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민속촌(류큐무라) 모습. |
류큐민속촌(류큐무라) 모습. |
사진은 류큐민속촌(류큐무라)에서 찍은 사진이다. 차노휘 |
류큐민속촌(류큐무라) 모습. |
사진은 류큐민속촌(류큐무라)에서 찍은 사진이다. 차노휘 |
사진은 류큐민속촌(류큐무라)에서 찍은 사진이다. 차노휘 |
류큐민속촌(류큐무라) 모습. |
류큐민속촌(류큐무라) 모습. |
류큐민속촌(류큐무라) 모습. |
사진은 류큐민속촌(류큐무라)에서 찍은 사진이다. 차노휘 |
류큐민속촌(류큐무라) 모습. |
류큐민속촌(류큐무라) 모습. |
류큐민속촌(류큐무라) 모습. 차노휘 |
나하 시에서 나고 시로 숙소를 옮길 때, 버스 정거장에서 예약해놓은 숙소까지 걸어가는 동안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 계단 위에는 신사가 있었고 그들은 새해 휴일 3일 동안 그곳에 들러서 1년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었다.
신사참배(神社參拜)는 신을 모신 신사에 기도하는 의식이다. 메이지 유신에 의해 덴노제 국가를 확립시킨 일본은 종교로서 출발한 국가신도에서 종교적 색채를 제거하고 이를 전 국민적인 보편이념으로 정착시키려고 추진한 정책 중 하나였다. 이후 러·일 전쟁을 계기로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닌 국가의 정치원리, 국민통합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행사로 정착되었다. 1930년대부터는 조선인에게 내선일체·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신사참배를 강제적으로 추진시켰다. 어떻게 보면 신사참배는 그들의 고유한 문화이기에 존중해주어야 했으나 조선의 정신까지 지배하여 철저하게 병참기지로 활용하려는 그들의 노골적인 속셈은 반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전범들의 위패까지 버젓이 그곳에 두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렇듯 설날 즈음에 신사나 사찰에 참배를 하며 한해의 축복을 기원하는 연중행사는 일본의 새해맞이 풍속으로 ‘하쓰모데(初詣)’라고 한다. 주기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문화현상이다. 원래는 음양도에서 그해의 복을 관장하는 신인‘에호(恵方)’가 찾아오는 방향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완벽하게 정착한 오키나와의 ‘하쓰모데’는 본토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신사나 절에 참배만 하면 된다는 현대적 감각이 낳은 산물이 되었다.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완벽하게 문화변용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오키나와에 이미 ‘하쓰우간’과 같은 유사한 습속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다른 점이라고는 개인의식이 아니라 마을 단위로 거행되는 새해 첫 기원참배행사였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하쓰모데로 스며들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기득권의 문화 권력(?)이다. 정치적인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정부가 관리하는 ‘시간’이다. 일본은 메이지 정부인 1872년, 서구의 역법인 태양력 도입을 선포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자연스럽게 오키나와도 일본 본토가 선택한 시간관념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지정한 공휴일 등이 일상에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양력설을 쇠는 일본에서는 음력이 기준인 하쓰우간이 하쓰모데에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오키나와는 류큐 때부터 자신들만의 달력을 사용한 왕국이었다. 1372년부터 중국의 역을 사용하긴 했지만 1465년에 류큐 내에서도 역이 만들어지다가 1682년부터 1879년까지 류큐력이 발행되었다. 류큐력은 중국의 역과 함께 24절기도 도입하여 행사 등의 택일을 했다. 마을의 제사 등도 음력을 바탕으로 하여 정기적으로 행하였다. 바다에서 일을 하는 그들에게 음력 달력이 더욱 절실했다.
세월이 변하고 지배계층이 어떤 문화를 수용하느냐에 따라서 권력의 휘하의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질서에 편입되어야 했다. 오키나와는 ‘류큐’라는 이름의 독립국가로 존속되어오다 에도시대에 일본에 점령되었고 메이지시대에 완전히 복속되었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는 민족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며 오랫동안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를 유지해왔다고 하지만 형식이 변하면 내용물이 변하듯 지금은 일본어를 쓰고 대부분의 사람은 본토 문화에 동화되었다. 그렇다고 그들만의 자의식을 표출시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문학가, 예술가 그리고 평화활동가 등의 활동은 일본 속에서 오키나와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일상의‘우치난츄(오키나와 사람)’와의 이야기에서는, 나고 시 숙소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던 노부부 딸인 아키코와의 대화 속에서 그들은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를 구별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별한 문제의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류큐는 과거 속의 류큐일 뿐, 단지 학술적으로나 관광 상품으로 존재하는 이름일 뿐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비극적인 오키나와 전투 그리고 지금껏 해결되지 못한 미군기지 문제, 은근한 차별 등이 되레 본토에 동화되고자 하는 마음에 불을 지피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였다.
차노휘<소설가/도보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