 문으로 나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아황 임금아, 공심은 절에 주고 남산은 본이구나. 조선은 국이요 팔만은 사도세계요~ 나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 공동체의 내력은 어디에 있는가.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는 어떤 문을 닫고 열었나. 공심에게 의지해 나의 근본과 내력을 묻는 노래를 다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