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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67> 첫 대면에도 '게스트 하우스 무용담'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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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67> 첫 대면에도 '게스트 하우스 무용담'은 이어졌다

놀멍 쉬멍 걸으멍, 걸어서 제주 한 바퀴, 제주 올레길
이방인들의 밤, 제주올레 19코스(19.4km) 조천에서 김녕 올레까지-⓵

게재 2021-12-30 16:07:59
제주도의 밤
제주도의 밤

이야기 넷- 제주도의 밤이 무르 익어가는 시간

밤이 되면서 비바람이 연신 낮은 지붕을 쓸고 가는 소리가 거세진다. 동네 어귀에 있는 헐벗은 당산나무가 둔하게 몸을 비튼다. 뒷마당에 걸쳐진 이중 빨랫줄이 거센 바람에 겨워 윙윙 소리 내 운다. 눈보라 치는 제주도의 시골 밤은 일찍 내리고 오밀조밀 게스트하우스 거실에 모인 객들은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인데도 오랫동안 함께 해온 것처럼 그들이 겪었던 '무용담'을 늘어놓기에 바쁘다.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일반 단층 주택을 개조했다. 방 세 개가 복도를 중심으로 마주보고 있다. 2인실이 기본인데 한 사람 당 3만원을 받는다. 조식 포함이다. 주인 남자가 직접 요리한 음식이 개인 쟁반에 밥과 반찬 몇 가지로 아주 깔끔하게 제공된다. 30대 중반의 키 큰 미남형 주인은 서울에서 이주해온 이주민이며 신혼이다. 신혼집은 따로 있다고 한다.

제주 올레
제주 올레

주인남자가 새벽부터 올레를 걷고 들어와 늦은 아침을 먹는 내게 제안했다. 오늘 저녁 작은 파티를 할 참인데 참석할 수 있냐고. 알고 보니 특별한 손님이 온다는 거였다. 특별한 손님은 올레를 걷기 시작했을 때 이곳에서 묵었던 사람인데 한 달여 걸쳐 완주한 다음 다시 이곳을 찾는다는 거였다.

주인남자는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각자 먹을 만큼 술과 안주를 준비해오라고 한다. 주인도 몇 가지 음식을 서비스로 제공하겠단다. 그렇지 않아도 비수기여서 올레를 걷는 사람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던 나는 이야기가 고팠던 참이었다. 흔쾌히 승낙했다.

6시가 조금 지나자 각자 사온 술과 안주, 주인장이 내 온 음식이 거실 앉은뱅이 식탁에 근사하게 차려진다. 올레를 완주하고 온 손님은 아담한 키에 얼굴빛이 검은 삼십대 초반의 남자다. 그는 직장을 그만둬서 시간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맞은편에는 과거 보험사에 다녔다는 사십대 후반 남자가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서 하루 묵는다고 했다. 내 오른쪽에는 대학 교수라고 하는 오십대 후반 남자가 앉았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소개가 끝나자 그동안의 일들이 유수 폭포처럼 쏟아졌다. 섬 속의 섬 세 군데(우도, 가파도, 추자도)까지 다 돌아 올레길 전 코스를 완주했다는 남자는 제일 마지막에 돌았던 추자도 이야기부터 꺼낸다.

"추자도가 마지막 코스였는데 그곳에서 5일 동안 꼼짝없이 잡혀 있었어요. 도착하자마자 비가 오는 거예요. 3일 동안 정말로 꼼짝없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있었다니까요. 그 뒤, 날이 개었어요. 그때서야 올레를 돌 수 있었어요. 딱, 돌고나자 비가 다시 오는 거예요."

보험 남자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는 올레를 걷지는 않아서 들었던 이야기를 할게요. 친구가 어느 농로를 걷고 있었대요. 그러자 밭에서 일하시는 어르신이 대뜸 하시는 말씀이, '비행기 타고 와가지고 왜 걸어, 힘들게?'라고 말하시더래요. 뭐랄까, 걷는 것을 이해 못하시는 거예요."

제주 19코스
제주 19코스

주인장이 이야기를 받는다.

"여기서 게스트하우스를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가 이곳에 3년 전에 오픈했는데, 정말 그래요. 옆집 옆집이 이 집 주인 할머니 이모 되거나 고모 등 다 친척 분들이세요. 친척 분들이 한 동네를 이루고 사세요. 한 분한테 미움 받으면 다 미움 받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말 나온 김에 이 집 전 주인 할머니 따님이 결혼을 했대요. 북촌으로 시집을 보냈나 봐요. 그랬더니 이웃에서 왜 그렇게 먼 곳으로 시집을 보내느냐고 그러더래요. 실은 먼 곳이 아니거든요. 버스 타면 십분 정도 걸릴 거리인데도 먼 곳이라고 하는 거예요. 다들, 앞집 뒷집 옆집에 모여 사니까요."

"그럴 만도 해요. 예전에는 제주시에서 서귀포시까지 평생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니까요."

소주 '한라산'을 연거푸 마시던 대학 교수가 끼어들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려면 한라산을 넘어야하는데, 오죽 높아요. 그래서 가보지 못한 거예요. 그 당시 이렇게 도로가 잘 나지는 않았고 한라산을 넘어가지 않으려면 그 주위를 빙 돌아서 가야했는데, 그것이 더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래서 아주 급한 일이 생기지 않은 한 가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계속해서 그는 경험담을 곁들여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16번 코스를 걸었을 때 다른 생각을 하다가 중간 스탬프 박스를 지나쳐 버려서 택시를 타고 다시 택시 기사한테 물어봤어요. '아니 제주도 지도를 보면 왼쪽, 즉 한라산의 서북쪽은 오름도 많지 않아 돌도 적은 것 같고 너른 구릉지가 많아 밭도 넓고 그래요. 밭담도 높지 않고 낮아요. 반면에 동북쪽은 오름들이 촘촘히 박혀 있어 돌도 많고 밭들도 오밀조밀하고 그렇더라고요. 개간한 땅도 적은 것 같고, 왜 그렇죠?' 그러자 기사 아저씨가 손님 말이 맞다고 하면서 확인을 해주는 거예요. 동북쪽은 오름이 많고 땅이 척박해서 먹고 살기 어려우니 다들 바다로 나간다고 하더군요. 바닷가도 동북쪽은 항포구가 비교적 적은데 비해 서북쪽은 잘 발달해 있구요. 그래서 동북쪽 사람들이 억세고 강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환경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강인한 성품. 가난하다. 반면에 서북쪽은 오름도 적고 평야지대가 많아요. 농토가 많아서인지 사람도 넉넉한 것 같고. 밭담도 높지도 않고 돌 고르는 것이 적으니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농토가 넉넉하니 주머니 사정이 좋아 유복하다고 할 수 있지요…."

대학교수의 말에 의하면 동부에 속하는 김녕도 척박한 곳이라고 한다. 올레길 18번 코스부터 21번까지, 그리고 1번부터 5번 코스까지 동부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이곳 밤바람은 강도를 낮추지 않고 창문을 두드려댄다. 밤바람 소리에 장난을 맞추듯 이방인들만 모여 앉은 식탁둘레는 이야기가 줄어들지 않는다.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걸었던 함덕해수욕장과 이어지는 서우봉 그리고 북촌을 되새김질 하면서 물을 한잔 마신다. 이번에는 내 이야기 차례이다.

19코스 시작점
19코스 시작점

※ 차노휘: 소설가, 도보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