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29> 과연 무엇이 사회를 구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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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29> 과연 무엇이 사회를 구원하는가?
그럼에도 예술가는 존재한다.||세대와 문화 그리고 사회적 ||제도의 역할을 구현하기 위한||인류 마지막 수단은 '인류 ART'
  • 입력 : 2022. 04.03(일) 16:46
  • 편집에디터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관람객이 "현대 미술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요?"에 대한 질문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과연 현대 미술은 어디까지 한계를 지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스물아홉번째 칼럼을 써내려간다.

우리는 어떻게 '예술(ART)'이라는 도구를 통해 개인의 의식과 사회적 변화 나아가 삶으로 연결시키며 세상을 바꾸는 노력을 시도할 수 있을까?

그러한 생각은 자신의 삶과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 미술가이자 퍼포먼스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b.1946~)의 작업들을 떠올렸다. 그의 부모님은 구 유고연방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고 건국에 앞장선 군인이었던,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1960년대 유고슬라비아 예술가로 활동하였다. 이후 1970년대 유럽전역으로 예술 활동 영역을 넓혔고, 기존의 시각예술의 정형을 깨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행위 예술 활동으로 현재에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행위자(작가)와 관객 사이의 관계를 모색해왔고, 소통을 통해 세상의 물질에 압도당하는 생명의 존엄을 자각하도록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작업을 구현해왔다.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고, 2010년 뉴욕MOMA(뉴욕현대미술관) <예술가가 현존하다> 이후 삶과 세상에 대한 더욱 깊어진 사유를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로 펼쳐 보이고 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_예술가가 현존하다_울라이와의 퍼포먼스 장면_뉴욕MOMA_2010년

" 현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는 과거도 미래도 만질 수 없어요. 과거는 이미 벌어졌고, 미래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으니까요. "

그의 대표적인 1974년 <리듬 0(Rhythm Zero)> 작품은 사람 안에 잠재되어있던 '인간의 악함 즉, 폭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작업이다.

당시 작가는 미술관 한편에 서 있고, 앞에는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다. 그 테이블 위에는 72개의 각종 물건이 놓여있다. 그리고 "테이블에는 72가지의 물건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것들로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나 역시 또 다른 물건(Object) 입니다. 이 시간에 일어나는 일은 전적으로 내가 책임집니다." 라는 안내문이 쓰여 있었다. 작가는 관객과 사람들이 퍼포머인 자신을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미술관 안에 만들어 두어 그 반응과 상황을 살피는 퍼포먼스였다. 테이블 위에 다양한 물건들은 장미꽃, 깃털, 꿀 등의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해롭지 않은) 물건도 있었지만, 채찍, 칼, 총과 같이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일 수도 있는(해로운) 물건들도 함께 있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_리듬 0(Rhythm Zero)_35mm, 컬러&흑백 슬라이드 프로젝션, 72개 각종 오브제, 가변적 6시간 퍼포먼스_1974년

'과연, 위와 같은 안내문이 써진 미술관에서 퍼포먼스의 시간과 공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퍼포먼스는 총 6시간 동안 진행됐는데, 관객들은 초반부에 장미꽃을 건네거나 깃털로 간지럽혀 보는 정도의 작은 행동을 작가에게 취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작가의 옷을 찢는다든지 장미 가시를 배(살)에 꽂는 등의 난폭한 행동을 하는 관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밤이 되면서 후반부로 이어질수록 칼이나 총으로 가학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잔인한 행위를 지속하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제지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충돌들이 싸움으로 벌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이 퍼포먼스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선천적인 폭력성'이 있어 어쩔 수 없다."의 주장 혹은 체념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작업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되며,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난폭함 그리고 가학성이 문제로 발견되었다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 할 개인의 방법은 무엇일지 고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작품을 통해 전달하게 되었다. 퍼포먼스가 끝난 후 작가가 자신에게 가학적인 행동을 했던 관객과 사람들에게 눈을 마주치며 다가가자 그들은 미술관 밖으로 빠르게 도망쳤다고 한다. 자신의 행동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하는 대상(Object)인 사회적 소수자 및 약자(익명성의 온라인 공간 포함)에게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반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쉽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타인을 "대상(Object)"이 아닌 "사람(Human)"으로 인식할 수 있는 태도를 배우는 사회와 교육, 제도와 문화예술의 필요성이 강조되어야 하며 타인을 대상(Object)으로 대할 수 없는 시대적 공동체 교육을 통해서, 사회 규칙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_Rest Energy(정지 에너지)_사운드 비디오, 16mm, 4분7초 컬러영상_1980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_바다가 보이는 집(The House with the Ocean View)_뉴욕숀캘리갤러리(Sean Kelly Gallery)_2002년

<바다가 보이는 집(The House with an Ocean View)> 은 2002년 11월 15일부터 12일 동안 뉴욕 숀 캘리 갤러리(Sean Kelly Gallery)에서 작가가 생활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바닥에서 180cm 높이에 세 개의 부스가 만들어져 있고, 왼쪽에는 샤워를 하고 용변을 볼 수 있도록 화장실, 가운데에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누워서 잘 수 있는 침대가 설치돼 있다. 12일 동안 작가는 먹거나 말할 수 없었고, 오직 물만 마시며 독서나 글쓰기 같은 창작 활동도 금하는 퍼포먼스였다. 전시기간 내내 부스에 놓인 메트로놈은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전시장을 긴장감으로 가득 채웠다. 이때 삶의 시간은 작품에서의 시간과 동일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고, 전시장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부스에서 연결된 사다리를 이용해야하는데, 그 사다리의 계단은 칼날로 이루어져 있어 실제 작가가 사용할 수 없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전시장 벽에 걸린 움직이는 그림(tableau vivant)처럼 보이게 유도했고, 극한 상황 속의 오직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구성 한 것이다. 퍼포먼스는 12일 동안 대중에게 공개되었고(public living installation), 작가는 사람 앞에서 누워있거나, 앉아있거나, 꿈꾸거나 혹은 생각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며 '시간'은 모두에게 공정하게 흘러가지만, 그 의미를 평소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경이롭게 재해석 할 수 있도록 작품으로 구현한 것이다. 우리는 실제 시간(real time)과 동일한 예술의 시간을 미술관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관망하며 무심히 흘러가는 삶의 속도에 관해 성찰해보는 의미를 얻을 수 있다. '과연 무엇이 사회를 구원하는가?' 라는 질문에 마리나는 개개인의 각성만이 세상을 변화 시킬 뿐, 시대와 문화 그리고 사회적 제도의 역할을 구현하기 위한 인류의 마지막 수단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은 바로 '예술 ART'이 되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