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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매그놀리아, 춘분의 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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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매그놀리아, 춘분의 제비

게재 2021-03-18 11:59:25

"여기를 떠나가는 제비는/ 아, 혹시 바람 속에서 은둔처를 찾다가/ 길을 잃었나 아니면 은둔처를 찾지 못하나/ 내 침대 곁에 그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리/ 그곳에서 계절을 보낼 수 있으리라/ 나도 역시 이 지방에서 길을 잃었네~" 슬프지만 그윽한 멜로디, 중남미 특유의 선율이 기타반주에 실려 아카풀코 해안을 유영하는 듯하다. 멕시코의 민요 La Golondrina(제비)다. 본래 스페인에서 작곡되었다는데 멕시코로 넘어오면서 조국을 잃은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는 곡이 되었다고. 1968년 멕시코 올림픽 폐회식에서 불려 전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노래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연경이 작사하고 조용남이 번안해 부른 '제비'로 잘 알려져 있다. "정답던 얘기 가슴에 가득하고/ 푸르른 저 별빛도 외로워라/ 사랑했기에 멀리 떠난 님을/ 언제나 꿈속에 있네/ 먹구름 울고 찬 서리 친다 해도/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고운 눈망울 깊이 간직한 채/ 당신의 사랑 품으렵니다.~" 멕시코의 나라 잃은 설움이나, 사랑했기에 멀리 떠난 님이거나 노래의 이면은 기다림의 정조로 빼곡하다. 노랫말처럼 바람 따라 제비 돌아오는 날, 그것은 나라가 해방되는 날일 것이고 그리던 임을 만나는 날이었을 것이다.

강남 갔던 제비 돌아오는 춘분(春分)과 하릿날

하지만 이런 간절한 기다림에 비해 제비 날아오는 개체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필시 기후위기 시대의 한 풍경이리라. 다행히 수년 전부터 줄었던 제비 개체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아직 실망하기는 이른 것일까. 농경지의 농약 사용량이 줄어든다든지, 서식처의 환경이 복원된다든지 하는 조건 때문일 것이다. 제비에 투사된 기다림의 정체는 무엇일까? 제비가 돌아와 집을 짓게 되면 그 집안에 복이 온다거나 좋은 손님이 찾아온다는 생각의 이면들 말이다. 거기에는 소생하는 봄이 있다. 24절기의 네 번째 절기 춘분을 제비와 연관시켜 해석하는 이유다. 한 해의 시작을 입춘으로 치니 춘분은 봄의 시작이다. 태양의 황경이 0°가 된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고 대칭점에 추분이 있다. 기독교에서도 부활절과 관련해 해석한다. 오랜 기다림의 소망들이다. 종교며 관념이며 여러 의식들에 투사한다. 동서양은 물론 모든 문명권의 절기축제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驚蟄)에 이어 춘분에 제비 돌아온다. 청명에 종달새 울어 곡우(穀雨) 봄비를 내린다. 비로소 만물이 갱생하고 부활한다. 양력절기 춘분과 관련되는 음력 절기는 하리아드렛날(음력 2월 1일)이다. 중용에서 말한 것처럼 만물은 중화(中和)에서 자라니 중화절(中和節)이라고도 한다. 지춘상의 보고에 의하면 신안에서는 하래드는 날, 해남과 진도에서는 하루달 혹은 하구달, 무안에서는 하루아릿날, 하랫날, 하드리날, 화순과 강진 등에서는 하드래, 허드래, 장성에서는 하래드리, 하려드렷날, 나주에서는 하레드레 담양에서는 하루데라 한다. 호남과 영남에서 맞이하는 바람신 영등할머니는 초하룻날 오셨다가 보름 만에 올라간다. 그래서 음력 2월은 바람이 많다. 일을 시작하는 머슴들을 위로한다고 해서 머슴날, 노비일이라고도 한다. 주인은 머슴에게 새 옷과 음식을 내준다. 머슴들은 가가호호 걸립풍물을 친다. 씨름으로 힘겨루기도 한다. 정월 대보름에 세웠던 볏가릿대에서 벼이삭을 내려 흰떡을 만든다. 나이수대로 송편을 만들기에 '나이떡'이라고 한다. 송편이 추석떡으로 고착된 이유는 지난 칼럼에 써두었으니 참고 바란다. 춘분을 전후하여 봄보리를 간다. 논밭갈이를 한다. 첫갈이이니 초경(初耕)이다. 담을 고치고 들나물을 캐다 먹는다. 비로소 1년이 시작된다. 하루를 밭 갈지 않으면 일 년 내내 배부르지 못하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매그놀리아(Magnolia), 제비 돌아오고 하얀 목련 필 때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거리엔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경칩 지나 춘분에 이르면 어디 제비만 돌아올 것인가. 남도 천지에 하얀 목련이 핀다. 하얀 목련 하면 양희은의 이 노래가 떠오른다. 2018년 한 방송에서 노래 탄생 비화가 소개되었다. 1982년 서른 살이던 양희은은 난소암 말기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수술을 위해 입원했는데 병실 밖에 눈부신 흰목련이 피어있었다. 한 친구가 편지를 보내왔다. "너와 똑같은 병을 앓다 눈감은 어떤 여자 장례식장에 다녀온다. 공원엔 목련이 지고 있다." 죽을힘을 내라는 메시지였다. 양희은은 이 절박한 심정을 시로 썼다. 김희갑이 곡을 붙였다. 명곡 하얀목련이 탄생했다. 양희은이 기적적으로 회생했음은 불문가지다. 양희은의 하얀 목련은 오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였다. 목련의 학명은 매그놀리아(Magnolia)다. 프랑스 식물학자 피에르 매그놀이라는 사람의 이름이다. 목련(木蓮)은 문자 그대로 나무에서 핀 연꽃이다. 눈 속에 피는 꽃 매화가 입춘과 우수의 꽃이라면 목련은 경칩과 춘분의 꽃이다. 흰목련을 영춘화(迎春化)라 하고 자목련을 망춘화(亡春花)라 하는 것은 나무에서 핀 연꽃이 봄을 맞이하고 보낸다는 뜻이다. 우리의 영원한 여신 심청이도 연꽃으로 부활해 돌아왔지 않은가. 목련의 꽃말이 고귀함과 숭고함이지만 한편 부활인 까닭이기도 하다. 매 시대마다 가슴 절절한 이야기들이 있다. 노래들이 있다. 1944년 결성된 보컬 트리오 로스 판초스(Trio Los Panchos)의 제비를 듣는다. 조영남의 제비를 듣는다. 그 안에 수많은 이야기와 애환, 아니 한 시대가 들어 있다. 흰 목련의 노래에 어찌 양희은의 구사일생 스토리만 있겠는가. 그 안에 포개지고 겹쳐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갈등과 목숨 바쳐 헌신하던 투쟁들이 보인다. 춘분에 날아온다는 제비를 떠올린다. 하릿날 지난 남도 산하에 만개한 흰목련을 바라본다. 혹시 양희은처럼 몇 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는가. 앞뒤 안보고 열심히 살아온 시절이 원망스러운가. 처절하고 간절하게 사랑하던 사람을 떠나보냈는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서있기도 힘들만큼 고통이 혹심한가. 차마 눈을 뜨기도 두려워 우주 너머 어떤 세상을 생각하고 있는가. 어쩌자고 그대, 동백꽃 뚝뚝 떨어져 내린 그 자리 그대로 서계시는가. 바람 따라 제비 날아오는데, 거리마다 구비마다 흰 목련 가득한데. 힘을 내자 매그놀리아! 다시 봄이다.

남도인문학팁

광주전통문화관 무등풍류뎐

남도전통의 메카 광주전통문화관에서는 해마다 절기를 특화하여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광주시지정 무형문화재들을 시리즈별로 모시는 자리이기도 하다. 2021년 한 해도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구성되었나 보다. 오는 3월 21일에는 남도의례음식장과 진도의 조오환 명인을 모셔 춘분에 얽힌 이야기들을 듣는다. 4월엔 삼월삼짇날, 5월엔 관례, 6월엔 단오, 7월엔 유두, 8월엔 칠월칠석, 9월엔 한가위 이야기와 각종 공연들이 준비된다. 특히 9월엔 광주시 작고 무형문화재들을 기리는 추모제가 준비된다. 남도 전통의 뿌리와 상하를 살피니 고무적이다. 10월엔 상강, 11월엔 무형문화재, 12월엔 동지이야기로 광주와 남도 전통을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춤추게 될 것이다. 광주의 자존심 광주전통문화관에 변함없는 성원과 관심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