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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손필영> 꿈을 갖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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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손필영> 꿈을 갖는다는 것

손필영 시인·국민대 교수

게재 2021-04-07 13:36:16
손필영 시인
손필영 시인

오래전 미국 뉴욕주의 한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초가을 한낮에 도착해서 한국음식점을 수소문해 들어가 밥을 먹고 있을 때 추운듯한 표정의 잔뜩 웅크린 인도 노인이 들어 왔다. 그는 우리 테이블 쪽으로 다가와 한국 학생들 초대로 대전과 포항 등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선뜻 우리의 식사비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사양하자 그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본 적이 없으면 다음날 자신이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아가라를 가려고 스케줄을 잡아 놓고 교통편 때문에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기에 우리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숙소에 돌아온 후 이 사람이 무엇 때문에 초면의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까? 하는 복잡한 마음으로 서성거리는데 한국식당 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김밥 7인분을 주문했으니 따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미리 계산을 하러 식당을 다시 방문했다. 식당 주인은 그가 이 근처 대학의 공학교수이며 식당의 단골손님이라 말했다. 이상한 생각이 가시기는 했지만 내내 그의 친절이 의아했다.

다음날 그는 한 중국 여학생을 데려왔다. 자신의 랩에 있는 북경 출신의 박사과정 학생이라고 소개하면서 아시아 사람끼리 잘 지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가는 도중 그는 피곤하다면서 운전을 부탁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무사히 나이아가라에 도착해 숲속에서 김밥을 먹던 중 그는 갑자기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읽었다. 자신은 꿈이 없었는데 60살이 되면서 꿈을 갖게 되었다고. 어려서 겪은 가난이 너무 싫어 나라를 떠났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셨어도 자신의 나라로 가지 않았다고.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고 넷을 입양하고 키웠는데 성인이 되어 모두 떠났고 아내와는 합의 별거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에 입양한 딸이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잠시 자신에게 와 있는데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말도 했다. 그는 차도 집도 렌트해서 쓰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자신이 비용을 댈테니 나이아가라 폭포 전망대에 올라가 볼 것을 권했다. 우리는 사양하고 어스름이 내려앉는 폭포 주변을 걷다 돌아왔다. 헤어질 때 그는 우리가 도시를 떠날 때 기차역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에 점심을 같이 하자고 말했다. 다음날 그는 광동 출신의 석사과정 여학생을 데려왔다. 우리에게 소개하면서 아시아 사람끼리 잘 지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별말 없이 식사를 하고 그는 백인 종업원에게 과한 팁을 주고 자리를 일어났다.

그가 미국에서 오랜 기간 지내면서 받은 인종차별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그는 아시아 사람들에게 서로 잘 지내라고 부탁했던 것이었을까? 그 해 겨울, 새해 인사를 하기 위해 그를 수소문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던 것 같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는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해 자신의 마지막 시간과 물질을 썼다. 헤어질 때 그에게 준 선물도 늙은 사람에게는 필요 없다면서 학생에게 주라고 했다. 그날 숲속에서 꿈을 갖기 시작했다면서 꿈의 내용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것을 이루었을 것이다. 꿈은 생각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루는 것이리라. 우리를 포함한 그를 만났던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그를 기억하며 그를 닮고자 할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꿈을 꿀 수 있을까?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자본주의의 종이 된 삶에서 마지막까지 헤어나오지 못하고 죽는 것은 자신의 선택일 것이다. 어디서나 돈 때문에 직권 남용과 위선이 일어나는 곳, 지구. 인도 노인처럼 마지막에 가져가지 못하는 것을 미리 나누어 주는 꿈을 꾸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인가?

박용래라는 시인이 있다. 징용 열차를 타고 경성으로 올라가다 해방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당시 강경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조선은행에 취직이 됐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고 학교에 근무하다가도 사임하고 아내와 일을 바꾸어 살림을 살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모두가 돈을 벌고 출세하기 위해 산다면 시인 박용래는 거꾸로 산 셈이다. 그의 시 '열사흘'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지만 '부우헝'이라는 뱃고동 소리를 통해 서해 외연도 부두 노동자의 삶의 애환이 드러난다. 열사흘은 평생 열심히 일을 하지만 보름달처럼 환하고 가득찬 삶은 살 수 없는 부두 노동자들의 가난한 생활을 상징하고 있다. 이들은 보름에서 이틀이 빠진 만큼 이지러진 행복을 최대의 행복으로 느낄 것이다. 언제나 가난하고 언제나 부족하고 슬프게. 그러나 시인은 그들의 삶을 "부엉이/ 은모래/ 한짐 부리고/ 부헝 부헝 /부여 무량사/ 부우헝/ 열사흘/ 부엉이/ 은모래/ 두 짐 부리고/ 부헝 부헝"으로 노래하며 그러한 삶을 동화적으로 보고 있다. 슬프고 가난하지만 그 삶에는 욕심도 없고 욕망도 지워져 순수한 존재만이 느껴진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순수한 존재로만 존재했던 적이 있었던가? 인도 노인처럼 마지막까지 꿈을 가져보고 싶다. 주입된 가치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