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창·추교준>그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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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창·추교준>그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추교준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장
  • 입력 : 2024. 07.07(일) 18:42
추교준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장
나는 2011년경, 어느 글에서 읽었던 ‘교육 불가능’이라는 낱말을 다시 떠올린다. 우리 사회는 교육이 불가능한 사회이다. 나는 오늘 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근 이름만 대면 한국인 모두가 알 법한 축구 선수의 아버지인 축구 감독에 관한 일들이 연일 뉴스 지면을 채우고 있다. 그 감독이 이끄는 축구교실에서 일어난 아동학대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면 참담한 마음을 추스를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교육 불가능성을 상징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최근의 기사를 보자. 축구 감독과 코치들은 유소년 축구경기에서 생각하던 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자, 코치들이 온갖 욕설, 고성, 비하 발언을 반복했다. “야 이 ○○야,”, “꼴값 떨지 말라”, “야, 너는 벙○○야? 머릿수 채우려고 들어갔냐?”, “하기 싫으면 나와 이 ○○야”.

이 모든 장면은 영상으로 기록이 돼 있다. 심지어 다른 영상에서는 감독이 직접 선수를 발길질하기도 했다고 한다. 앞에서는 ‘기본이 중요하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 등 온갖 입바른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뒤에서는 사실상 폭언과 폭행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에 비하면 놀랍지도 않다.

자신의 아이가 학대를 당했다고 고소하겠다면서 아이의 ‘맷값’을 흥정하는 부모를 보면서 참담함을 금치 못하겠다. 수년 전에 어느 기업의 대표가 운수 노동자를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난 뒤에 ‘한 대당 100만원씩’ 맷값을 던져줘서 사람들의 공분을 산 일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데, 이제 부모라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자식의 맷값을 뜯어내려고 ‘20억을 달라’, ‘5억 밑으로는 안 된다’ 요구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그런가 하면 그 외의 부모들은 그것은 폭언과 폭행이 아니라며 은폐하고 축소하려 한다. 이 일에 관해 입장문을 내고 “수년간 아카데미에서 지냈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체벌이라는 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직접 일을 겪은 당사자들은 정작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일을, 바깥사람들이 각자의 잣대만을 들이밀어 아카데미 안에서 마치 큰 범죄가 일어난 것처럼 아카데미 구성원들을 피해자로 둔갑시켰다”, “정작 이곳 아이들은 행복하다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인권이고 누구를 위한 수사인가”라며 감독 및 코치를 옹호했다.

참담한 마음으로 기사를 보다가 문득 겁이 났다. 이 일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한쪽에서는 자신들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욕설과 폭행을 퍼붓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런 욕설과 폭행의 대가를 흥정하고 있다. 또 그들의 맞은편에는 그것은 훈련이고 교육일 뿐, 욕설과 폭행이 아니라며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덮으려 하고 있다. 그 축구 아카데미에서 활동했던 그 청소년들은 자신을 둘러싼 어른들의 이런 모습을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을까? 이후에도 여러 어른들이 이들에게 이런저런 내용들을 교육할 텐데 그 청소년들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어른들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볼까? 더 나아가 그 청소년들이 나이가 들어 자기를 뒤따르는 어린 사람을 마주할 때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까?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보면, 이미 한국 사회의 교육 현장은 무너져 있다. 교실에서 많은 학생들이 엎드려 있는 것은 이제 아무 일도 아니다. 여기서는 학생이 동료 학생에게, 아니면 교사에게 흉기를 휘두른다. 저기서는 학부모가 교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교사를 다그치고 때린다.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교사는 부모로부터 아동 학대로 신고당한다. 참다못한 교사는 목숨을 내려놓기까지 한다. 그걸 보며 보수 단체에서는 이때다 싶어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외친다. 그 와중에 ‘의대 입시 광풍’이니 뭐니 하며 초등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수학 문제집을 들이밀고 있다.

이제는 솔직해지자. 오늘날 한국 사회는 교육이란 불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선언하자. 이 땅에 사람이 태어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자. 이 모든 일은 무한 경쟁 속에서 불안과 욕망에 휩싸여 우리의 정신이 사실상 파탄 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자. 정신이 무너진 우리가 우리의 자식들을, 학생들의 정신을 또다시 파탄 내고 있다는 것을 반성하자.

그래야 현장에서 펼쳐지는 지옥도와는 동떨어진, ‘미래 교육’이니 ‘융합 교육’이니 하는 헛발질을 그만둘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지금으로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하지 않을까. 그래야만 이 참담한 어른들 사이에서 온갖 일들을 겪고 있는 그 축구 청소년들이 조금이나마 마음을 추스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