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비 기자 |
지난 25일 광주 서구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평가 및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단체·기관이 보고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사 설계 미흡부터 진술 교차 검증 부재까지 여러 지적이 쏟아졌지만, 비판의 핵심은 ‘왜곡’이었다.
왜곡 사례 중 하나는 ‘무기고 피탈 시점’의 진상규명 불능 결정이다.
조사위는 나주서 반남·남평지서 등지의 무기고 피탈 시점이 ‘오전 9시50분’으로 기재된 치안본부 서류를 확인함에 따라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이는 계엄군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격이 됐다.
계엄군은 1980년 5월21일 도청 앞 발포에 대해 ‘시위대가 먼저 무기고를 습격, 무장해 자위권을 발동했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하지만 이는 이미 과거 법원 판결에서 ‘허위’로 판명된 사실이다. 2018년 광주고등법원의 전두환 회고록 제2차 출판금지가처분 결정문을 보면 전두환 회고록 속 ‘시위대가 먼저 계엄군을 공격해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격했다’는 표현은 ‘허위사실’이라고 적시돼 있다.
권용운 일병 사망 사건 역시 과거 광주고등법원 판결에 의해 ‘계엄군 장갑차 후진으로 인한 역과형 사망’임이 명확히 밝혀졌음에도 조사위는 ‘시위대 장갑차에 치여 사망했다’는 주장을 여과 없이 기재했다.
2800여명에 달하는 계엄군 진술 역시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가치판단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피해자 중심 주의가 결여된 보고서라는 평도 나왔다.
이에 군·경 피해에 대한 보고서 등 일부는 ‘폐기 또는 비공개’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통보’식의 조사 결과 발표에 있다. 조사위는 그간 수많은 관계 단체의 요청에도 시민, 전문가 등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최소한 암매장과 발포 책임자 등 핵심 과제만이라도 공청회 등을 개최해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적어도 지금 같은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5·18만큼이나 왜곡에 시달리고 있는 역사가 없다. 이미 끝난 조사 활동은 되돌릴 수 없지만 조사위는 지금부터라도 지역 시민사회의 이야기를 경청해 ‘왜곡 보고서’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