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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23일 육참총장실 '무력진압' 반대의견 묵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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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23일 육참총장실 '무력진압' 반대의견 묵살

이희성 계엄사령관·황영시 참모차장 등 수뇌부 10명
보안사 ‘광주사태 소탕작전 회의 동정’ 문건 공개돼

게재 2019-12-05 18:55:22

 1980년 5월27일 도청진입작전 수일 전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가 대거 모여 광주 무력진압을 결정했음을 입증하는 회의록 문서가 공개됐다. 일부 장성은 다수의 희생자 발생을 우려하며 무력진압 반대의견을 냈으나, 강경 기조에 밀려 관철되지 못한 사실도 드러났다.

 대안신당(가칭)은 5일 보안사령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생산·보유하고 있다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한 문서 및 자료 총 2321건을 공개했다. 지난주 13건의 사진첩을 공개한데 이은 두 번째 보안사 문건 공개다.

 원본이 공개된 문서 중 눈에 띄는 것은 5·18사태 전문일지(상황보고) 중 '광주사태 소탕작전 회의 동정'이다. 문서에 따르면 1980년 5월23일 오전 9시부터 2시간 동안 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 육군참모총장 접견실에서 황영시 참모차장, 진종채 2군사령관 등 10명의 군 수뇌부가 참석해 광주 진압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서 진종채 2군사령관은 '광주지역에 대한 무력공격 시도'를 강하게 주장했고, 참석자 대부분이 '찬동'했다. 이때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희성 계엄사령관에게 신속한 광주진압을 압박한 때였다. 이에 광주를 관할지역으로 둔 2군사령부가 광주 무력진압 계획을 세워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회의 참석자 중 황영시 참모차장은 "폭도들의 인질극으로 다수의 희생자가 생기면 군의 상처도 클 것"이라며 '소극적 반론'을 제기했다.

 이희성 사령관은 황 차장의 의견에 대해 "1차 여타 지역 소탕후 광주시 외곽을 완전 봉쇄 고립시켜 폭도들의 심경 변화를 유도"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진 2군사령관은 이를 반박하며 거듭 무력진압을 강조했다. 그는 "여타 지역을 공격해도 사상자 발생은 마찬가지"라며 "이 사실이 광주로 전파될 경우 시민의 감정이 격화, 더욱 진압이 곤란해질 우려가 있는데다 병력 분산은 폭도들의 전술에 이용될 위험성이 있다"며 반대했다.

 또 다른 참석자로 전남 출신으로 소개된 박춘식 육군본부 보급운영처장(준장)은 "현재 광주시민들간 예상외의 엄청난 결과에 후회하는 기색이 있다"며 "본인이 직접 광주로 들어가 설득을 통해 양민과 폭도들을 분리시킨 다음 계엄군이 공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문건에는 이 계엄사령관이 3가지 방안을 모두 국방부에 보고하되, 2군 사령관안에 중점을 두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이 결론으로 기록됐다. 사실상 무력진압을 결정한 것이다.

 당시 군 관련 문건에 따르면 2군사령부는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와 20사단 등이 배속된 광주 전투병과교육사령부의 상급부대로 군 작전을 지휘했다. 이어 5월21일 계엄군이 광주 외곽으로 철수한 직후부터 광주 재진입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5월2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시가전 불사, 광주 진압' 명령에 이어 이날 회의에서 형식적으로나마 군 최고 지휘관인 계엄사령관의 승인을 받은 셈이다.

 나의갑 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광주시민들은 시민수습위원회를 꾸려 평화적인 수습책을 모색하며 계엄군과 협상을 시도하던 시기에 전두환을 비롯한 군 수뇌부는 애초에 광주를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 무력진압을 결정했음을 보여주는 문건"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5·18 관계자는 "이번 광주사태 소탕 작전 회의 동정 문건 공개를 계기로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는 5·18 당시 육군본부 작전처장 이종구가 기안한 광주 무력진압계획 문건을 찾아 전모를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대안신당은 이날 5·18 당시 보안사가 각종 기관 및 자체적으로 수집한 상황일지 전문, 군 작전일지, 전남 도경 상황일지, 5·18 직후 군의 작전 상황 전반 및 문제점을 분석해 추후 대책을 마련한 '광주사태 분석' 문건 등을 공개했다.