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70대 주민들 손으로 꾸민 바다 위 '섬 정원'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70대 주민들 손으로 꾸민 바다 위 '섬 정원'
여수 손죽도||돌담·밭에 능소화 담쟁이 심어||마을은 온통 꽃과 나무로 가득||골목길 걷는 재미 주는 '꽃섬'||봉화산~깃대봉~삼각산 연결된||바다 배경 탐방로 걷기도 즐거움
  • 입력 : 2021. 07.15(목) 15:05
  • 편집에디터

손죽마을 풍경. 바다를 배경으로 들어선 마을과 돌담이 아름답다. 이돈삼

마을에서 본 삼각산 풍경. 바위봉우리 두 개가 우뚝 솟아 있다. 이돈삼

손죽도는 거문도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섬이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다. 지리적으로는 고흥에 가깝다. 손죽도는 본디 고흥 땅이었다. 1896년 돌산군이 새로 생기면서 관할이 바뀌었다. 돌산군이 여수로 편입되면서, 손죽도도 여수의 품에 안겼다. 여수바다가 품은 353개 섬 가운데 하나다.

손죽도로 가는 배편은 넉넉하지 않다. 여수항 여객터미널에서 거문도로 가는 쾌속선을 타야 한다. 이 배가 고흥 외나로도 축정항을 거쳐 손죽도에 들른다. 고흥 녹동신항에서 차도선형 여객선도 오간다.

손죽도에는 주민등록상 130가구 190여 명이 살고 있다. 실제는 100여 명이 산다. 마을 앞, 유려하게 구부러진 포구에 고운 모래가 깔려있다. 백사장이 바닷속까지 훤히 보이는 파란 바다와 어우러져 있다.

섬 풍광도 아름답지만, 마을의 돌담이 더 정겹다. 돌담이 부드럽게 굽은 골목을 따라 이어진다. 여러 가지 꽃, 넝쿨식물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예술작품 같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집의 마당도 단아하다. 백일홍과 해바라기, 채송화, 봉숭아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제법 너른 마당의 집은 울창한 숲 같다. 잘 다듬어 놓은 정원이다.

골목과 돌담에도, 묵은 밭과 길섶에도 능소화와 담쟁이, 마삭줄이 몸을 풀고 있다. 마을이 온통 꽃과 나무에 파묻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골목을 걷는 재미를 주는, 진짜 '꽃섬'이다. 어느 집에선가 시작된 정원 가꾸기가 유행처럼 번졌으리라. 섬 정원이고, 바다 위의 정원이 됐다.

섬을 정원으로 꾸민 주민 대다수가 70대 이상이라는 점도 놀랍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고, 자신의 몸도 가누기 버거운 어르신들이 오밀조밀 훌륭한 정원으로 만들었다. 조경 전문가보다도 더 나은 솜씨다. 정원이 섬주민은 물론 외지인들의 마음까지 달래주고 있다.

"온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모종을 키우고 정원을 가꾸는 일을 시스템화하는 거죠. 펜션이나 식당 같은,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수익이 아니고요. 주민들이 좋아하는 꽃과 정원으로 지속가능한 수익 기반을 만들고 싶습니다." 박근희 손죽마을협동조합 이사장의 말이다.

바다에서 본 손죽마을 풍경. 바닷가에 새로 지어진 마을식당과 호텔이 눈길을 끈다. 이돈삼

손죽분교도 애틋하다. 주민들이 힘을 합쳐 학교를 지었다. 자식들의 배움터를 만든다는 마음으로 직접 땅을 고르고 돌을 옮겼다. 1923년 손죽사립보통학교로 문을 열었다. 전남교육 문화유산 제7호로 지정돼 있다.

지금은 거문초등학교 손죽분교장이다. 3학년과 6학년에 1명씩 2명이 다니고 있다. 조주호 교사 혼자서 전교생 수업을, 1대1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내년 초엔 6학년 오은송이 졸업하고, 3학년 오은율이 여수시내 학교로 전학을 간다. 학교도 문을 닫게 된다.

손죽도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당제와 용왕제를 지낸다. 3월엔 이대원 장군 추모제를 지낸다. 진달래꽃이 피면 가면을 쓰고 '원조 복면가왕' 놀이를 하며 전통 화전놀이를 즐겼다. 깃대봉 아래, 소거문도가 보이는 '지지미재'에서다. 화전놀이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작은공동체 전통예술잔치' 공모 지원사업으로 30년 만에 복원됐다.

이대원 장군은 손죽도의 지명 유래와도 엮인다. 1587년, 당시 녹도만호였던 이대원은 소록도 앞바다에서 왜군에 맞서 승리를 거뒀다. 이게 화근이었다. 이대원은 상급자인 전라좌수사 심암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나가서 싸웠다. 갑작스레 닥친 왜군을 앞에 두고 경황이 없었다. 심암은 승전의 공을 이대원이 독차지하려고, 부러 보고하지 않았다며 시기했다.

얼마 후 왜군이 손죽도에 다시 쳐들어왔다. 심암은 100명의 군사만 이끌고 깊은 밤에 출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대원은 환할 때 군사를 제대로 모아서 출전하겠다고 했다. 심암은 막무가내, 즉시 출전하라고 명했다. 이대원은 손죽도로 가면서 심암에게 지원군을 요청하지만, 지원군도 오지 않았다. 이대원은 끝까지 싸우다가 왜군에 붙잡혔다.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분개했다. 그 사실이 조정에까지 전해졌다. 심암이 패전의 책임자로 지목돼 압송됐다.

임진왜란 직전인 1591년, 심암의 후임으로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왔다. 이순신은 '큰 인물을 잃었다'며 슬퍼했다. 그때부터 잃을 손(損), 큰 대(大)를 써서 '손대도'라 이름 붙었다. 나중에 손죽도(損竹島)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부드러울 손(巽), 대 죽(竹)을 쓴 '손죽도'로 바뀌었다. 섬에 '부드러운 대나무' 신우대도 많다.

손죽도에 이대원 동상과 사당이 들어서 있다. 손죽도 선착장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사당 충렬사도 있다. 1983년 초가에서 기와지붕의 건물로 바뀌었다. 동상과 영정이 근엄하기보다, 투박하면서도 조악한 느낌마저 준다. 섬사람들의 마음을 닮은 동상이고 영정이다. 섬사람들이 해마다 추모제를 지내는 가묘도 가까이에 있다.

삼각산으로 올라가는 데크. 해안 벼랑을 따라가는 길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돈삼

손죽도의 탐방로도 근사하다. 봉화산과 깃대봉, 삼각산 등 3개의 산으로 연결된 섬의 잔등을 타고 이어진다. 사방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바다를 배경 삼아서 걷는 길이다. 길은 선착장에서 마재봉을 거쳐 봉화산(162m)으로 이어진다. 옛날에 적의 침입을 살피는 전망대가 있던 곳이다. 깃대봉(237m)은 일본인들이 측량을 하면서 깃발을 꽂았다는 산정이다. 삼각산(176m)은 바위봉우리 두 개가 서로 다리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고 '상각산'이라 불리다가 삼각산으로 바뀌었다.

길이 아찔한 벼랑을 끼고 이어지면서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더디다. 반짝이는 푸른 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이 올망졸망 떠 있다. 바닷바람이 섬의 능선을 타고 넘는다. 산으로 둥그렇게 싸인 포구와 마을 풍경도 한없이 평화롭다. 전망 데크도 군데군데 있다. 전체 길이가 9㎞, 4시간 남짓 걸린다. 선착장에서 마재봉을 거쳐 섬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목넘이전망대까지만 갔다 와도 좋다. 4㎞ 가량 된다.

손죽도 선착장과 마재봉 풍경. 선착장에서 시작되는 손죽도 둘레길이 마재봉으로 이어진다. 이돈삼

손죽도는 2017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그동안 둘레길을 단장하고, 여행객을 위한 마을식당과 호텔을 지었다. 펜션 대신 '호텔'로 이름을 붙인 건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주민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 사이, 섬을 찾는 뭍사람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작년에만도 1000명 넘게 찾아왔다. 섬살이를 위해 들어오는 귀촌자도 해마다 늘고 있다. 여수바다가 품은 숨은 진주, 손죽도의 매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손죽도 주변 바다 풍경. 먼바다에서 누리는 호젓함이 묻어난다. 이돈삼

충렬사. 이대원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있다. 이돈삼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