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현란한 네온사인과 각종 광고는 소유 욕구를 부추긴다. 스타들의 화려한 일거수일투족이 담긴 이미지들도 연일 쏟아져 나온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기호에 의해 소비가 강요되는 자본주의 시대 허상을 말했듯이, 우리는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가상과 실재의 경계가 모호한 현실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소비하며 살아간다. 최근에는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온라인 다매체를 유영하며 소비사회는 더욱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미래에는 누구나 14분 안에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팝아트 대명사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도래를 일찌감치 예감한 듯하다. 이젠 유명인 뿐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의 먹고 구입하고 즐기는 일상들이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가 되어 소셜 네트워크에서 신속하게 공유되어지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 문화적 시각 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에 끌어들인 팝아트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성행했다. 앤디 워홀이 전성기를 누리던 1960년대 미국은 경제적 호황과 맞물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등 대중음악과 할리우드 영화 등 대중문화가 만개하던 호시절이었다. 이러한 소비사회의 흐름을 간파한 팝아티스트들은 대량생산된 산물들을 미술 전면에 내세운다. 햄버거, 스파게티, 변기, 립스틱 등 일상적 소재들이 캔버스에 등장하게 된다.
예술의 순수성과 주관성, 엘리트주의를 지향했던 모더니즘의 절정인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격으로 팝아트는 순수미술과 대중예술의 위계적 구분을 거부하며 예술의 산업화, 예술과 문화산업의 상호 침투를 시도해갔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클래스 올덴버그(Claes Thure Oldenburg),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 등 상업 작가로 활약했던 팝아티스트들은 민감하게 시대정신과 대중심리를 포착할 수 있었다.
앤디 워홀은 1962년 실크스크린 기법을 도입하고 스타의 얼굴과 대량 생산품을 캔버스에 기계적으로 반복 배열했다. 코카콜라병,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캠벨 수프 깡통 등 단일한 형상을 격자형 구조로 반복 배치한 작품은 이미지 시대 익명성과 허구성의 반영이다. 20여 년 동안 캠벨 수프를 점심으로 먹었던 워홀은 산업에 지배된 현대인의 삶을 캠벨 수프로 은유한 것이다.
앤디 워홀은 추상표현주의가 추구해온 작가 만의 창조성과 개성의 허상을 거부했다. 그의 신념은 작품 제작 과정에서도 충실히 실행된다. 뉴욕 맨해튼에 자리한 작업실 '팩토리'에서 조수들을 고용해 공장에서 찍어내듯 작품을 제작했으며 때론 하루에 80여 개를 생산해내기도 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신문이나 잡지 등 저가 인쇄물의 연재만화에서 보여 지는 점을 확대해 표현했다. 이러한 원색 점을 '벤데이 점'이라 명명하고 단순하지만 역동적인 구성과 색감으로 그 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1962년 부드러운 조각품을 처음 선보인 클래스 올덴버그는 진부한 물건들을 고급문화의 영역으로 유입시킨다. 사물의 형태를 비닐로 만들고 스펀지로 속을 채운 '부드러운 화장실' 등의 작품은 유쾌하지만 날카로운 반전이 숨어있는 듯하다.
로스앤젤레스 팝아트의 리더 에드 루샤(Edward Ruscha)는 문자를 이미지처럼 활용하는데 '20세기 폭스' 등의 문구가 입체 블록처럼 구사되거나 액체처럼 흘려지는 등 그래픽 디자인과의 접목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팝아트는 대중문화의 이미지를 차용하면서 밝고 매끈한 색채,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 기계적인 질감으로 관람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1960년대 이후 대중과 괴리되었던 추상표현주의는 창조적 원동력을 잃고 퇴색해갔으며, 시각적으로 인지 가능한 구상적인 팝아트가 현대미술의 흐름을 점령해나가게 된다.
1964년 세제 상자와 똑같은 디자인을 나무로 만들어 전시한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본 미학자 아서 단토(Arthur C, Danto)는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다. 20세기 전반기를 추동해 온 추상적 속성을 지닌 모더니즘 미술의 결말을 감지한 것이다. 팝아트 작가들이 보여준 다양한 제작 방식과 일상적 소재의 도입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신호탄이 됐다. 이로써 일상과 예술이 액체처럼 뒤섞인 혼성적·다원적인 패러다임의 서막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