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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재심 1년…진실 규명은 여전히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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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재심 1년…진실 규명은 여전히 불투명

김진영 정치부 기자

게재 2021-04-06 16:17:25
김진영 정치부 기자
김진영 정치부 기자

"이번 판결의 집행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며…."

미묘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던 재판장은 끝내 울먹였다. 지난해 1월 광주지검 순천지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날은 72년만에 여순사건의 무죄를 선고하는 역사적 재판의 현장이었다.

누군가가 일생을 시작했다 마감할 시간인 70여년만에 이뤄진 무죄 선고에도 박수도 환호도 없었던 당시 모습이 뚜렸히 기억에 남는다. 그것은 차라리 울분에 가까웠다.

유가족들은 지난 70여년의 세월 동안 어느곳에도 토로하지 못한 채 가슴 속 켜켜이 쌓인 깊은 한에 짓눌린 모습이었다. 울분이 터지듯 박수가 뒤늦게 파도처럼 터져나왔고 방청객석은 어느새 울음바다가 됐다.

눈물을 흘리는 방청객 가운데는 여순사건 때 가족을 잃은 이들도 있었고, 그들의 아픔을 곁에서 지켜봐 온 이웃들도 있었다. 판결이 끝난 뒤에도 어떤 이들은 진이 빠진 듯 차마 자리를 뜨지 못했다. 휠체어를 탄 98살 노모와 75살 딸은 한참 동안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판결장 밖으로 나온 유가족들은 한결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사법부의 사과로 여순사건 피해자들의 억울한 한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상 규명을 향한 유가족들의 외침은 항상 외면만 받아왔던 탓이다. 특별법 발의만 다섯 차례. 이번엔 마침내 70년 묵은 한을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주민들의 기대는 무참히 짓밟혔다. 온갖 현안에 밀리고 밀려 해를 넘겼다. 작년 11월에서 올해 3월로. 3월에서 4월. 정치권의 공허한 약속은 뒤로 밀렸다.

한전공대 특별법,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등 지역의 주요 현안들이 수많은 난관을 뚫고 기어이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여순사건은 야당의 발목 잡기가 없었음에도 그저 주요 현안에 밀려 뒷전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치러진 제주 4‧3사건 기념식에서 여순사건 유가족들은 황망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4‧3사건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여순사건은 뒷전 신세를 면치 못하는 반면 4‧3사건은 다양한 기념‧추모사업이 활발히 전개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4‧3사건 기념식 자리에서 더욱 가슴 아팠던 것은 대통령이 단 한번도 여순사건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 여순사건 유가족이 끝내 감추지 못하고 토로한 속 쓰린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