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5·18 피해자 극단 선택… 80년 이후 최소 4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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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5·18 피해자 극단 선택… 80년 이후 최소 47명
부상자 후송 돕던 유공자 숨져 ||국가폭력 트라우마… 고통 호소 ||“보상 넘어 인권·연대로 치유 필요”
  • 입력 : 2021. 11.24(수) 17:50
  • 김해나 기자
전두환씨가 사망한 지난 23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열사들을 추모하는 참배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광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90)씨가 숨진 날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된 유공자 이모(68)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24일 강진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전날 오후 4시께 강진군 군동면 한 저수지에서 물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익사로 추정된다.

이씨는 숨지기 전날 "이 각오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바, 요즘 통증에 더 시달리고 있다. 5·18에 대한 원한과 서운함을 모두 묻고 가겠다"는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항쟁 당시 전남 한 사찰의 승려였던 이씨는 1980년 5월18일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준비하러 광주에 방문, 계엄군의 무자비한 시민 학살을 목격했다.

같은 해 5월21일, 그는 부상자 이송 등을 돕다 계엄군이 쏜 총에 허리를 맞았고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는 40년이 넘도록 진통제로 견뎌왔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이씨는 5·18 진상규명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힘썼다.

그는 1989년 국회 광주 청문회와 1995년 5·18 헬기 사격 검찰 수사 당시 '헬기사격으로 젊은 사람들이 쓰러졌고 적십자병원으로 이송했다' 등을 증언했다.

고(故) 조비오 신부와 함께 계엄군의 헬기 사격 목격담을 증언하기도 했으며 지난 2019년 5월13일 전씨 사자명예훼손 1심 재판에도 증인으로 참석한 바 있다.

5·18 진상규명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왔지만, 이씨는 부상 후유증으로 40여년 동안 휠체어 생활을 해야만 했다.

후유증을 이겨내기 위해 강원도, 전북 등 요양지도 옮겨봤지만 그는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씨 뿐만이 아니다. 41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아픔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5·18기념재단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5·18 자살과 트라우마의 계보학'에 따르면, 후유증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5·18 피해자는 1980년대 25명, 1990년대 4명, 2000년대 13명, 2010년대 4명으로 조사됐다.

선택의 주요 원인은 고문 후유증과 생활고 등으로 알려졌다. 고문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고통, 이를 견디기 위한 알코올 의존, 대인관계 실패, 가정문제, 실직, 빈곤문제 등이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전원이 외상 및 병리적·경제적·사회적·가정적 차원에서 죽음에 노출돼 있던 셈이다. 5·18은 항쟁에 참여했던 이들뿐만 아니라 목격자, 일반 시민 등 모두에게 상처로 남았다.

전문가들은 국가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진실'이라고 말한다. 마음 속 아픔을 먼저 내려놔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 한 사회학과 교수는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와 피해자에게는 금전적 보상이나 신체적 치료보다도 '진실 규명'과 '치유'가 우선적이다"며 "단순 보상 등의 개념이 아닌 인권적 치유에 기반한 다양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받을 수 있습니다.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