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적십자병원을 항일독립기념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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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옛 적십자병원을 항일독립기념관으로"
항일독립운동 중심… 기념 공간·관련 연구 전무||역사 교사 모임, "항일 정신 함양 공간으로 활용"
  • 입력 : 2020. 06.03(수) 17:06
  • 양가람 기자
광주 동구 불로동에 위치한 옛 적십자병원.
광주 동구 불로동에 있는 옛 적십자병원을 '항일독립운동기념관'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나왔다.

광주 지역 역사 교사 30여 명으로 구성된 빛고을역사교사모임(교사모임)은 지난 달 '옛 적십자병원을 광주항일독립운동기념관으로 조성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이용섭 광주시장에게 전달했다. 옛 적십자병원이 가진 독립과 민주의 가치를 살리고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 광주에 항일독립운동 기릴 공간 전무

교사모임은 광주가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지임을 강조했다.

광주·전남은 한말 최대 의병항쟁지였다. 1909년 전국 의병의 60%가 광주·전남 출신이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엔 광주천변 장터에 1000여 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로부터 10년 뒤 발발한 광주학생항일운동은 국내외로 확대됐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다 옥살이 한 사람들 중에도 광주·전남 출신이 많았다. 지난해 국가보훈처는 일제 하 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 5323명 가운데 광주·전남 출신이 1985명이라고 발표했다. 37.3%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하지만 광주 지역 항일독립운동의 흐름을 이해할 공간은 전무하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소 소장은 "항일운동의 흐름을 살펴보면 우리 지역 사람들의 DNA 속 '정의로움'의 농도가 타 지역보다 높다는 걸 알 수 있다"며 "하지만 현실은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지라는 사실이 무색해질 정도로 안타깝다"고 했다.

밀양의 독립운동기념관은 광주로서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노성태 소장은 "인구 10만의 밀양에도 항일독립운동기념관과 의열기념관 2개가 있는데, 인구 145만의 광주에는 항일운동 관련 시설이 하나도 없다"고 지적했다.

밀양 외에도 항일독립운동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천안의 독립기념관과 안동에 있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광주에도 광주학생독립운동역사관이 있기는 하지만, 광주의 항일운동의 전반적인 흐름을 담고 있지는 못하다.



노성태 소장은 지역 항일독립운동사에 대한 무관심을 이유로 꼽았다.

노성태 소장은 "그동안 광주 항일운동사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광주·전남의 3·1운동'에 관한 논문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 처음 발표됐을 정도"라고 했다.

역사 교사들이 항일독립운동 기념관을 조성해 교육 공간으로 활용하고, 관련 연구도 조속히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성태 소장은 "광주가 항일독립운동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말 의병부터 3·1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그리고 5·18민주화운동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광주정신을 기리는 장소가 필요하다"며 "'독립'과 '민주'에 대한 자긍심을 학생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 항일독립운동의 혼 서린 옛 적십자병원

역사교사들은 옛 적십자병원이 가진 '항일독립운동의 상징성'에 주목한다.

1909년 기삼연 의병장이 처형 당했던 광주천 서천교 밑 백사장과 일제 하 농민·노동·사회운동으로 광주 독립운동의 산실이 된 '흥학관'이 옛 적십자병원의 지근거리에 있다.

옛 적십자병원이 측량학교 건물이던 1917년에는 정상호, 최한영 등 젊은 지식인들이 '신문잡지 종람소'라는 간판을 걸고 독립운동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옛 적십자병원 터는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학생들의 행진 노선이기도 했다.

교사들은 옛 적십자병원의 역사적 보존을 주장하고 있다. 응급실 등 역사적 현장은 그대로 존치시키되, 남는 공간에 기념관을 세워 학생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자는 안이다. 동시에 항일독립운동사 연구할 수 있는 도서관, 관련 단체 등을 입주시켜 독립정신 함양의 중심 시설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성태 소장은 "각각의 역사적 사건은 서로 연결돼 있고, 역사의 큰 맥락 속에서 들여다 봐야 한다"며 "광주 정신의 뿌리인 항일 정신을 살피고, 해당 정신이 5·18민주화운동으로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옛 적십자병원은 다의적 가치를 지닌 광주정신의 주요 상징터다. 기념관 활용이 결정되면, 세부적인 내용은 시민들의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노성태 소장은 "역사 교사의 입장에서는 연구부터 전시, 교육까지 총체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사적지 제11호로 지정된 옛 적십자병원은 5·18 당시 부상 당한 시민들을 치료하던 곳이다.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팔을 걷었던 대동정신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5·18 단체들은 옛 적십자병원의 민간매각을 반대하며 원형보존을 주장하고 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