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재호 월계초 교사 |
교사였다가 변호사, 정치인이 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직에 잠시 있다가 노동조합 간부를 지낸 뒤, 정치계 인연으로 장관이 된 사람도 아니다. 교사나 교수 출신으로 교육감이 되고, 다시 장관이 되려는 경력 관리형 인물이 아니다. 나는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내 동료들이 교육부 장관이 되기를 바란다. 장관 임기 마친 후 기꺼이 교단에 서는 교사 말이다. 왜 안 되는가?
나는 경제적 관점에서 교육을 ‘투자 대비 성과’로만 계산하는 이를 거부한다. 지금 이 순간 교실에서 교육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 교육부 장관이 되어야 한다. 교육을 ‘경제 성장’의 수단으로 보는 사람이 교육부장관이 되는 것을 이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부모가 직장에서 모욕을 견디며 아이 하나 바라보고 버티듯, 교육 그 자체를 공동체의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 장관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입니다”, “경쟁 교육을 없애야 합니다”, “입시를 바꿔야 합니다” 같은 바른 말, 옳은 말만 되풀이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 속에서 아이들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교사 장관을 원한다.
나는 아이와 청소년을 정말로 ‘아는’ 사람, 그들을 삶에서 만나본 교사 장관을 원한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해 본 사람. 학교에 처음 온 아이가 낯설어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한테 갈래요!”라고 떼를 쓸 때, 편안하고 침착하게 아이를 달래는 사람. 그 아이가 한 달 후 “선생님~” 하며 매달려 웃게 만드는 마법을 지닌 사람. 통합학급 담임을 맡아, ‘장애’라는 말을 생활 속에서 깨뜨려본 사람. 외계인도 침범하지 못한다는 <대한민국의 ‘중2’>와 함께 살아낸 사람. 점심 시간마다 다문화 학생과 함께 동화책을 읽으며, 소통을 하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
나는 원한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왜 늘어나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교사 장관을. 하루 종일 괴성 같은 소리를 내는 아이를 마주하며 수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 소리쳐도 달래도 방법이 없어 절망했던 경험, 그 속에서 아이와 함께 눈물 흘려본 사람. 그래서 이 어쩔 수 없는 ‘사랑’이라는 정서를 매일 발명해야만 했던 교사. 나는 그런 교사 장관을 원한다.
나는 가장 믿었던 아이에게 배반감을 느껴본 교사 장관을 원한다. 시험에 나올 내용만 가르치지 않고 토론식 수업을 했다고 학생에게 고발당해 교육청에 불려갔던 경험. 젊다는 이유로, 만만하다는 이유로 악성 민원을 견뎌야 했던 시간. “내가 왜 교사를 하고 있는가?”라며, 문득 아침 출근길에 사고가 나길 바랐던 적이 있는 사람. 담배 좀 끊으라는 조언 하나에 밤낮으로 전화와 메시지로 공격당하던 날들. 결국 교단에서 생을 마무리했던 동료 교사의 ‘발걸음’을 같이 공명할 수 있는 교사. 나는 그 검은 점이 되본 경험이 있는 교사장관을 원한다.
나는 ‘동료교사’를 아는 장관을 원한다. 어린 동료가 열정의 과잉 속에서 지쳐갈 때 수다로 편안함을 나누는 사람. 관리자나 제도 때문에 교사들 사이에 벽이 생길 때, 툭 한마디로 동료성을 회복하는 사람. 엑셀 줄 바꾸기도 어려워하는 선배 교사를 친절하게 도와주는 사람. 교사의 ‘일’이란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전·현직 교사들의 협업과 연대 속에서 완성되는 역사적 실천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나는 기재부의 숫자 논리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나운 교사 장관을 원한다. 경제 성장의 수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명이고, 삶이고, 교육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결코 정치의 들러리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함께 일했던 동료 교사들 중에서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옥주샘, 명숙샘, 맑은샘, 건진샘, 충현샘, 보경샘, 자영샘, 은혜샘, 은영샘, 선경샘, 그리고 진숙샘… 내가 경험한 동료 교사들은 누구보다 훌륭했다. 그들은 따뜻한 리더였고 교육과 노동에 당당한 지식인이었다.
왜 안 되는가?
정치는 특별한 능력의 산물인가? 아니면, 교사의 일이 특별한 능력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인가? 1학년 담임을 하고, 다문화 어린이를 품고, 가출한 위기의 청소년과 소통하며 매일 ‘사랑의 발명’을 해내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교사의 일보다 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말인가?
나는 단지 ‘교사 출신’이 아닌, ‘교사 그 자체인’ 교육부 장관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