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는 반제반미 공산혁명 동지다. 체 게바라는 멕시코에서 망명 중이던 피델 카스트로를 1955년 7월에 만난다. 그 이후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주도해 2인자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볼리비아로 무대를 옮겨 반정부 게릴라 투쟁을 계속하다가 정부군에게 붙잡혀 총살당한다. 하바나 시내의 혁명광장에는 그를 기리는 대형 초상물이 설치돼 있다. 쿠바를 둘러싸고 자칫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뻔했다. 바로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다. 카스트로는 대학 시절에 독학한 마르크스 이념을 토대로 1959년 부패한 바티스타 정권을 뒤엎는다. 미국은 쿠바에 대한 직접 침공과 암살 및 파괴공작을 시도한다. 위협을 느낀 카스트로는 소련에 도움을 요청하며 소련은 핵탄두가 장착된 중거리미사일 42기를 쿠바에 배치한다. 이에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미사일을 소련으로 가져가라고 흐루시초프 총서기에게 최후통첩을 보낸다. 동시에 미국 국민에게 국가적 위기상황을 솔직히 설명하면서 거국적 협조를 요청한다. 마침내 흐루시초프는 미사일을 쿠바로부터 철수할 것을 결정한다. 노회한 흐루시초프의 공갈과 협박을 정면으로 받아친 젊은 케네디 대통령의 기개와 용기가 승리한 거다.
헤밍웨이는 쿠바를 사랑한 미국의 소설가다. 그의 명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노인과 바다'도 쿠바에서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바나의 구도심에는 그가 7년간 장기 투숙한 '암보스 문도스 호텔(Hotel Ambos Mundos)'이 있는데 필자도 그 방을 구경한 적이 있다. 당시 헤밍웨이는 카스트로와 수시로 만났다고 한다. 카스트로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하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읽고 비정규전의 요령을 터득했다. 영혼이 자유로운 소설가와 반미반제 사상으로 무장한 공산혁명가가 가까이 지낸 거다. '피델 카스트로가 가장 좋아한 양키'라는 헤밍웨이의 사진은 하바나 시내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다. 혁명복 차림의 카스트로가 헤밍웨이와 악수하는 사진도 흔히 보인다. 쿠바는 튼튼한 의료체계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학 기술수준도 상당하다. 세계은행 통계에 의하면, 2018년 기준으로 쿠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84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이다. 물론, 박봉에 시달리는 일부 의사들은 외국행을 바란다고 한다. 쿠바를 찾는 최대 관광객은 미국인이다. 카스트로 공산정권을 피해 쿠바를 떠난 많은 사람들이 플로리다에 살고 있다. 2014년 피델 카스트로가 사망한 후 등장한 신지도부는 상대적으로 실용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미국과 쿠바는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고 2015년 7월 양국의 이익 대표부를 정식 대사관으로 격상했다. 그런데, 2017년 초에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쿠바를 테러 비협조국으로 낙인찍는 등 강경조치를 취함에 따라, 양국 관계가 악화 일로에 있다.
북한은 쿠바에 대해 혁명적 동지애를 강조하면서 한국과 외교관계 수립을 집요하게 방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다 보니, 쿠바는 한국이 아직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못한 극소수의 국가에 속한다. 물론 쿠바인들도 한국의 발전상과 우리 상품의 우수성은 잘 알고 있다. 필자는 2005년 쿠바 출장 계기에 외교부 담당국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이 쿠바 인권문제에 대해 소위 '이중기준'을 적용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그때 필자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극복하기 어려운 엄청난 괴리를 실감했다. 이는 바로 국가의 건전한 운영, 즉 거버넌스(Governance) 차원의 문제로 바로 연결된다. 남북한 간에도 상반되는 이념과 제도에 따른 격차가 존재한다. 이런 점을 향후 북한을 상대할 때 유념해야 한다. 공허한 평화지상주의와 희망고문에 기초한 대북 접근은 결과적으로 큰 낭패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 훼손 등 심각한 부작용도 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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