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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코로나와 친구하기
  • 입력 : 2020. 10.27(화) 16:47
  • 박상수 기자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자네는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조지훈의 시 '병(病)에게' 일부)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시인 조지훈(趙芝薰·본명 東卓·1920~1968)이 말년에 쓴 시다. 이 시는 '사상계' 1968년 1월호에 실렸다. 그가 사망하기 넉 달 전이다. 사실상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잦은 병고에 시달린 조지훈은 4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승무(僧舞)'와 '낙화' '절정' '고풍의상' 등 교과서에도 소개된 명시를 남긴 그가 일찍 세상을 뜬 것은 한국 문학계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시 '병에게'는 그가 병마에 시달리며 쓴 시답게 인생과 죽음에 대한 달관이 담겨 있다. 병을 '자네'라고 호칭하며 친한 친구 대하듯하고 있다. 그에게 병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삶의 일부이고 휴식을 권하는 친구다. 동서양 어디에 이렇게 병마를 원망하지 않고 따뜻하게 받아들인 시를 쓴 시인이 또 있을까. 오랜 시간 질병을 달고 산 시인만이 인생을 관조하면서 남길 수 있는 절창이다.

조지훈은 20대에 조선어학회 '큰사전' 편찬에 참여하다가 일본 경찰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다. 4·19혁명 때는 교수 시국선언을 주도해 이승만 하야를 이끌었다. 5·16 후 박정희가 독재의 길로 접어들자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입각 제의도 거절했다. 이 같은 그의 지사적인 삶은 가족사와도 연관이 있다. 그는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후손이다. 독립운동가인 선친 조헌영(趙憲泳)은 광복 후 제헌 국회의원으로 헌법기초위・반민특위 위원으로 활동하다 6·25 때 납북된다. 조지훈이 선비의 품격과 기개가 살아있는 명수필 '지조론'을 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겨울철로 접어들면서 독감마저 유행할 것으로 보여 '트윈 팬데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좋든 싫든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시인 조지훈이 그랬듯이, 우리도 바이러스를 귀찮거나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친구처럼 동반자로 여기고 살아가는 지혜와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박상수 주필 sspark@jnilbo.com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