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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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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들

게재 2020-10-28 14:25:01
도선인 사회부 기자.
도선인 사회부 기자.

12시간 넘게 배달을 하느라 함께 놀아주지 못한 자식을 늘 안타까워 하는 택배 노동자. 지난 밤 쌓인 오물을 치우며 새벽을 여는 청소 노동자. 코로나와 폭우의 공포를 온몸으로 견뎌냈지만 빚만 쌓인 영세 자영업자. 예기치 못한 화마를 당해 보금자리를 잃은 가족. 2~3개의 알바자리를 넘나들며 꿈을 찾아 헤매는 청년.

지난 9월 사회부 기자로 발령을 받고 나서 두달여동안 기자가 만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저마다 가슴 먹먹한 사연이 있었다. 그리고 기자는 취재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사연을 묻고 또 기록했다. 그냥 만났다면 절대로 묻지 않았을 것들을 물을 때도 있다. 갚아야 할 빚은 얼마인지, 무시 당하지는 않는지, 암담한 현실을 타개할 길은 보이는지…. 그럴때마다 취재원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며 감정까지 고스란히 전달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들도 간혹 있다. 기꺼이 삶의 보따리를 풀어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그 순간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고마움과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최대한 그들의 관점에서 기사를 쓸 경우가 있다. 또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도움이 될수 있을까 싶어, 그들의 처지를 최대한 측은하게 보이도록 묘사할 때도 있다.

허나 이내 곧 그런 표현은 지우고 만다. 그들을 측은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되려 그들을 모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기자가 팩트와 객관적 시각을 저버리면서까지 감정에 치우쳐 기사를 써서는 안된다.

기자는 객관성에 충실하고 균형감각을 유치한 채 본대로 들은대로 옮겨야 한다. 종종 독자들이 묻는다. "사는 게 너무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데 왜 이리 감정없이 쓰느냐. 불쌍하지도 않느냐"고.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이 불쌍하다는 시각에서 출발하면 안 된다. 그들이 불쌍하면 그 힘든 현실을 타개할 정책은 동정으로 변하고 만다.

'여기 이런 피해를 입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을 것인가'를 묻는 것이 기자가 할 일이기에 오늘도 기사를 쓰며 감정을 억누른다.

역대 최대 슈퍼여당 더불어민주당이 탄생한지 6개월여가 흘렀다. 그런데 그들이 주창했던 '불평등이 완화되고 공정 경쟁을 위한 구조적 시스템'은 여전히 우리 곁에 없다. 특히 올해는 취약계층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재난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그들은 고통의 굴레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고통스런 현실과 시스템의 부재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것, 그리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안 촉구가 기자가 해야 할 일이다.

취재중 처음 만난 기자에게 스스럼없이 진정성을 갖고 마음을 열어 준 취재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울러 당신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에 늘 연민과 슬픔을 함께 느끼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