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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유전자·서홍원> '신에게는 아직…' 포기하지 않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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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유전자·서홍원> '신에게는 아직…' 포기하지 않을 용기

서홍원 연세대 영문학과 교수

게재 2021-07-28 14:57:15
서홍원 연세대 영문학과 교수
서홍원 연세대 영문학과 교수

영화 <명량> 이후 유행처럼 번졌던 이순신 장군(이하 직위·존칭 생략)의 말은 한국인 특유의 창의성으로 여러 패러디로 탈바꿈하였다. 당시의 헬스장 광고 "신에게는 아직 12㎏의 지방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되었을 때 "신에게는 아직 12발의 핵이 남았습니다" 등이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데, 최근 동경에서 우리 태극전사들의 숙소에 걸렸다가 정치적 발언이라는 일본의 항의에 내려진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라는 펼침막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우국충정의 상징으로 우리의 의식에 각인된 이순신의 말은 임금인 선조에게 어떤 마음을 전하려고 상신된 것이었을까?

1597년(정유년) 음력 7월로 돌아가서 왜군에게 쉴 새없이 몰리던 조선의 급박한 상황을 살펴본다. 이순신의 <정유일기> 7월 18일 기록에는 경남 칠천량에서 조선의 수군이 몰살 수준의 참패를 당했다는 소식이 적혀있다. 이를 계기로 이순신을 불신하던 선조가 바로 교지를 내려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고 있던 그를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순신이 8월 3일에 이 교지를 받았을 때 그에게 남은 배는 실제로 없다시피 하였다. 그래서인지 선조는 교지를 내린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서 이순신에게 수군을 포기하고 다시 권율 휘하에서 싸우라는 서신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생각하면 이 얼마나 다급하고 섣부른 결정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이순신은 왕에게 다음과 같이 상신한다.

"임진년부터 5, 6년 동안 적이 감히 전라, 충청으로 직접 돌파하지 못한 것은 우리의 배가 그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막아서 싸운다면 오히려 해볼 만합니다. 지금 만약 이 배들을 버린다면 이는 적들이 행운으로 삼을 이유로서, 이들이 충청도를 지나 한강에 이를 것이니 신은 이것이 두렵습니다. 전선은 비록 많지 않으나 미천한 신이 죽지 않는 한 저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 상신에서 한국인들의 영혼을 울리는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라는 명언이 나온다. 물론 나라를 위한 이순신의 충성심이 물씬 풍기는 말이다. 그러나 전문을 보면 단순히 파토스, 청자의 감정에만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미천한 신이 죽지 않는 한 저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는 당찬 자세, 이순신의 장수로서의 에토스도 선조를 설득하고 있다. 선조는 과연 이순신의 충성의 울부짖음에 감동했을까? 늘 의심했던, 어쩌면 시기까지 했던 이순신의 에토스를 선조가 과연 믿을 수 있었을까? 물론 감동과 믿음이 왕을 설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상신에서의 핵심은 수군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즉 포기하는 순간 왜군이 한양 도성까지 저항없이 밀고 올라오니 단 12척의 배로라도 죽을 힘을 다해 막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반한 논리, 로고스이다. 싸우기도 전에 패배를 받아들였던 선조는 이 글을 읽고서 단 12척의 배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선택은 당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신이 죽지 않는 한"(微臣不死)은 "신이 죽이 않으면"으로도 읽을 수 있다. 죽음은 전제되어 있다. 임금과 신하 모두 12척의 전선으로 열 배가 넘는 적의 수군을 막기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순신은 상신에 "죽을 힘을 다해 막아서 싸우면 오히려 해볼 만"하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선조를 설득한 그는 명량에서의 전투를 앞두고 장수들을 불러모아 죽음이라는 말을 또 언급한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이는 죽어서 나라를 지키자는 말임과 동시에 병법에서 인용한 말로서 아주 작은 확률이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순신과 그의 수군은 믿기지 않는 대승을 거두었다.

조선은 이후 또 한 번 환난을 맞으니, 남한산성에서 임금이 다른나라에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까지 겪는다. 이를 또 하나의 영화에서 다뤘으니, 임금 앞에서 이조판서(이병헌 역)와 예조판서(김윤석 역)가 실익과 정신을 놓고 벌였던 논쟁이 인상깊다. 한 편에서는 백성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또 한 편에서는 국가로서의 자존심을 위해(여기에 명나라에 대한 충성도 담겨 있어서 씁쓸했다) 임금에게 간하던 두 신하의 모습이 눈물겹다. 어떤 선택을 하였어도 비극이니. 결국, 이 영화에서는 실익이 정신을 눌러서 백성은 살고 나라는 존속하지만, 그 분함과 설움은 일제강점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는 상영객에게 생생하게 새겨진다. 시종일관 나약한 모습을 보인 임금(박해일 역)에게 이순신 같은 포기하지 않는 장수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동경에서는 평균 연령 스물이 안 되는 양궁선수들과 십대 탁구 신동이 밝고 당당한 표정으로 상대들과 경쟁하고 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놓였던 펜싱선수는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뒀으며 이 같은 기적이 탁구에서도 일어났다. 매 올림픽마다 보지만 부상을 참아내며 혼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감동이다. 선수촌의 펼침막에 담긴 이순신의 패러디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적개심을 드러낸 것이 아닐 것이다. 포기를 모르는 이순신의 정신이 우리 선수들에게 깊이 심어져 있기에 선택된 것이리라. 코로나와 더위와 태풍 속에서 장군 못지 않은 투쟁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열렬히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