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천년 전 노두(露頭), 오늘날 ‘12사도’의 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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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천년 전 노두(露頭), 오늘날 ‘12사도’의 길이 되다
437. 신안 섬티아고 순례길
  • 입력 : 2025. 03.06(목) 18:02
신안 섬티아고 순례길 걷기. 이윤선 촬영
언제부턴가 산티아고 순례길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직장에 다니는 이들 중에는 퇴직 후 산티아고 길을 걸어보는 것이 로망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거기에 무엇이 있길래 많은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야고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이베리아반도가 순례길의 전거라고 하니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들일까? 그것은 아닌 듯하다. 오늘은 산티아고라는 이름에서 따왔을 것이 분명한 ‘섬티아고’를 소개한다. 신안군 기점도와 소악도의 4개 섬을 잇는 길이기에 ‘섬+티아고’다. 증도면 병풍리에 속한 섬들이다. 이곳에 12개의 작은 건축 미술품을 만들었다. 그리움이니 감사니 따위의 이름 외에 예수의 열두 사도를 뜻하는 ‘12사도길’이라는 이름도 덧붙여 놓았다. 기독교 순례길처럼 인식되기도 해서 연고 없다는 비판도 있고, 종교적 편향에 대해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섬 전도의 아이콘으로 호명되는 문준경 전도사나 해방신학의 거두 서남동 목사 등이 태어나고 자라 열매를 맺은 곳이 바로 이웃 섬 증도와 자은도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본래 당산이니 당굿이니 따위의 전래적 신앙의 텃자리였고 관련한 내력들이 오고 갔던 길이었음이 분명하지만, 시절의 변화에 따라 기독교적 신앙과 내력이 오고 가는 길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 뿌리에 변증법적 공간, 내가 늘 말해왔던 주역의 대대(對待)적 공간 노두(露頭)가 있다.

신안 섬티아고 순례길 걷기. 이윤선 촬영
섬티아고, 하늘에는 은하수길 바다에는 노둣길

섬티아고길이 속한 병풍도는 본래 지도군 선도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동촌, 서촌, 기점도를 합하여 병풍리라 했고 무안군 선도면에 편입됐다가 1917년에 지도면에 편입된다. 1969년 무안군에서 신안군이 분리돼 오늘에 이르렀다. 이들 섬은 모두 노두라는 바닷길을 통해 연결된다. 갯벌로 이뤄진 서해와 남해의 리아스식 해안에는 하루에 두 번씩 땅과 바다를 교직하는 신비의 바닷길들이 즐비하다. 섬티아고가 신비의 바닷길이라는 얘기다. 2017년 1월20일자 본 지면에 노두를 소개한 바 있어 몇 장면을 다시 가져와 본다. “박지도 암자에 젊은 비구(比丘) 한 분이 살았다. 건너편 반월도 암자에는 젊은 비구니(比丘尼) 한 분이 살았다.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서로 흠모했던 모양이더라. 하지만 섬이 달라 만날 수는 없었다. 들물이면 바다가 되어 가로막히고 썰물이 되어도 깊은 개펄로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만나고 싶은 갈망은 더해갔다. 어느 날부터 서로 망태기로 돌을 날라 바닷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노둣돌을 다 쌓아 바다 가운데서 만난 이들은 서로 부여잡고 하염없는 눈물만 쏟아냈다. 평생의 그리움이 사무쳤던 까닭이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들물이 시작되어 되돌아설 수 없었다. 바다 가운데서 부둥켜안은 채 바닷물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것을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시 물이 바뀌어 썰물이 되었을 때는 양 섬을 연결하는 노두만 드러나 있을 뿐 비구와 비구니 스님은 온 데 간 데가 없었다.” 섬티아고 인근 안좌도에 속한 박지도와 반월도에 전해오는 ‘중노두’ 전설이다. 썰물이면 개펄에 돌을 놓아 섬과 섬을 건너던 길, 노두 탄생 설화의 한 대목이다. 나는 다시 노두를 이렇게 설명했다. “개펄 바다를 잇는 노둣돌, 남도 사람들은 이를 노두라 부른다. 서해에서 남해에 이르는 리아스식 개펄 해안에 널리 분포한다. 진도 회동과 모도를 가르는 바닷길이 대표적이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 설화는 뽕할머니가 호환(虎患)을 피하고자 기도를 하니 바다에 길이 생겼다는 내용이다. 일 년에 한 번씩 개펄을 뒤엎어 노둣돌을 놓는 신안지역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맥락은 같다. 바다에 놓은 길이기 때문이다. 노두는 노둣돌을 놓아 만든 길, 노도(路渡) 등에서 온 말이겠다. 전남방언사전 왈 해남이나 신안지역에서 징검다리를 부르는 말이라 한다. 징검다리는 개울이나 물이 괸 곳에 돌이나 흙더미를 드문드문 놓아 만든 다리다. 양쪽의 관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길은 개펄 바다에만 있는가? 아니다. 하늘에도 있다. 은하수라 부르는 하늘강이 그것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기점도와 소악도에 스민 이야기들을 풀어 소개하겠지만, 섬티아고길을 걷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얘기가 이것이다. 이 길은 본래 바다에 돌을 놓아 징검다리로 건너던 길이었다. 섬티아고길의 내력이 이러하니 어찌 12사도길의 상고에 그칠 것인가. 천년 전의 노두가 오늘날 12사도의 길이 되었듯이, 지금 더 그윽하게 스민 노두의 이야기는 물론 있음과 없음을 교직하는 갯벌과 생태와 휴머니즘의 철학을 길어 올려 장차 올 천년의 이야기로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열두 곳 중 어느 데라도 좋으니 오랫동안 차분하게 앉아 이 신비의 바닷길을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모세가 홍해의 물을 갈랐듯이, 노둣길이 물에 잠겨 없어졌다가 다시 나는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순례길에 나선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신안 섬티아고 순례길 걷기. 이윤선 촬영
남도인문학팁

섬티아고 순례길 걷기

섬티아고길을 걷기 위해서는 신안군 압해도 송공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거나 지도읍 송도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야 한다. 들물에는 걸을 수 없고 썰물에만 걸을 수 있다. 대개 하루 정도면 여유 있게 걸을 수 있는 길이기에 서두를 필요 없다. 1. 건강의 집(베드로, 작가 김윤환)은 대기점도 선착장에 있다. 작은 종탑과 길게 늘어진 선착장 길이 예쁘다. 2. 생각하는 집(안드레아, 작가 이원석)은 북촌마을 동산에 있다. 지붕 위와 아래 지킴이처럼 서 있는 고양이들이 깜찍하고 북쪽 병풍도로 난 노둣길이 아스라하여 아름답다. 아직 순례길로 명명하지는 않았지만 병풍도의 맨드라미 축제와 연결하여 걷는 것도 좋다. 3. 그리움의 집(야고보, 작가 김 강)은 대기점도 큰 연못 건너편에 있다. 붉은 기와와 양쪽에 기둥을 세운 작은 예배당이다. 논둑길을 가로질러 걸으면 좋다. 4. 생명평화의 집(요한, 작가 박영균)은 대기점도 남촌마을 팔각정 근처에 있다. 바닥에 생명평화 문양이 그려져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5. 행복의 집(빌립, 작가 장미셀 후비오, 부루노, 파코)은 대기점에서 소기점으로 넘어가는 노두 끝에 있다.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건축 형태로 유려한 지붕의 곡선, 꼭대기의 물고기 모양이 흥미롭다. 6. 감사의 집(바르톨로메오, 작가 장미셀, 얄룩)은 소기점도 작은 방죽 위에 있어 눈으로만 볼 수 있다. 7. 인연의 집(토마스, 작가 김 강)은 소기점도 게스트하우스 뒤편 언덕에 있다. 8. 기쁨의 집(마태오, 작가 김윤환)은 소기점도 노둣길 갯벌 위에 있어 들물이면 들르지 못한다. 러시아 정교회를 닮은 황금빛 양파 모양 지붕이 화려하다. 9. 소원의 집(작은 야고보, 작가 장미셀, 파코)은 소악도 둑방길 끝에 있다. 프로방스풍의 아름다운 오두막을 닮아 건축 곡선들이 흥미롭다. 10. 칭찬의 집(유다, 작가 손민아)은 소악도 노두길 삼거리에 있다. 뾰죽지붕이 앙증맞고 외부의 오리엔탈 타일이 잘 어울린다. 11. 사랑의 집(시몬, 작가 강영민)은 소악도 진섬 솔숲 해변에 있다. 남쪽의 바다와 숲을 연결하는 구성이어서 앉아 명상하기에 좋다. 12. 지혜의 집(가롯 유다, 작가 손민아)은 소악도 딴섬 모래 해변 건너편 작은섬에 있다. 신우대 숲길이 고적해 좋다. 들물이면 들어가지 못한다. 몽쉘미셀의 성당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오랫동안 앉아 있고 싶은 공간이다. 12개의 건축 모두 내부에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건축 작품 주변의 경관들이 소소하고 그윽하기에 신앙인들에게는 기도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일반인들에게는 명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