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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 콘텐츠 디렉터 김홍탁의 '인사이트'>우리 사회는 거울인가, 만화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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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 콘텐츠 디렉터 김홍탁의 '인사이트'>우리 사회는 거울인가, 만화경인가?

영화 테넷은 감독 한 사람의 역량이 아니라 감독이 몸담은 풍토에서 탄생했다.
화성이 누구에겐 행성일 뿐이지만, 누구에겐 미래의 주거지일 수 있다.
현실을 반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당겨 보는 것도 중요하다

게재 2020-09-21 18:24:19
김홍탁 cco
김홍탁 cco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이 드디어 개봉됐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실내외 활동이 제한됐음에도 불구하고 첫날부터 성적이 꽤 좋았던 모양이다. 나 역시 개봉일에 테넷을 관람했다. 놀란의 열혈팬으로서 그의 작품에 대한 예의를 표했다.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선 개봉 다음날부터 영화소개 유튜브가 쏟아지고 있으니 참조하면 될 듯 하다.

 테넷은 인셉션, 인터스텔라에 이은 과학 지식을 대중적으로 다룬 놀란 영화 삼부작의 완결판이라 부르고 싶다. 또 다른 형태의 고난도 지식 영화가 놀란에게서 나오지 않는 한, 일단은 삼부작의 느낌으로 마무리 된다. 심리학의 인셉션, 천체 물리학의 인터스텔라를 거쳐 테넷에서는 양자물리학과 엔트로피를 건드린다. 전공학자들 조차 그 누구도 마스터링한 사람이 없다고 전해지는 그 양자역학을 말이다.

 내가 관심 갖는 부분은 어려운 과학지식을 영화와 같은 콘텐츠를 통해 대중화시키는 저력이다. 2010년 인셉션이 개봉됐을 때 나는 인간의 꿈을 다루는데 그렇게 심오하고 플롯이 복잡한, 그러나 호기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영화는 다시 나올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내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디뎠던 사건에 버금가는 혁명이었다. 2014년 인터스텔라가 개봉됐을 때도 놀라움은 계속됐다. 물리학계에서나 통용되던 웜홀 이론이 영화를 통해 대중화됐고, 그 이론을 발표한 킵 손(Kip Steven Thorne)은 영화 제작에도 깊이 관여했다. 2020년의 테넷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 스스로 N차 관람을 자처하며 테넷에 달라붙어 해석하려고 안달한다. 이 세상 사람은 테넷을 이해한 사람과 이해하지 못한 사람으로 분류된다는 농담도 돈다. 1922년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가 발간됐을 당시 분위기가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질문을 해 본다. 과연 우리 나라에서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과 같은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감독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역량 문제다. 놀란에게도 놀라지만, 고급지식을 대중의 입맛에 맞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풍토에 나는 더 놀란다.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같은 영화는 어느 날 한 명의 천재가 척 나타나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테넷의 탄생은 양자역학, 엔트로피 따위의 어려운 주제를 깊게 동시에 대중적으로 다루는 환경이 넓게 퍼져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듯 역사에 남을 SF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생산되기에 암암리에 우리는 '미국은 역시!'라는 질투 섞인 부러움을 갖게 된다. 우리가 ET로 표현되는 외계인이란 단어를 처음 알게된 것이 1982년 스필버그의 영화 ET를 통해서였다. 외계지적생명체를 찾는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의 연구와 모험을 알게해준 것은 1997년 영화 콘택트였다. AI가 뭔지도 모를 때(지금도 뭔지 잘 모르지만…) 스필버그의 영화 AI가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 2001년이었다. 근 미래 인간의 화성 거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엔 화성에 남겨진 인간이 감자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남는 스토리를 다룬 영화 마션이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영화의 탄생이 가능했던 것은 칼 세이건, 스티븐 호킹, 킵손과 같은 과학자의 대중 강연과 코스모스, 시간의 역사, 시공간의 미래 같은 저작을 통해 과학담론이 대중화될 수 있어서 였다. 또한 나사(NASA)나 민간회사 스페이스 X의 우주탐사 계획이 실행되면서 과학담론 대중화의 시류를 만들어간 것도 큰 몫을 한다. 한 마디로 미래를 다루는 대중 담론이 폭넓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과학은 미래를 다루는 학문이다. 달에 인간을 보내고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것은 공간의 미래다. 놀란의 영화는 우리에게 생각의 미래를 경험하게 한다. 적어도 미국은 국민의 마음 속에 '미래는 우리 것이다'를 심어주는 나라다. 그에 비해, 고백하고 싶진 않지만, 우리의 365일은 정치인의 비리만 들먹이는 뉴스에, 연예인의 필살기로 연명하는 예능에, 조폭과 좀비가 난무하는 영화에 함몰돼 있다. 그러한 모습이 비춰진 거울에 머물다 테넷을 보니 어릴적 만화경 속의 환상의 세상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았다. 마치 미래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오래 전 미국이 엄청난 돈과 인력을 쏟아 부어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것은 미국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국가로 각인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 꿈을 현실로 만드는 과학자, 자본가, 미디어 콘텐츠, 그리고 정부가 쏟는 열정과 그들이 이끄는 크로스오버의 협력이 사실 놀랍다. 자본력, 선진 시스템의 역사, 모험정신의 유산, 엘리트 층의 견고함에서 대한민국을 미국과 비교한다는 것은 사실 무모한 일이긴 하다. '우리도 할 수 있어!'라고 다짐하는 것은 어쩌면 자기 위안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과거와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도 필요하지만, 미래의 현상과 판타지를 비추는 만화경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미국 역시 트럼프같은 몰상식한 대통령과 타락한 정치인의 가십이 넘쳐난다. 게다가 바이러스로 곤욕을 치르며 G2 국가로서의 체면도 구겨졌다. 하지만 어느날 눈 떠 보면 태양 탐사선 파커(Parker)가 발사돼 태양을 향해 가고 있다거나 스페이스X의 첫 민간 유인 우주선 크루 드래곤(Crew Dragon)을 쏘아 올렸다는 뉴스를 접한다. 그들에겐 화성에 인간을 이주시킬 계획이 있고, 이미 화성탐사선에 몸을 실을 민간인 선발을 마쳤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이 지구에서 아웅다웅할 때 미국은 지구밖 행성을 소유하겠다는 당찬 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래는 모험과 도전의 동의어다. 새로운 세상은 도전하고 모험하는 민족과 국가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의 일상은 거울형인가 만화경형인가?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도 이제 지겨울 때가 됐다.

#테넷_놀란이선사한또한번의놀라움

#미래는모험과도전의동의어 #거울에서만화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