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3>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3>
애증의 화학작용, 독자적 예술로 승화||프리다, 디에고와 굴곡진 관계 속 깊은 자아 탐구 ||오키프, 결혼 직후 확대된 꽃 그려 작가로서 입지 ||추상표현주의 대가 폴록 아내 크래스너 차별화 노력
  • 입력 : 2020. 05.10(일) 15:50
  • 편집에디터

프리다 칼로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 1931,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책 발췌

"부부는 뭐였을까? 함께 한 시간들은 뭐였으며 그토록 서로를 잔인하게 몰아붙인 건 뭐였을까?"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게 복수한 후의 지선우(김희애 분) 내레이션이다. '부부의 세계' 드라마의 인기가 뜨겁다. 불륜이라는 식상한 소재로 위선과 질투, 분노, 불안, 애증 등 부부 밑바닥 실체를 심리극처럼 파헤치고 있어서다.

과연 부부는 무엇일까?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의 '합류적 사랑'처럼 남녀 간 감정이 '기부 앤 테이크'가 되어야 하는데 사랑은 비대칭적이다. 논리적이지도 않다. 모든 인간관계 간 갈등도 애정의 질량이 동일하지 못한 데서 출발하는 건 아닐까?

지지고 볶는 일상적 부부 뿐 아니라 '예술가 부부의 세계' 또한 지선우(김희애 분)의 말마따나 '판돈 떨어졌다고 털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듯' 저마다 방식으로 사랑하고 갈등하며 때론 배신으로 점철된 복합적인 심리를 예술로 발현하고 있다.

멕시코 출신 프리다 칼로(Frida Kahlo)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는 대표적인 예술가 부부이다. "일생 동안 두 가지 큰 사고를 겪었는데 첫 번째는 18세 때 전차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와의 만남이었다"고 프리다가 술회하듯, 1920년대 후반 공산당 활동 중에 만난 디에고는 그녀의 삶에 화석과도 같은 단단하고 깊은 흔적을 남겼다.

혁명의 시각 도구로서 벽화 작업을 하던 42세 디에고와 22세 프리다는 1929년 부부가 된다. 디에고에게는 세 번째 결혼이었다. 하지만 디에고의 여성 편력은 지속됐으며 급기야 처제와 애정 행각을 벌인다. 배신과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둘은 10년 차에 이혼하지만 이듬해 재결합한다. 그리고 프리다가 세상을 떠나기 까지 10여 년을 함께한다.

30여 차례 생사를 오가는 대수술을 했던 프리다의 일생에는 죽음이란 그림자가 늘 드리웠다. 거동이 불편해 침대에 종일 누워있었던 그녀는 '자기 앞의 생'을 극복하고자 했다. 내면을 응시하는 붓질을 멈추지 않았다. 200여 점의 작품에 자화상이 유독 많은 이유다.

이중 결혼을 기념하고자 그린 '프리다와 디에고 리베라'(1931) 작품에는 손을 꼭 붙잡은 화기애애한 부부의 모습이 담겼다. 절제된 미소에서 행복이 묻어난다. 반면 '디에고와 나'(1949)는 이혼과 재결합 이후의 실타래처럼 복잡 미묘한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준다.

미국 화단의 여성작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와 모더니즘 사진을 이끌었던 알프레드 스티클리츠(Alfred Steieglitz)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이다. 50대 거장과 시골에서 올라온 20대 무명화가와의 조우였다. 당시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소유인 291갤러리에서 유럽화가들을 소개하는 등 뉴욕 미술계의 최전선에 있었다. 1917년 스티글리츠는 291갤러리에서 오키프의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때부터 스티클리츠는 오키프의 물성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서른 살 때의 일이다. 7년 뒤 스티클리츠는 순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오키프와 정식 부부가 된다. 결혼 직후 오키프는 관능적이면서 직관적인 형상의 확대된 꽃으로 독창적인 작업을 구축하게 된다. 이후 남편과의 갈등 속에서 뉴멕시코의 광활한 풍경적인 요소와 결합해 변화를 꾀한다. 작가적 긴장과 별거 등으로 신경쇠약을 겪기도 했다. 스티클리츠가 82세로 타계하기까지 30여 년이란 세월을 함께 했다. 1949년부터 60대 초반의 오키프는 뉴멕시코에 아예 정착해 40여 년 동안 창작에 열중하며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서 더욱 입지를 굳히게 된다.

미국 추상 표현주의 대가 잭슨 플록(Jackson Pollock) 뒤에는 리 크래스너(Lee Krasner) 라는 화가 부인이 있었다. 둘은 1945년 결혼해 폴록이 교통사고로 44세에 죽을 때 까지 10여 년 동안 부부였다. 두 사람에겐 유일한 결혼이었다. 그리고 크래스너는 30년 간 홀로 살았다. 헛간을 개조해 작업실로 꾸민 폴록이 그곳에서 전면구성(all-over) 기법을 개발하고 대표작들을 배출할 때 크래스너는 작은 침실에서 묵묵히 작업했다. 남편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성별을 떠나 대등한 원칙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신념은 변치 않았다.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했던 초현실주의 부부도 유명하다. 프로타주와 그라타주 등의 기법을 고안한 막스 에른스트(Max Ernst)와 도로시아 태닝(Dorothea Tanning)은 초현실주의를 이끌었다. 에른스트는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Marguerite Guggenheim)과 전쟁 중에 미국으로 건너가 1942년 결혼한다. 하지만 2년도 안되어 헤어지고 1946년 태닝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 뉴욕에서 태닝의 작품에 감동 받은 에른스트가 작가를 찾아가면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에 앞서 에른스트는 26세 어린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과도 한땐 연인 사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 에른스트가 기혼자였기 때문에 도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대전의 시대적 혼란 속에서 독일 출신 에른스트가 쫓기게 되면서 불가항력적이면서 불온한 사랑은 결말을 맺게 된다. 이로 인해 신경쇠약으로 레오노라는 황폐해져갔지만 초현실주의의 대표적인 여성작가로 태닝과 함께 꼽히고 있다.

20세기 초 변화와 개혁 분위기로 들썩거리던 파리에서 입체주의의 한복판에 있었던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와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ey) 동갑내기 부부는 상호보완성을 잘 보여준다. 소니아는 남편이 작업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장식미술부터 패션까지 상업적인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모던스타일을 선보였다. 아내의 든든한 지원 덕에 가장으로서 경제적 부양에 자유로웠던 로베르는 오르피즘(Orphism)을 창시하는 성과를 냈다. 1910년 결혼 후 로베르가 타계하기까지 30여 년 간 부부의 연을 이어갔으며, 남편 사후 작품 체계를 세우는 데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생의 트라우마를 자화상으로 승화했던 프리다. 남편의 후광에서 벗어나고자 자아실현에 더욱 몰두했던 오키프, 아내의 의무와 예술가의 소신을 융화시켰던 크래스너와 소니아 등….

과민한 예술가 간 결합은 개인사적으론 굴곡이 많을 테지만 예술적으론 뜨거운 영감의 분화구이자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 촉진제가 되기도 한다. 그 덕에 우리는 작가의 내밀한 화학적 반응이 스며든 작품과 만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프리다 칼로 '디에고와 나' 1949.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책 발췌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