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솔 작가의 성화 일러스트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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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내용을 그린 종교화를 성화(聖畵)라고 한다. 불교의 내용을 그린 그림을 불화(佛畵)라고 하고 더러는 탱화(幁畵)라고 한다. 무속화를 포함해 이들을 종합한 것이 종교 그림이다. 국어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종교화는 예배나 포교, 찬미 등의 종교 활동을 목적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런 점에서 허솔의 그림은 종교화의 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한복을 입은 인물이 어떻게 성화(聖畵)로 인식되거나 인정되는가? 단순히 한복을 입었다고 해서 성화적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의 상징물들이 각각의 그림 속에 배치돼야 한다. 예컨대 묵주(默珠)가 가진 상징 때문에 성모 마리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관념한다. 묵주는 카톨릭에서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영적 장미 꽃다발을 뜻하는 것으로 로사리오(Rosarium)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불교의 염주(念珠)와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신자들은 서로 다르다고 한다. 또 백합을 함께 그리면 이 꽃이 마리아의 순결함과 동정성을 상징하게 된다. 가장 뚜렷한 꼴이 한복 저고리 치마에 도드라지는 십자가 묵주다. 지면상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왕관과 족두리, 옷고름의 색깔, 동굴을 상징하는 황색 배경 등 기독교의 상징들을 암호처럼 배치한다. 여기에 작가의 종교적인 체험과 영성 등이 스며들어 한낱 일러스트에 불과했던 그림이 신성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네 민화(民畵)가 세화(歲畵)로서의 기능을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정초에 임금이 신하들에게 하사했던 세화나 봄철 절기에 맞춰 대문에 붙였던 여러 그림과 문자들이 특정된 시기와 장소에서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이치 말이다. 많은 이들이 이 그림을 성당이나 집안의 기도처에 걸어두면 성모의 발현(發現)이 일어날까? 엘리아데는 ‘신화, 꿈, 신비’(도서출판숲, 2002)에서 이렇게 말한다. “성스러운 돌, 성스러운 나무는 돌 그 자체로서 그리고 나무 그 자체로서 숭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히에로파니이기 때문에, 더 이상 돌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성스러우면서도 ‘완전히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숭배되는 것이다.” 엘리아데가 창안한 용어 히에로파니(hierophanie, 聖現)는 문자 그대로 성인이 나타난다는 뜻으로 성스러운 일 혹은 성스러운 인격이 새롭게 재현된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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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성화의 계보와 허솔의 성화·민화의 위치
한국적 성화, 예컨대 한복을 입었다던가, 한국적 풍경을 배경으로 사용했다든가 하는 등에 대해서는 따로 다룬다. 우리나라 성화를 그린 사람으로 이희영(1756~1801)이 거론되긴 하지만 관련 작품이 남아 있지 않아 그 면모를 짐작할 수 없다. 1920년에 그린 우석 장발(張勃, 1901~2001)의 ‘김대건 신부 초상화’가 성화의 초기 작품으로 거론된다. 이외 많은 작품을 남겼다. 운보 김기창(金基昶, 1913~2001)의 ‘예수의 생애’는 1951년부터 3년간 한국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그린 작품으로 성화 중 대표적인 작품으로 거론된다. 소 외양간의 예수 탄생, 갓을 쓴 예수 등 인구에 널리 회자한 작품이다. 배운성(裵雲成, 1900~1978)은 월북화가다. 한국 근대 성모 성화 등을 남겼다. 강신무 무당 이미지로 자화상을 그렸던 내력에서 성모 그림에 이르는 종교적 편력이 내 관심사다. 장우성은 1950년 국제성미술전 참가를 계기로 성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모와 순교복자라는 작품을 통해서 서양의 기독교 이미지를 한국적인 모습으로 재해석한 이다. 현재 가장 왕성하게 성화를 그리는 이는 심순화이다. 1993년 현몽을 통해 성화를 그리기 시작해 많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봉정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등 내가 주목하는 작품들이 많다. 이상의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서는 따로 다루기로 한다. 다만 언급해 두고자 하는 것은 무명작가 허솔의 일러스트가 우리나라 성화·민화로서의 계보 속에서, 특히 이름도 빛도 없는 이들이 부상된 민화의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바야흐로 민화 전성의 시대이다. 무명작가들의 부상을 나는 시대정신의 시선으로 주목하는 중이다. 허솔의 성화·민화가 바티칸 성당으로 초청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일까? 허솔의 일러스트가 해외 파견 신부들에 의해 요청되는 까닭을 한국적 신성의 발현과 히에로파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즐거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