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이야기> 보성 강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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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이야기> 보성 강골마을
이돈삼 / 여행전문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 입력 : 2020. 02.13(목) 16:23
  • 편집에디터

강골마을 안내도

깨나른한 일요일이다. 신종 코로나로 인한 분위기 탓일까. 평소보다도 몸이 더 처진다. 날씨도 퍽이나 누그럽다. 포실하게 내리는 눈을 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촐촐한 배를 채우고,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보성 강골이다. 강골은 고아하면서도 단화한 마을이다. 전통의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복잡하면서도 부산한 일상에서 벗어나 하늘거리기에 좋은 곳이다. 신종 코로나의 위협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어 더 좋다.

강골마을은 보성군 득량면에 속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식량을 많이 얻었다는 '득량(得糧)'이다. 마을은 950여 년 전, 양천 허씨가 들어오면서 형성됐다. 이후 광주 이씨 집성촌이 됐다. 지금은 30여 가구 40여 명이 구순히 살고 있다.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과 영화의 배경무대로 여러 차례 소개됐다.

마을에 옛집이 즐비하다. 이식래 고택, 이진래 고택, 이정래 고택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옛집의 이름은 다르지만, 뿌리는 하나다. 문화재 지정 당시 집주인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물수세미 가득한 연못을 앞에 두고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집이 이진래 고택(민속문화재 제159호)이다. 집이 크다. 솟을대문을 한 행랑채에다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안채, 사당을 갖추고 있다. 전형적인 양반집이다. 이진만이 1835년에 처음 지었다.

대문간채로 지어진 솟을대문이 압권이다. 걸음을 살그미 멈추게 한다. 사랑마당과 안마당도 넓다. 곳간채가 사랑채보다도 넓다. 사랑마당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부자였다.

대문이 굳게 잠겨 있다. 주인이 집을 잠시 비웠다.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깨금발을 하고 담장 너머로 내다본 기와집도 단아하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담장과 연결된 우물도 별나다. 마실 물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마을주민을 위해 이 집에서 공동우물로 내놓았다. 집안의 사랑마당과 바깥의 우물 사이 담장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우물가에서 나누는 아낙네들의 수다를 엿듣는 창구다. 마을사람들의 여론을 듣고, 해결책도 찾았다.

마을사람들은 이 구멍을 통해 대감집을 엿봤다. 소통창구였다. 우물의 이름을 '소리샘'이라 부르는 이유다.

이정래 고택(민속문화재 제157호)은 1900년 즈음에 지어졌다. 안채의 전망이 탁 트여 있다. 뒤뜰과 뒷마당을 따로 뒀다. 여인들의 생활을 보호하려는 세심한 배려다.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유물이 많다. 오봉청석유물관을 만들고 있다.

이식래 가옥(민속문화재 제160호)은 대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집안에 정원수가 없는 데도 아늑하다. 사람이 사는 집은 초가로, 농기구와 곡식을 보관하는 곳간에 기와를 올린 게 별나다. 장독대 문간에도 기와를 올리고 담장을 별도로 뒀다. 곡식을 쌓거나 말릴 마당과 곳간이 넓다. 곡식과 농자재, 그리고 음식을 중요하게 여겼다. 1891년에 지어졌다.

옛집을 둘러보고 마을의 고샅을 따라간다. 길이 조붓하다. 고샅을 따라 줄지은 흙돌담이 정겹다. 돌담엔 마른 이끼가 붙어 있다. 돌담 위엔 마삭줄이 널브러져 있다. 새싹이 돋아날 새봄과 가을에 한결 예쁘겠다.

탱자나무 울타리도 옛 추억을 소환한다. 탱자나무에 마삭줄이 얼기설기 둘러져 있다. 길을 걷는 사람이 가시에 찔릴까봐 걱정이라도 한 것 같다. 대나무, 홍가시나무 생울타리도 보인다. 집주인의 취향이 울타리에서도 묻어난다.

고샅이 돌담과 흙담, 생울타리의 전시장 같다. 오래 전 풍경이 여구히 남아 있다. 그 길을 따라 어르신이 유모차에 의지해 걷고 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귓전을 간질인다. 포르릉 하늘로 나는 새의 날갯짓도 귀엽다. 사각사각 일렁이는 대숲소리, 습습히 부는 바람에 몸을 흔드는 나무들의 속삭임도 상쾌하다. 박제되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이다. 마음 한켠에 똬리를 틀고 있던 근심이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강골은 득량면 오봉리에 속한 마을이다. 다섯 봉우리를 지닌 오봉산에서 연유한다.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강골'이다. '강동(江洞)'으로도 불렸다. 큰 느티나무 옆에 들어선 마을회관도 기와지붕을 얹고 있다. 전통마을답다.

마을 앞바다는 1930년대에 간척됐다. 뭍으로 변한 드넓은 농토를 마을의 안마당으로 삼고 있다. 득량벌이다. 맑은 날에는 들녘 너머 득량만의 푸른 파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고샅의 돌담 아래 양지에서 봄꽃이 피어나고 있다. 연한 파란색으로 살며시 얼굴을 내민 봄까치꽃이 화사하다. 보랏빛 꽃이 입술을 닮아 순형화(脣形花)로 불리는 광대나물꽃도 어여쁘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벌어져 있다.

하얀 애기별꽃도 앙증맞게 피었다. 물냉이꽃도 하얗게 웃음 짓고 있다. 봄의 한가운데서 피어나는 자운영꽃도 벌써 나왔다. 풍년초, 지칭개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강골마을이 품은 또 하나의 문화재를 찾아간다. 국가민속문화재 제162호로 지정돼 있는 열화정(悅話亭)이다. 열화정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서 있다.

열화정으로 가는 길도 지루할 틈이 없다. 조금은 좁은 길에서 대나무 숲과 탱자나무 울타리를 만난다. 서걱서걱 몸을 부대끼며 내는 대숲의 연주음이 감미롭다. 동백과 산다화도 길을 밝혀준다. 진녹색의 잎에 노란 반점이 찍힌 참식나무도 많다.

열화정은 돌계단이 끝나는 언덕배기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석의 높은 축대 위에서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연못 주변으로 담벼락도 올리지 않았다. 풍경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득량바다와 오봉산까지 다 담으려는 의도다. 차경(借景)이다.

정자 뒤편은 울창한 대숲이 둘러싸고 있다. 동백나무 고목 대여섯 그루도 붉은 꽃을 피웠다 떨어뜨리고 있다. 떨어진 꽃으로 연못을 온통 붉게 물들일 봄날이 멀지 않았다. 목련과 석류나무도 경물과 조화를 이뤄 빛이 난다.

열화정은 1845년 이진만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지었다. 공부방이다. 마을의 사랑방 역할도 했다. 한말 의병장 이관회, 이양래, 이웅래가 여기서 공부했다.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이 한때 숨어 지냈다는 말도 전해진다.

정원은 눈으로만 보는 전시장이 아니다. 신발을 벗고 누정에 올라앉는다. 별다른 시설이 없는 데도 아름다운 우리 원림의 멋을 한껏 누린다. 절로 상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이돈삼 / 여행전문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강골마을 고샅

강골마을 고샅

강골마을 고샅

강골마을 고샅

고택 앞의 연못

방치된 강골마을 이야기관

방치된 강골마을 이야기관

방치된 강골마을 이야기관

방치된 강골마을 이야기관

봄꽃-광대나물꽃

봄꽃-동백

봄꽃-봄까치꽃

봄꽃-애기별꽃

봄꽃-자운영꽃

소리샘의 창구를 통해 들여다 본 이진래 고택의 사랑마당

열화정-국가민속문화재 제162호

이식래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160호

이정래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157호

이진래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159호

이진래 고택의 소리샘

이진래 고택의 소리샘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