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승호>미래를 말하는 막걸리와 전통주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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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승호>미래를 말하는 막걸리와 전통주를 기원한다
김승호한국주류안전협회 이사
  • 입력 : 2022. 07.05(화) 10:30
  • 조진용 기자
김승호한국주류안전협회 이사.
"청년은 미래를 말하고/중년은 현재를 말하고/노인은 왕년을 말한다." 조남준 작가의 그림 '술집풍경'에 실려 있는 글이다.

왁자지껄한 술집은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 공간이다. 때로는 흥겨운 이야기로 때로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술집은 정이 넘치게 채워진 술잔처럼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다.

술집풍경은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각 세대가 펼쳐놓은 자화상이다.

물컵만 뎅그러니 놓여 있는 술상이 보여주듯 청년의 오늘은 우울하지만 열변을 토하는 청년의 입에선 야무지게 미래를 말한다.

가장 앞자리에 있는 중년의 현재는 풍성하게 구워진 삼겹살 안주가 말해주듯 풍요롭기만 하다. 말하는 품새 또한 경직된 표정의 청년과 달리 여유롭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으니 바쁠 이유가 전혀 없다.

그 뒤에서 왕년의 모습을 떠올리며 장광설을 늘어놓는 노인은 한껏 거들먹거리는 표정을 하고 있다. 술상에 안주와 술이 놓여 있지만, 불판 위의 고기가 사라졌는지 야속한 연탄 불빛만이 석쇠를 달구고 있을 뿐이다. 조 작가는 이렇게 오늘을 관통하는 메타포를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아픈 우리의 현실 이야기뿐만 아니라 묘하게 대한민국 술 시장의 현실도 담고 있다. 조 작가의 글귀에 주류시장의 오늘을 대입하면 다음과 같다.

"와인과 위스키는 미래를 말하고/맥주와 희석식 소주는 현재를 말하고/막걸리는 왕년을 말한다."

대한민국 주류시장의 규모는 대략 9조원(출고금액 기준) 정도다. 이 중에서 술자리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맥주와 희석식 소주가 합쳐서 약 7.2조원(2020년 기준) 정도.

대부분이 수입되는 와인과 위스키는 1조원에 육박하고 있고, 막걸리와 전통주는 5000억원 정도에 머물러 있다. 주종별로 시장을 살펴보면 맥주는 지난 2013년 전체 시장의 48.8%(4.3조원)를 기록한 이후 조금씩 빠지면서 2019년 희석식 소주에게 1위 자리를 내주더니 급기야 2020년에는 39.7%(3.5조원)에 그쳤다.

이에 반해 희석식 소주는 2020년 42.1%(3.7조원)를 기록하면서 명실상부한 국민주 자리를 꿰차게 됐다. 이처럼 한국 술 시장의 주역 중 맥주는 눈에 띠게 줄고 있고 소주는 횡보지만 느는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수입 와인과 위스키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21년 와인 수입액은 약 6035억원을 기록, 최근 4년간 3배 정도 성장했으며 위스키 또한 지난해 2517억원을 수입하면서 바닥을 찍고 상승세로 완전히 돌아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맥주 업계는 다급하게 가성비를 무기로 발포주 등을 출시하고 있고 소주 업계는 젊은 고객의 입맛에 맞춘 술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즉 맥주와 소주의 입장에선 더 이상 밀리고 싶지 않은 오늘이 절실한 것이다. 반면 수입 와인과 위스키는 화려한 미래를 설계하기에 바쁘다. 롯데주류와 신세계 등의 주류업체 및 유통사들은 자체 생산을 위해서 해외의 와이너리를 인수하거나 위스키 증류소 건설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도 풍요로운데 미래까지 장밋빛인 셈이다.

하지만 막걸리와 전통주의 모습은 어떠한가. 막걸리는 2010년대 한 때 3000억원까지 줄었지만 다소 회복되어 연전부터 4700억원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출고량도 지난 2016년 대비 5.8% 늘어난 38만톤을 기록했으나 행색이 초라하다.

시장 규모가 늘었지만, 소주·맥주와는 한참 격차를 보이고 있고 수입 주류에게도 턱없이 밀린다. 1974년 전체 주류시장의 77%를 차지한 이후 1988년까지 부동의 국민주였던 막걸리지만 더는 과거의 위상을 찾을 수 없다.

그나마 최근 MZ세대(밀레니엄+Z세대)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막걸리 소비가 늘고 있는데 이를 반영하듯 지역특산주 면허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전체 주류 제조면허가 2717개였는데, 2017년 대비 27% 늘어난 수치다. 그중에 지역특산주가 460개나 늘었다. 지역특산주 면허를 낸 양조장들은 통신판매가 가능하다는 이점을 활용해 젊은 층이 좋아할 고품질의 막걸리와 약주 등을 생산하고 있다. 미래를 말하는 막걸리가 조금씩 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 막걸리와 전통주가 더 이상 왕년에 묻혀 있기보다 미래를 말하는 술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조진용 기자 jinyong.ch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