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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한정규> 자랑스러운 고향, 그 고향에 대한 자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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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한정규> 자랑스러운 고향, 그 고향에 대한 자부심

한정규-문학평론가

게재 2020-05-24 14:14:04

내 고향은 왕인박사와 도선국사가 태어났던 곳이자 한석봉이 어린 시절 공부를 했던 곳 전라남도 영암이다. 영암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줄 곧 학교를 다녔다. 학업을 마치고 공직생활을 시작 강진군과 영암군교육청(현 교육지원청) 그리고 전남도교육위원회(현 도교육청)에서 근무 1980년 4월 5일 환경부로 전출 1980년 5월 15일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 서울과 경기도지역에서 살게 됐다.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고 3일째 되던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광주를 떠나 수도권에서 40여년을 살고 있지만 필자가 태어나 육체는 물론 정신세계를 확장 해 준 영암과 광주를 잊을 수 없다.

전라남도 영암이 고향이라는 당당함, 어린 시절 광주에서 공부를 하며 몸에 차곡차곡 쌓은 정의감, 잘못된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한 의협심, 그 정신 변하지 않고 가슴 속에서 불화산처럼 끓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광주 전남사람이라 하지 않을까봐? 그런 말을 자주 들었다.

광주·전남은 멀리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후 국가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많다. 조선말기 일본 청나라 명나라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침략으로 국내외가 혼란해 빠졌을 때 특히 일본의 잦은 침략에 광주 전남지역에서 의병장 고경명과 김덕룡 장군을 비롯해 의병활동이 그 어느 지역 보다 많았다. 1909년 일본에 수차례 항쟁은 물론 1919년 3월 1일 광주천변에 수 천 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등 수시로 항쟁을 벌였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기차역에서 일본인 남학생이 한국인 여학생을 희롱하는 것을 본 한국인 남학생이 저지하자 일본인학생들이 반발 싸움이 벌어졌다. 그 사건을 일본인이 운영한 언론사가 왜곡 편파보도를 하고, 또 일본경찰이 한국인 학생만 부당하게 억압 수사를 하자 1929년 11월 3일 광주시내 중학생들이 중심이 돼 일으킨 것이 학생독립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이다.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11월 12일 광주지역 학생시위운동으로 확산 됐으며 호남지역 전역으로 더 나아가 서울 등 전국학생독립운동으로 확대됐다.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민족항쟁으로 전개됐다. 일제로부터 독립이 된 이후에도 광주시민은 불의를 보고 그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1960년 3월 15일 이승만정권이 저지른 부정선거에 항거 광주시민이 일으켰던 '곡哭 민주주의 장송'이 도화선이 돼 4·19혁명이 일어났다. 광주는 무등산정기를 받은 불의에 굴하지 않은 정의로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돌이켜 보면 4·19혁명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주춧돌이었다. 광주인은 우리나라 민주화를 위해 정부에 끝임 없이 맞서 싸우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79년 10월 26일 서울궁정동에서 박정희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사살 된 후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가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했다. 그 사건으로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끝이지를 않았다. 12월 12일 사태 주역 그들은 시위를 진압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5월 18일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했다. 그에 광주시민은 굴하지 않고 남녀노소 모두가 거리로 나와 공수부대와 맞서 싸웠다. 그것이 광주민주화운동이다. 그래서 광주를 우리민족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국가적 위기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광주시민들은 총칼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앞장섰다.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 때도, 4·19혁명 때도, 5·18광주민주화운동 때도 광주시민은 금남로와 충장로 또는 광주공원으로 나갔다. 까까머리 중고등학생들과 단발머리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져 독립을 외치고 민주주의를 외쳤다. 독재정권 물러가라, 신군부 물러가라고 외쳤다. 그런 곳이 광주다. 교육의 중심 광주는 교육을 통해 광주 전남 인에 정의를 가르쳤다. 그 교육을 바탕으로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데 앞장섰다. 그래서 광주를 정의에 굴하지 않는 정신이 숨 쉬는 고장, 정의로운 문화도시라 한다. 그것이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자 자랑이다. 그 문화 그 정신 이어가는 것은 광주시민 전남도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