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온도는 저마다 다르다.
19세기 과학적 합리성과 진보, 이성 중심의 차가웠던 모던 시대를 통과하고 1960년대는 사회적·정치적 열기로 뜨거웠다. 그 발화점은 파리였다. 1968년 5월 샤를르 드 골(Charles De Gaulle) 정부의 교육 제도에 반대해 수업을 거부하는 학생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는 노동자와 연대로 확산되었다. 프랑스 뿐 아니라 이탈리아, 독일, 미국 등 세계적으로 연결되었던 68혁명은 견고하게 지탱해온 기존 체제에 균열을 일으켰다. 베트남전 등 전쟁과 냉전에 대한 반발과 함께 그동안 주류였던 서구, 백인, 남성 중심의 담론에서 제 3세계, 여성, 성 소수자 등 주변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분출되었다. 사회변혁운동인 68혁명 이후 다양성으로 표상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한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1972년 레오 스타인버그(Leo Steinberg)가 포스트모더니즘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이래 199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한다. 현실과 괴리된 회화와 조각 위주 모더니즘 미술에서 대지미술, 설치, 개념미술 등 다양한 장르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순수성 명목으로 단절되었던 미술이 사회적 공간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이 시기 두각을 나타낸 분야가 페미니즘 미술이다. 1971년 미국의 여성 미술사가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이 '왜 우리에게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글에서 남성 이데올로기적인 지배 방식을 비판한 이래 여성 작가만의 어휘와 전략으로 페미니즘 미술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을 페미니즘 시각에서 응시한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1970년대 말부터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여성으로 분장한 자신의 초상을 찍으면서 남성 시선의 저변을 노골적으로 파헤친다. 영화 스틸처럼 연출된 사진 작품은 남성이 구축한 구조의 볼모로 여성을 스테레오타입화한 방식에 주목한다.
뉴욕 길거리 벽의 낙서화로 주목받은 장 미셀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는 흑인이었기에 겪었던 인종과 계층의 차별을 거칠고 투박한 회화로 담아냈다. 자화상을 비롯해서 뒤바뀐 단어와 문장, 의도적인 반복이 담긴 낙서화는 저항의 장치라 할 수 있다. "흑인들은 결코 실제로 묘사되지 않는다. 아니 모더니즘 미술에서는 아예 묘사되지도 않는데 그것은 참 좋은 일이다." 27세 나이로 요절하기 까지 바스키아는 그 만의 정체성이 담긴 작품으로 기성 미술계에 반격을 가했다.
금기시되던 동성애와 에이즈 등의 주제를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는 집요하게 탐구한다. 사진 속에 등장하는 남성 누드는 고전적인 형식미 속에서 에로틱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그의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은 1989년 워싱턴 D.C의 코코란 갤러리에서 전시가 취소되면서 예술의 검열 문제 등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우산 아래 타자들의 담론이 미술의 문맥 안에 유입되면서 사회·정치적 이슈와도 개입하고 결탁한 것이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복합, 혼성, 패러디, 모방, 차용, 복제 등의 문법을 구사한다.
세리 레빈(Sherrie Levine)은 미국 동남부 경제 불황의 실상을 기록한 워커 에번스(Walker Evans)의 사진을 차용하면서 작가적 독창성과 유일성이 지닌 권위를 전복시키는 데 성공했다. 미국 농부를 앵글에 담은 '워커 에번스를 따라서'는 포스트모더니즘 차용 전략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한 '저자의 죽음'처럼 모더니즘 신화인 작가가 창조한 원본의 가치가 파괴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치하, 동서 분단 등 독일 현대사를 온 몸으로 관통한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평범한 사진을 회화로 복제한 '사진 회화'라는 독창적인 기법을 개발했다. 1960년대 리히터는 풍경, 초상, 정물, 신문 및 잡지 스크랩 등 사진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캔버스 위에 프로젝터로 사진을 비춰 대상의 형태를 그린 사진 회화는 불확정적이며 경계가 모호하다. 이는 혼란한 시대상의 반영이다. "내게 정치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리히터의 발언과는 역설적이게도 추상과 구상, 사진과 회화가 혼재하는 그의 화폭 안에는 인류가 자행한 폭력의 역사 등이 잔상처럼 겹친다.
'포스트모던의 조건' 저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는 포스트모던의 특징으로 다원주의를 꼽는다. 모더니즘을 건설했던 거대 서사는 해체되고 다원화된 태도와 접근법의 촉수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사회 안에서 변화를 자극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아무데서나 영감을 얻으며 저 만의 이야기를 건넨다. 현대미술이 난해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이라는 두 축 안에서 감상과 해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세기를 풍미했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지나 1990년대 이후 동시대 미술은 정의 불가 상태이다. 더 이상 특정한 이즘과 사조로 묶을 수 없이 다극화됐다. 공통분모 없는 동시대 미술 안에서 작가들은 다층적인 어법으로 예술 여정을 지속하며 사회와 공진화 중이다.
지금 여기, 우리가 직립하고 있는 이 시대와 예술의 온도는 훗날 측정되고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