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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66> 삶의 성공 위해 간절히 기도한 여인의 흔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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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66> 삶의 성공 위해 간절히 기도한 여인의 흔적이

놀멍 쉬멍 걸으멍, 걸어서 제주 한 바퀴, 제주 올레길
이야기의 미학, 제주올레 18코스(19.8km) 제주원도심에서 조처 올레까지-⓷

게재 2021-12-16 18:33:04
닭모루 언덕에 있는 전망대(정자). 차노휘
닭모루 언덕에 있는 전망대(정자). 차노휘
닭 머리 닮은 바위. 차노휘
닭 머리 닮은 바위. 차노휘

이야기 셋 – 북두칠성의 맥과 제주인의 기상이 살아 있는 땅

기(奇)씨는 방안을 왔다갔다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걸을 때마다 비단 치맛자락이 사각거렸다. 며칠 전에 황제가 선물한 옥 귀걸이가 양쪽 귀에서 찰랑거렸다. 옥 귀걸이를 걸었다고 시샘한 제1황후에게 매질까지 당했다. 비록 매질과 욕을 먹었다지만 고려에 있었으면 꿈도 꿔보지 못할 사치였다. 그녀는 미천한 집안의 태생이었다. 그녀의 부모가 원나라에 바칠 공녀(貢女)로 그녀를 내놓았다.

1333년 8월 그녀는 원나라에 끌려왔다. 살아남아야했다. 다행히 다른 처녀들보다 미모가 빼어나 눈에 띄었다. 고려출신 환관의 도움으로 혜종 황제에게 차를 따르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 일을 맡은 게 천운이었다. 운에만 의지할 수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황제에게 은혜를 입은 몸이 되었다. 한순간의 분노로 그동안 이뤄놓았던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숨 쉴 때마다, 회초리가 살갗에 닿을 때마다 일었던 치욕이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입술을 꼭 깨물었다. 복수하고 말리라. 그때까지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말아야 했다.

그녀는 모욕을 당할 때마다 웃었고 제1황후를 감쌌다. 황실에서 모범적인 언행을 보였고 돈이 생기면 모아두었다가 그녀를 지지하는 세력을 키웠다. 굶주리는 백성에게 식량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선행과 지지세력 확대만으로는 그녀의 입지가 확실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권력을 굳건히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황제의 뒤를 이을 아들을 낳는 것이었다. 황후는 되었으나 아들을 얻지 못하면 그것은 황후 옷을 입은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평소 의지하고 있던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은 그녀의 근심을 듣지 않고서도 근심을 덜어주었다.

"북두칠성의 명맥이 비치는 삼첩칠봉(三疊七峰)의 산세를 갖춘 곳에 탑을 세우고 불공을 드리시면 됩니다."

그녀는 천하에 이름난 풍수사들을 동원해서 삼첩칠봉의 산세를 갖춘 곳을 찾게 했다. 고려 풍수사한테 제주도 동북 해변에서 바라던 산세를 찾았다는 기별을 받았다. 그녀는 사신을 보내 오층탑을 쌓게 했다. 완성된 뒤에는 직접 가서 극진한 기도를 올렸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1339년 황후가 된 기씨는 원나라 황통을 이을 태자를 낳는다. 그 후 그녀는 원나라가 몽골 내륙으로 쫓겨 갈 때까지 30년간 원나라의 실권을 장악한다. 1368년 명나라 군대가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를 점령하자 그녀는 가족과 함께 몽골 내륙으로 철수한다. 그곳에서 아들이 황제로 즉위한다. 바로 소종 황제(昭宗皇帝)이다. 드디어 기씨는 황후에 이어 황제의 어머니가 되었다. ―〈'원당봉에 있는 원당사(元堂寺) 오층탑에 얽힌 이야기'를 글쓴이가 각색한 글〉

삼양 검은 모래 해변에서 중간 스탬프를 찍고 원당봉(170.7m)으로 향했다. 고려 때 오름 허리에 원당사(元堂寺)가 세워진 데서 유래하여 원당봉이라고 불린다. 조선시대에는 원당 봉수가 있어서 망오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원당봉은 일곱 봉우리가 있는 오름이다. 오름 내에 사찰 세 곳과 봉우리 일곱 개가 있어 삼첩칠봉이라고 한다. 사찰은 불탑사(조계종)와 원당사(태고종), 문강사(천태종)이다. 기황후가 기도를 해서 태자를 얻었다는 원당사지 5층 석탑(보물 1187호)은 불탑사에 있다. 고려 후기에 세워진 이 탑은 제주 유일의 5층 석탑인 동시에 세계에서 하나뿐인 현무암으로 만든 탑이다. 오르막길 양쪽으로 나 있는 주택가를 한참 오르다보면 원당 오름 삼거리가 나온다. 원당사와 불탑사는 왼쪽으로, 문강사는 오른쪽에 있다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나는 오른쪽 주봉 굼부리 안에 세워진 문강사 표지판을 한참 쳐다보고는 왼쪽으로 향했다. 올레 리본뿐만 아니라 불교 성지순례길 리본도 나뭇가지에 나란히 묶여 있다. 이곳은 제주올레 길이면서 불교성지순례길이다. 2014년 11월에 개장한 '보시의 길'에 포함이 된다. 애월읍 대원정사에서 출발하는 이 순례길은 장장 45km를 지나게 되며 이곳 불탑사까지 이어진다. 오름 허리까지 시멘트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시멘트 양 옆으로 해송과 잡목이 우거져 있고 나무 밑동에 낙엽이 쌓여있다. 햇살이 나뭇가지로 비집고 들어와 쌓인 낙엽에 찬란하게 비춘다. 눈이 부시다.

이곳에서 기도해 기황후가 잉태하자 아들을 낳지 못한 수많은 고려와 조선 여인들이 기도하러 왔다고 했다. 기황후 전설과 사찰이 세 군데나 되는 오름. 땅심이 좋은 걸까. 이 좋은 땅을 밟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올레꾼이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인기 없는 올레코스일까. 아님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일까.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느릿느릿 걷다보니 불탑사와 원당사가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골목으로 들어선다. 오층석탑이 있는 불탑사로 먼저 향한다.

오층석탑은 구멍이 송송 뚫린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불탑이다. 이색적이면서도 시골 민박집 나이 드신 어르신처럼 정겹고 소담하다. 뭐랄까, 젊은 시절 일만하다 나이 들어 깡마른 몸피에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어 병원을 자주 드나들면서도 자식들 남편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마음 씀씀이라고나 할까. 그 이미지는 이곳에서 아주 간절히 삶의 성공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던 한 여인, 30년 동안 권력을 잡았던 그 여인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 여인에 의해 만들어진 불탑이 긴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 사이 제주도 아낙들의 풍파를 닮아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웅전 벽면에 쓰인 글귀가 눈에 꽂힌다. 다 허망한 것을(空). 불탑사 앞에서 잠시 다리를 풀고 앉아 쉬어가기로 한다. 아직 갈 길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