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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에세이·최성주> 알제리-프랑스 관계, 한·일 양국 교훈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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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에세이·최성주> 알제리-프랑스 관계, 한·일 양국 교훈 삼아야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게재 2020-08-10 13:15:05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우리가 사는 이 지구상에는 크고 작은 많은 국가들이 공존하고 있다. 유엔 회원국만 해도 193개국에 달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리적으로 이웃한 나라들은 지난 세월 우여곡절을 겪은 탓에 상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과 일본, 인도와 파키스탄, 알제리와 모로코, 이란과 이라크 등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연합국(영국과 프랑스)과 전범국(독일)은 전쟁이 끝난 후에는 대표적 지역협력기구인 유럽연합(EU)을 설립하여 궁극적인 통합을 지향하고 있으니 다행스러운 경우다.

프랑스-알제리 관계는 프랑스가 알제리에 진출한 1830년부터 시작된다. 1차 산업혁명을 시작한 유럽 열강들은 상품수출과 원료획득을 위해 해외시장을 찾아 나서는데, 이것이 곧 제국주의의 시작이다. 프랑스는 영국 및 독일 등과 함께 해외진출 경쟁을 벌인다. 아프리카 대륙의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세네갈, 코트디브와르 및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 진출하여 이들을 식민 지배한다. 프랑스의 알제리 지배는 총독을 통해 간접 통치한 모로코 및 튀니지의 경우와 달리, 중앙정부에서 알제리 주요 지역에 주지사 3명을 파견하여 직할 통치했다. 그 정도로 프랑스는 자원과 물산이 풍부한 알제리를 중시한 거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본격적으로 경영하기 시작한 것은 1870년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소위 '보불 전쟁') 결과, 나폴레옹 3세가 프러시아에 항복하면서다. 당시 프랑스는 패전의 대가로 동부지역의 알사스, 로렌 지역을 프러시아에 할양하기로 한다. 그러자, 수십만 명의 이 지역주민들은 "프러시아 치하에서는 결코 살 수 없다"면서 강하게 반발한다. 이에 따라, 프랑스 정부는 이들이 지중해를 건너 알제리라는 '신천지'로 이주할 것을 종용한다. "남쪽에 있는 '큰 호수(지중해를 의미)'를 건너면 또 다른 프랑스가 여러분들을 기다린다"면서... 그 결과, 프랑스인들의 대규모 알제리 이주가 이루어진다.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까뮈'의 할아버지도 이 행렬을 따라 알제리로 향하여 튀니지와 접경한 알제리 동부지역에 정착한다. 그래서, 까뮈의 출생지도 알제리다. 이들은 '알제리 원주민(불어로 'pied noir')'으로 불린다.

프랑스는 제1,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베트남 독립전쟁 당시, 알제리 청년들을 징집하여 유럽과 베트남의 전장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30년 이래 알제리는 프랑스를 위한 곡물, 과일, 야채는 물론, 포도주의 공급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바 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프랑스는 알제리에 독립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에 알제리인들은 1954년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선포한다. 1962년 중반까지 계속된 독립전쟁(혹은, 알제리 혁명)으로 프랑스에서는 제4공화국이 무너지고, 드골 장군이 지휘하는 제5공화국이 들어선다. 알제리 독립전쟁은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식민지배를 받던 많은 나라의 독립투쟁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 당시 알제리는 인도네시아, 인도, 유고와 함께 초기 비동맹운동의 맹주였다. 7년여의 전쟁으로 수백만 명이 희생된 끝에, 알제리는 마침내 1962년 11월 1일 독립을 달성한다. 프랑스는 1960년대 중반까지도 사하라 사막에서 대기권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알제리인들을 더욱 분노케 한다. 알제리인들을 대상으로 핵실험 영향조사까지 자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선포한 알제리 인민해방전선(FLN)을 지원한 국가는 서방 진영(미국이나 영국)이 아니고, 소련 및 중공, 북한, 쿠바 등 공산권이다. 알제리가 독립 이후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하면서 북한과 상당 기간 가깝게 지내게 된 배경이다.

2017년에 취임한 마크롱 대통령은 "식민주의가 중대한 과오였다"고 언급하는 등 과거사 청산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알제리 정부는 프랑스의 공식적인 사죄를 요구 중이다. 알제리 주재 대사로 근무할 당시, 필자는 알제리와 한국이 과거에 외세지배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환기하곤 했다. 알제리인들은 이에 즉각 공감하면서, 1945년 해방 이후 단기간에 경제발전과 정치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표시했다. 일본의 한국 지배가 35년간이라면, 프랑스의 알제리 지배는 130년이 넘는다. 이러다 보니, 혼인과 상속, 재산분할 등 제반 측면에서 알제리-프랑스 관계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알제리의 국어는 아랍어지만,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알제리 정부와의 외교교섭은 불어로 이루어진다. 또한, 상당수의 알제리인들은 아랍어보다도 불어를 더 유창하게 말하는 실정이다. 정리하자면, 증오와 원한의 골이 한-일 관계를 여전히 좌우하는 데 반해, 프랑스-알제리 관계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애증(愛憎)의 감정이 교차한다. 최악의 한-일 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알제리-프랑스 관계사도 들여다볼 일이다. 일본과의 관계를 지금처럼 내팽개치는 건 무책임하다. 한국과 일본은 기본가치(value)를 공유하는 우방국임을 잊지 말자. 과거를 기억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하기 바란다. 비전과 철학, 전략과 용기를 갖고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가길 기대한다. 올해가 광복 75주년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