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 인구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취재수첩
선거구 획정, 인구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곽지혜 정치부 기자
  • 입력 : 2020. 02.03(월) 18:00
  • 곽지혜 기자
여야가 이달 안에 임시국회를 열겠다고 가닥을 잡았지만, 구체적인 일정과 처리 안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견을 모으지 못하는 모양새다. 이에 제21대 총선을 불과 두 달여 남겨 놓은 시점에서 선거구 획정은 난망을 거듭하고 있다.

사실 선거구 늑장 획정은 이번만이 아니다. 16대 총선에선 선거 65일 전에 선거구를 획정했고, 17대는 37일 전, 19대 총선에서는 44일 전에 선거구 획정을 마쳤다. 지난 20대 총선 역시 투표 42일 전에 선거구가 획정됐다.

예비후보들은 어디까지 선거운동을 해야할지, 유권자들은 어떤 후보자가 내 지역구에 나올지 가늠할 수 없는 깜깜이 선거가 매번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인구수를 기준으로 한 선거구 획정으로 광주·전남 선거구는 총선 때마다 바뀌고 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23곳(광주 6, 전남 17)에 달했던 선거구는 17대 20곳(광주 7, 전남 13), 19대 19곳(광주 8, 전남 11), 20대에는 18곳(광주 8, 전남 10)으로 감소했다.

계속해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전남지역에서는 3~4개의 행정단위가 묶인 '공룡 선거구'로 인한 고충이 크다.

현재 고흥·보성·장흥·강진 선거구의 경우 2594.49㎢로 광주 면적의 5배를 초과한다. 해남·완도·진도 역시 약 1867㎢로 전국 선거구 평균면적 393㎢의 4.75배다.

이렇게 광대한 선거구는 현역 의원은 물론, 선거운동을 위해 지역을 발로 뛰어야 하는 예비후보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곡소리가 나오는 조건이다.

21대 총선에서 고흥·보성·장흥·강진 선거구에 출마하는 한 예비후보는 "고속도로에서 차가 떠다닌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가끔 3곳 이상 지역에서 행사 일정이 겹치는 날이면 시간에 맞추기 위해 속도를 내지 않을 수가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수백개의 섬을 가진 영암·무안·신안 선거구의 당선자가 과연 임기 4년 동안 낙도를 단 한 번이라도 순회하고 마칠 수 있냐는 궁금증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공룡 선거구의 진정한 문제는 후보들이 선거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 한 명이 모든 지역을 제대로 챙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은 광주·전남뿐 아니라 농어촌 지역이 많고 불균형 성장이 심화되는 모든 비수도권 지역의 고민이며, 지역의 대표성과 지리적·행정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후보들의 됨됨이나 정책을 제대로 챙겨보기 어렵다면 투표 의욕 또한 높아질 리 만무하다. 정치적 무관심을 탓하기 이전에 유권자를 방치하는 선거구 획정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