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유순남> 인생은 시간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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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유순남> 인생은 시간을 타고 흐른다
유순남 수필가
  • 입력 : 2020. 10.21(수) 14:25
  • 편집에디터
유순남 수필가
뜨거운 태양아래서도 푸름을 더해가던 풀잎이 가을 햇살에 시들어간다. 자기의 시간이 다했기 때문이다. 신은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에게 시간을 주었다.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으며, 값으로 계산할 수도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무상으로 주었다. 하지만 한정된 시간을 주었기 때문에 생명이 있는 것은 그 무엇이든 언젠가는 죽게 된다. 바람이 쉬지 않고 흐르듯 시간도 거침없이 흐르기에 길든 짧든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하면 이 세상을 떠나야만 한다. 그래서 시간은 물이나 공기보다 더 소중하고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이다.

인생은 시간 채움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쉼 없이 흐르는 시간에 무엇인가로 채우는 일이다. 무수히 많은 점들이 모여서 선을 만들고 그 선들을 모아서 도형을 만들 듯, 인생도 순간순간의 시간이 모여서 추억을 만들고, 그 추억들이 쌓여서 인생이 된다. 초봄 마른풀이 뒤덮인 산속에 '얼음새꽃'이라고도 불리는 복수초가 피기 시작하면 호흡이 멈춘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처럼 온갖 꽃들이 피어난다. 꽃들은 뜨거운 태양과 태풍 홍수 같은 고초를 견뎌내고 알찬 열매를 맺는다. 인생 또한 그 인내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꽃이 지는 이유를 알게 될 즈음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해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인생길이 시간을 밟고 가는 일이듯 이 세상 모든 일도 시간을 밟고 간다. 시간의 투자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세상을 아는 일도 사람을 아는 일도 모두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속도를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짧은 시간에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극히 한정된 사람의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 시간에 관계없이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사물이나 가치관 그리고 진리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예전에 선진국으로 우러러보았던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 등은 이미 선진국이 아니고, 후진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서있다.

시간은 치유의 마술사다. 시간만큼 몸과 마음의 상처를 낫게 해주는 명약도 없을 것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도저히 아물지 않을 듯 아프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던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상처가 아물고 슬픔도 엷어진다. 그렇다고 치유를 기다리며 마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슬픔에 빠져 허송세월하다 보면 주어진 시간이 다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간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음식이 가장 맛있게 익을 시간이 있고, 자연이나 사람에게도 가장 아름다울 때가 있듯, 일에 있어서도 가장 적당한 시점에서 그 일을 해야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다. 사랑이나 이별도 마찬가지다. 타이밍이 애석한 사건 중에는 독립운동을 하던 두 시인 윤동주와 이육사의 마지막시간이 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시간은 그렇게 갈망하던 해방을 몇 달 앞둔 1945년 2월과 3월에 멈추고 말았다.

그렇다고 인간에게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과연 좋을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리고 이 세상과도 이별하지 않아도 되니 좋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재앙은 없을 것이다. 살아가는데 긴장감이 떨어지고 나태해지며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자살 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다. 또 젊은이들은 나이든 사람 때문에 사는 것이 불편해질 것이고, 인구가 기하급수 적으로 늘어나 지구상의 전 인류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인생길에는 정류장이 없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쉼 없이 인생의 시간을 타고 달려야만 한다. 주어진 시간동안 부딪히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을 헤쳐 나가다가 결국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르고 말 것이다. 그러기에 각자의 시간이 다하는 날까지 재능이 있으면 나누고 봉사도 하면서,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고 싶은 일, 가보고 싶은 곳, 즐기고 싶은 일이 있으면 기꺼이 즐겨야할 할 같다. 한번뿐인 인생이니까!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